‘화제의 기업’ 잇따라 인수…고속 성장 뒤 ‘보이지 않는 손’ 있나
하림 논현동 신사옥. 임준선 기자
대외적으로 이들 총수는 과거 동고동락한 ‘친구’였음에도 각자 독립한 후 별다른 교류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재계에선 이 둘을 ‘라이벌’로 보는 분위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STX팬오션(현 이름 팬오션) 인수전 당시 하림과 SM이 맞붙은 것을 그 사례라고 주장했다. 지난 3월에도 하림과 SM은 옛 STX그룹 지주사인 ㈜STX 인수를 놓고 각축전을 벌였다.
두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두 기업은 각각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을 경험했거나 각 정권과 유착 의혹이 불거진 사업(또는 회사)을 양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즉 대다수 기업이 경영상 리스크가 있다며 기피하는 사업에 오히려 공격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성과를 낸 것이다.
하림은 2013년 7월 법정관리에 돌입한 벌크선사 팬오션을 2015년 6월 1조 원에 인수했다. 팬오션은 강덕수 전 STX 회장 시절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채비율이 1900%까지 치솟았으나 산업은행 등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부채비율이 100%대까지 떨어졌다. 하림은 팬오션 인수로 단숨에 자산 규모를 2배 가까이 불렸다.
지난 3분기 기준 팬오션은 1조 74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2017년 누적 매출은 2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도 팬오션은 1조 8700억 원의 매출과 97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하림 관계자는 “사업에 필요한 곡물을 직접 조달하기 위한 결정이었고, 기존 회사가 영위하는 축산 비즈니스와 팬오션이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자평했다.
SM도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3년 9월 법정관리 중이던 대한해운을 2150억 원에 인수했다. SM의 대한해운 인수는 세계적인 해운업 위기와 맞물려 큰 주목을 받았다. 대한해운 매각에 앞서 채권단은 고비용의 외국 용선계약을 해지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SM에 인수된 대한해운은 3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SM은 또 2016년 11월 세계 5~10위권 해운사로 평가받던 한진해운 미주노선 영업부를 전격 인수했다. 앞서 2016년 한 해에만 수천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한진해운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기업 회생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당시 SM(대한해운) 측은 “한진해운 미주노선 인수로 종합 해운사로 도약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운업 사정에 밝은 재계 한 임원은 “팬오션에 이어 대한해운, 한진해운이 (두 기업에) 넘어가면서 업계에선 ‘양계가 무역을 장악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고 전했다. 정부 주도의 해운업 구조조정 과실이 결과적으로 이들 기업에 넘어간 것에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기업은 지난 3월에도 나란히 ㈜STX 인수전에 참여했다. ㈜STX는 법정관리 전 국내 최대 해외 영업망을 갖춘 무역상사로 평가됐다. 당시 SM은 ㈜STX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최종 입찰을 포기했다. 재매각을 추진 중인 ㈜STX의 유력한 새 주인으로 하림이 거론된다. 팬오션에 이어 STX의 유산이 또 다시 하림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하림 관계자는 “㈜STX에 대해 실사를 진행한 것은 맞지만 최종 입찰에 참여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며 “하림은 STX와 전혀 관련이 없는 회사”라고 밝혔다.
우오현 SM그룹 회장.
SM은 최근 고 성완종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영하던 경남기업을 인수하며 멈추지 않는 ‘M&A 본능’을 드러냈다. 그러나 SM이 이미 우방산업 등 여러 건설사를 소유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사업 시너지에는 적잖은 의문이 제기된다.
하림은 이명박 정부 당시 인허가 특혜 의혹이 불거진 파이시티 부지를 지난해 4500억 원에 매입했다. 하림은 파이시티 부지를 서울 남부권 최대 물류센터로 활용하고, 남은 공간을 쇼핑 등 상업용도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최근 하림이 계획한 파이시티 개발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국내 대형 유통사 중에서 파이시티 개발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한 유통사 관계자는 “인허가 문제 등 복잡한 절차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사업 규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림과 SM, 두 기업은 회사 성장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일정 부분 도움을 받았다는 말도 나온다. 하림은 정부의 농축산업 지원 정책 등에 힘입어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저리(1~3%)에 대출을 받는가 하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수천억 원에 달하는 축산경영종합자금을 융자받았다. SM은 박근혜 정부 당시 계열사인 티케이케미칼이 중소기업임에도 수차례 청와대 경제사절단에 포함됐고, 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STX 전직 관계자는 “기업의 모든 M&A에는 사업 시너지가 우선 고려된다”며 “정경유착 같은 걸로 볼 게 아니라 사업가 입장에서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고는 회사를 키우기 어렵다”고 전했다. 앞의 해운업계 임원은 “그동안 M&A 경과를 보면 오히려 정부가 팔기 힘든 회사를 (이들이) 사준 측면이 있다”며 “해운업계 개편에 외부 힘이 작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