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대규모 임원인사 단행…내부제보자 색출작전 의혹
비자금 조성 등 혐의를 받는 박인규 대구은행장이 지난 12월 13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대구지방경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회장을 제외한 등기임원 3명이 모두 물러난 것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박 회장이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인사위원회를 통해 박 회장만 재신임을 받은 형태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 3명은 지주 회장 자리를 두고 한때 박 회장과 경합을 펼쳤던 인물들이다. 2017년 초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진행될 당시 이들은 박 회장과 함께 최종 회장 후보 4인에 오른 바 있다. 이들이 한꺼번에 옷을 벗자 박 회장이 잠재적인 경쟁자를 제거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등기임원에서 물러나면 자회사 사장 등으로 이동시켜 배려하는 게 금융권의 관행”이라면서 “이번 DGB 인사에서는 그런 예우가 없었다는 점에서 오해를 살 소지가 많다”고 전했다.
이사회의 결정임에도 ‘보복성 인사’라는 의혹이 나오는 것은 박 회장에게 집중된 권력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 회장은 DGB금융지주 회장과 이사회 의장, 대구은행 행장과 이사회 의장을 모두 맡고 있다.
DGB금융의 그룹임원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멤버는 박인규 회장과 조해녕, 전경태, 하종화, 이재동, 구본성 이사 등이다. 이들은 모두 박 회장이 취임한 뒤 선임된 인사들이어서 박 회장의 의중에 반하는 결정을 내놓기 어려웠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조해녕 이사는 서울대 행정학과를 나와 제26대 대구광역시 시장과 제30대 대구광역시 시장을 역임했다. 총무처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거쳐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사회가 추천했으며 경제전문가라는 이유로 선임됐다.
전경태 이사는 계명대 통상학과 교수, 계명대학교 경제통상대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계명대 사회과학대학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했으며 경제전문가라는 이유로 선임됐다. 하종화 이사는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행정관, 중부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지냈고 세무법인 두리 회장을 맡고 있다.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했으며 회계전문가라는 이유로 선임됐다.
이재동 이사는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사회복지법인 대구생명의전화 대표이사, 법무법인 대구 변호사를 맡고 있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감사위원회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했으며 법률전문가라는 이유로 선임됐다.
금융권은 이들에 의해 앞의 3명의 등기임원이 물러난 것은 “대구은행 비자금 사건 폭로는 내부자의 소행”이라는 소문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DGB금융 전체를 뒤흔든 비자금 수사는 내부 제보로 시작됐다는 설이 파다하다. 이에 박 회장과 경쟁 관계에 있는 내부 인사들이 숙청 대상이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최근에는 DGB금융이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DGB금융은 임원 인사를 앞두고 임원 20여 명에게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비자금 조성 의혹 내부 고발자를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박 회장과 함께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거나 박 회장을 옹호했던 일부 임원이 승진자 명단에 포함되면서 의혹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대구경실련과 대구참여연대, 우리복지시민연합이 지난 12월 13일 대구지방경찰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를 받는 박인규 대구은행장의 구속 수사와 박 행장의 자진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박 회장의 대구상고 동문인 김경룡 전략경영본부장 겸 DGB경제연구소장(부사장보)은 그룹 내 2인자 자리인 부사장으로, 영남대 동문인 박명흠 대구은행 마케팅본부장 겸 서울본부장(부행장보)은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또 김남태 대구은행 상무는 DGB금융지주 부사장보로, 김태종 DGB금융지주 전략기획부장은 대구은행 상무로, 여민동 대구은행 상무는 부행장보로 각각 승진했다.
다른 대구상고 출신 인사들도 대거 승진했다. DGB금융지주와 대구은행 인사에서 상무급 이상으로 승진한 임원 18명 가운데 7명이 대구상고 출신이다.
박인규 회장과 임원 등은 2014년 3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법인카드로 32억 7000만 원 상당 상품권을 구매한 뒤 판매소에서 수수료(5%)를 공제하고 현금화하는 일명 ‘상품권 깡’ 수법으로 비자금 30억여 원을 조성해 상당 부분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횡령과 배임, 사문서 위조 및 행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박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보강수사를 지시하며 영장을 기각한 상태다.
금융권은 이번 인사로 DGB금융의 내부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 등 주요 계열사에는 여전히 박 회장의 경영 투명성에 의문을 품은 인사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사조치 이후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수면 아래로 숨을 가능성이 높아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박 회장 측은 비자금 의혹과 관련된 수사가 불구속 입건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예측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번 일이 내부 투서로 시작된 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사건이 불거질 우려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역량평가에 따른 정기인사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각종 비위 의혹을 받고 있는 박 회장이 이사회의 재신임을 받은 것을 비춰볼 때 형평성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