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간부·실무자 유관단체 행사 명목 배석…“지방선거 운동 일환 아니냐” 비난도
지난 11월 30일에 열린 부산시간호조무사회 정기총회 당시 기념촬영 모습
저녁이 있는 삶.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희망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이 같은 바람이 커진 것은 소득이 오르고 삶의 축이 직장에서 가족 중심으로 변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특히 개인의 행복추구권과도 맞물린 명제여서 이에 대한 기대치는 갈수록 부풀어 오를 전망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일과 가정의 균형, 그리고 일자리 나누기 등을 주요 명분으로 한다. 이 짧은 문장은 현 정부 들어 더욱 선명하고 굵직한 활자로 새겨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첫 공식 방문지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임기 내에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삶의 질 향상을 선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부산시 일부 공무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사치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서병수 시장이 참석하는 각종 모임에 들러리로 동원되면서 포근하고 여유 있는 저녁을 가질 기본권리를 침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11월 30일 동래구 허심청호텔에서 부산시간호조무사회 정기총회가 열렸다. 서병수 시장은 이날 행사에 주빈으로 참석했다. 그러자 김광회 건강체육국장과 최병무 보건위생과장을 비롯, 담당 계장 및 주무관 등이 배석했다.
얼핏 유관기관 행사에 시의 관련부서 간부와 실무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비춰지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그렇지가 않다. 시 공무원들의 태도가 오로지 서 시장을 수행하려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는 게 당시 모임에 참석한 한 간호조무사의 전언이다.
12월 7일에는 부산FC 창립 1주년 기념식과 송년모임이 사직아시아드뷔페에서 열렸다. 부산시 이상길 체육진흥과장, 주무관, 그리고 부산시설공단 직원 등이 많은 내·외빈과 함께 참석했다. 행사가 시작한 지 한참 뒤이긴 하나 서 시장도 모습을 나타냈다.
특히 이날 서 시장이 부산교통방송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오느라 2시간 이상이나 늦으면서 시 공무원들은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준비된 음식에 손도 대지도 못하고 마냥 기다렸다. 오로지 서 시장의 등장을 위해 참가자 전원이 식사도 못하고 대기상태로 있는 촌극이 연출된 것이다.
19일에는 사단법인 부산이용사회 출범식이 열렸다. 이날 모임은 앞서 11월말에 진행된 부산시간호조무사회 정기총회와 거의 판박이였다. 서병수 시장을 비롯, 최병무 보건위생과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시 공무원들의 태도도 대동소이했다.
지난 12월 7일에 개최된 부산FC 창립 1주년 기념식 장면.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기자가 직접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서병수 시장은 거의 매일같이 유관기관과 단체들이 펼치는 저녁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군데를 옮겨 다니기도 한다.
시 공무원, 특히 하위직 공무원의 경우에는 저녁 모임 참석이 달갑지만은 않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무관은 “유관기관 행사이며 시장까지 참석하기 때문에 보통 실국장이 나가게 된다. 그러면 과장, 계장, 주무관까지 좋든 싫든 참석해야 한다”면서 “시장이 저녁 일정을 완전 비공개로 하지 않는 이상은 피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병수 시장이 이처럼 동분서주한 것은 좀처럼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지율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있다. 현재 구도로서는 차기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행보라는 분석이다. 서 시장으로서는 자신의 재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시 공무원들은 분명히 입장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지역 여권의 한 관계자는 “서병수 시장의 잦은 모임 참석은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운동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면서 “자신의 당선을 위해 적법한 테두리 내에서 활동하는 것은 나무랄 수 없지만, 여기에 시 공무원들이 지속적으로 동원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시 공무원들의 저녁 모임에 동원되는 것은 비단 행복추구권 침해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다. 노동권 침해 여부가 또 다른 논란의 소지가 될 게 분명한 까닭이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시 공무원들은 저녁에 시장이 참석하는 모임에 나가더라도 초과근로수당을 따로 받지는 않는다. 물론 규정에도 없는 비공식 행사에 참석한 대가로 초과근로수당을 받는다면 더욱 심각한 2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아무런 반대급부도 없이 시장이 참석하는 행사에 들러리로 동원되는 점은 노동권 보호에 심각한 침해 요소가 된다.
부산경실련 이훈전 사무처장은 “서병수 시장이 최근 들어 외부에 모습을 자주 나타내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꼭 공무원들이 필요한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다른 지자체 단체장들처럼 공적인 행사와 사적인 행사, 그리고 정치적인 모임을 정확히 구분해서 공무원들을 배석시켜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