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상 있다” 소속사와 소통 없이 SNS 통한 통보 되풀이
걸그룹 타히티의 멤버 지수(맨 오른쪽)가 지난 9일 자신의 SNS에 그룹 탈퇴 선언을 한 가운데 다른 멤버들이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사진=제이라인엔터테인먼트
최근 걸그룹 타히티의 간판 멤버였던 지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한 탈퇴 선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타히티는 2012년 데뷔한 중견 걸그룹이지만 국내에서는 큰 인지도를 얻지 못했던 비운의 그룹이기도 하다.
지수는 지난 2016년 1월 인스타그램에서 브로커로부터 스폰서 제안을 받았다고 밝히고 고소까지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측이 브로커의 개인정보 공개를 거부하면서 사건은 결국 성립되지 않았다.
그의 탈퇴에 이 사건이 영향을 끼쳤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수가 탈퇴 선언에서 “지난 몇 개월 동안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힘든 나날들을 겪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다”라며 한동안 겪었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스폰서 사건 이후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건강 문제를 이유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 것이었던 만큼 사건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미 타히티의 소속사 제이라인엔터테인먼트는 지수가 건강문제를 호소하며 활동을 중단했다는 2017년 3월 직후부터 지수에게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위한 내용증명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사와 지수의 갈등이 이미 수면 위로 올라오기 9개월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지수는 소속사 측의 내용증명에 대해서는 변호사를 통해 “계약효력정지는 쌍방이 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할 수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내 맞섰다. 더욱이 소속사 측이 건강관리를 제대로 해 주지 않아 활동을 지속할 수 없으므로 계약을 해지해 줄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애초 지수의 계약기간은 2019년 4월까지다.
이에 남은 멤버들이 즉각 반발에 나섰다. 타히티의 멤버 미소는 12월 1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타히티가 그만두고 싶고, 이 회사가 나가고 싶었던 거라면 정정당당하게 위약금 내고 나갔어야지.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하루라도 약을 안 먹으면 과호흡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멤버를 몇 년째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지냈으면서 네가 감히 공황장애라는 단어를 이용해? 끔찍했다고? 너의 그 가식적인 거짓말이 더 끔찍해”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타히티의 리더인 민재 역시 자신의 SNS에 “거짓 속에서 버티기가 힘들다. 모두가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짧은 글을 남겼다. 정황상 지수의 일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이 올라온 날짜 역시 미소와 마찬가지로 12월 15일이다. 다만 지수는 이 같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후부터는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다. 결국 계약 해지와 관련한 소송전만을 앞두고 있을 뿐 지수의 탈퇴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AOA의 전 멤버 초아(맨 오른쪽) 역시 건강 문제로 활동을 잠정 중단했으나 열애설이 터지면서 탈퇴에 이르렀다. 사진=FNC엔터테인먼트
지난 6월 탈퇴한 AOA의 전 멤버 초아 역시 ‘선 통보, 후 인정’으로 진행됐다. 초아는 2017년 3월 AOA의 단독 콘서트 이후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잠적설이 뒤따랐었다. 이후 5월, 나진산업 이석진 대표와의 열애설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되자 결국 한 달 만인 지난 6월 22일 인스타그램에 불면증과 우울증 등을 이유로 탈퇴 입장문을 올렸고 같은 달 30일 AOA를 공식 탈퇴했다.
당초 소속사 측은 열애설 이후 지속적으로 대두되는 초아의 탈퇴설과 관련해 “개인적인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소속사와도 문제없이 연락이 닿고 있다”며 일축해 왔다. 초아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탈퇴 선언을 게시한 뒤에도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멤버가 일방적으로 탈퇴 의사를 밝혔다고 해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속사와의 계약 조율이 있을 것”이라는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초아의 AOA 탈퇴는 확정됐지만 소속사와의 전속계약 분쟁 등이 뒤따르진 않아 여전히 초아는 FNC 소속이다.
지난 2월, H.O.T. 출신의 방송인 문희준과 결혼을 알린 뒤 3개월 만인 5월 탈퇴를 알렸던 크레용팝 전 멤버 소율 역시 석연치 않은 탈퇴로 좋지 않은 뒤끝을 남겼다. 그룹 내 인기도 1위를 달렸던 그는 이미 2016년 10월부터 공황장애로 활동을 중단했다. 그런데 고작 1개월 지난 11월 팬 카페에 직접 손으로 쓴 편지로 결혼 소식을 알려 팬들을 당황하게 한 것이다.
공황장애로 활동을 중단했으나 곧바로 결혼과 임신 사실을 알려 충격을 줬던 크레용팝의 소율. 사진=크롬엔터테인먼트
팬이나 멤버들은 물론 소속사까지 기만했다는 비난이 이어지면서 이들 부부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바닥을 치고 내려갔다. 특히 크레용팝은 2013년 ‘빠빠빠’라는 곡으로 반짝 인기를 얻었을 뿐 활동이 부진해 그룹 존폐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멤버가 거짓말로 탈퇴에 이르게 되면서 그룹도 해체 아닌 해체의 길을 걷게 됐다.
이런 상황에 대해 연예 관계자들은 “무책임하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는 부분도 있다”는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중소 연예기획사 실장 K 씨는 “소속 아티스트가 1개 그룹뿐인 소형 기획사, 또는 덩치는 있지만 기획력은 부족한 소속사의 경우는 말 그대로 소속사와 멤버들 간 소통 자체가 아예 안 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러다 보니 가장 파급력이 크고 언론에도 쉽게 보도될 수 있는 SNS를 통해 먼저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소속사에서 뒷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식으로 ‘선제공격’을 하는 경우가 최근 들어 잦아진 것 같다“고 짚었다.
이어 “같이 고생하는 멤버들이나 팬을 생각하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보이긴 하지만 소속사에 비해 힘이 없는 그들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며 “이런 사례가 많아지다 보니 소속사 측에서도 아예 계약 해지와 관련한 조항에 ‘소속사와 반드시 합의 후 결론을 공개할 것’이라는 특수 조항을 포함시킬 수 없을지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