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열차 종착지 보수대통합일 가능성…호남 이반은 시간문제
2016년 4·13(제20대) 총선 당시 호남은 초록색(국민의당)으로 뒤덮였다. 1년 뒤 장미 대선 땐 파란색(더불어민주당)이 압도했다. 오는 6·13 지방선거는 호남 혈투를 가르는 진검승부의 장이 될 전망이다. 변수는 초읽기에 돌입한 ‘이합집산’이다. 호남 구도의 양대 축인 ‘민주당 vs 국민의당’, ‘친문(친문재인)계 vs 구민주계’ 구도를 뒤흔드는 새판 짜기가 불가피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박은숙 기자
“전략적 투표를 주목하라.”
호남 민심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전략적 투표’다. 이는 소신 투표가 아닌 될 사람을 전략적으로 몰아주는 투표 현상을 말한다. 고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호남 몰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5·9 대선에서 41.1%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호남 3곳(광주 61.1%·전남 59.9·전북 64.8%)에서는 60% 이상을 받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선 직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호남의 전략적 투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다”고 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호남 밑바닥에 깔린 이질적 투표 성향이다. 호남은 1998년 DJ 정부를 거쳐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선거 때마다 ‘구민주계냐, 친노(친노무현)계냐’를 강요받았다. 이른바 ‘난닝구(구민주계 실용파) vs 빽바지(친노 개혁파)’ 논쟁으로 비화된 이 구도는 현재도 호남 역학구도의 한 축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대 총선에서 구민주계인 박지원·정동영·천정배 의원 등을 업고 호남 갈라치기에 나선 것도 전략적 투표를 활용한 선거 전략이다.
실제 안 대표의 20대 총선 전략은 딱 두 가지였다.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의 극대화와 ‘호남 홀대론’이다. 이를 양손에 쥐고 호남 갈라치기를 시도했다. ‘배제 리더십’ 논란에 휩싸였던 친문계는 허를 찔렸다. 그러자 호남이 일시에 뚫렸다. 국민의당은 호남 28석 가운데 23석을 획득했다. 하지만 1년 뒤 대선에서 호남 민심은 문 대통령을 선택했다. 안 대표는 호남 3곳(광주 30.1%·30.7%·23.8%)에서 평균 30%를 밑돌았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호남 민심이 1년 사이 비문(비문재인)에서 친문으로 이동한 이유는 ‘전략적 투표’”라고 분석했다.
관전 포인트는 안철수발 정계개편 이후 호남의 전략적 투표 변화 여부다. 안 대표는 구민주계인 박지원·정동영·천정배 의원의 탈당 불사 움직임에도 통합 열차를 띄웠다. 호남을 등지고 ‘보수의 세대교체’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의 손을 잡았다. 이는 ‘안철수 딜레마’의 판박이다. 2011년 정국을 강타한 ‘안철수 현상’은 2030세대와 기성 정치에 혐오감을 가진 중도층의 결합이었다.
그러나 안 대표가 제도권 정치에 들어온 직후에는 대안을 찾아 헤매는 ‘중도보수층’과 ‘호남의 전통적 지지층’이 그 자리를 꿰찼다. 북핵 문제에서 충돌하는 양 계층이 ‘비문’의 교집합을 형성하고 연대전선에 들어온 것이다. 이에 따라 반세기 가까이 지속한 호남과 대구·경북(TK)의 정치적 대립구도, 북한을 둘러싼 극단적 이질성 등은 호남 전략적 투표의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망은 밝지 않다. 통합신당 키맨 3인방은 추진 과정부터 이질적인 정체성을 드러냈다. 대선 패배 후 ‘극중주의’를 내건 안 대표는 기존의 보수·진보 프레임을 거부한 새로운 제3세력에 방점을 찍었다. 유 대표는 “보수 정체성을 훼손하는 정체성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고문은 “개혁적인 중도통합이 돼야 한다”며 결을 달리했다. 통합 추진 과정에서 치열한 노선투쟁을 예고한 셈이다.
안 대표의 통합 전략과 호남 민심 간 괴리는 호남 지형의 판을 바꿀 변곡점이다. 한 분석가는 안 대표가 통합 행보에 대해 “수도권 공간 확보를 위한 승부수”라고 말했다. 안 대표가 ‘호남 2중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고 수도권의 중도·무당파 포섭 작전에 나섰다는 것이다. 수도권 탈환을 통해 ‘호남+구민주계’에 한정된 제한적 외연성을 타파하겠다는 의미다. 바른정당을 수도권 정당으로 규정한 안 대표가 지난해 12월 27일 SBS라디오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 출연해 서울시장 출마 여부와 관련, “당 명령에 따를 생각”이라며 진전된 발언을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구민주계도 마찬가지다. 안 대표를 데릴사위 삼아 20대 총선을 돌파했으나, 현재 국면은 활용할 대로 한 뒤 버리는 과정이다.
정치권 눈은 통합신당 시너지로 향한다. 국민의당 통합파에선 ‘비밀 여론조사’를 근거로 통합 시 호남 지지율도 동반 상승한다고 주장하지만, 우 클릭이 불가피한 만큼 호남 민심이반은 시간문제라는 게 지배적이다. 통합 열차의 종착지가 ‘보수대통합 역’일 가능성이 커서다. ‘통합파’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자유한국당 소속 복수의 의원이 통합신당 의사를 타진했다고 주장,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안 대표가 소수당에 험지인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다고 해도 당선권과 거리가 멀 경우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당·청 지지도의 기세는 여전하다. 취임 직후 80%대에 육박하던 지지도는 2017년 말 기준 70% 안팎이다. 민주당 지지도는 50∼60%를 오간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12월 2주차 정례조사(12월 12~14일 자체 조사·15일 발표)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호남 지지도는 80%에 달했다. 민주당 지지도는 58%로, 2위인 국민의당(12%)보다 약 5배 높았다. <한국갤럽>의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자세한 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울어진 운동장인 호남의 기울기가 한층 가파를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이 문제는 당내 예선전부터 불거질 전망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후보군도 양극화”라며 “우리 당은 ‘줄을 서시오’, 저쪽은 ‘어디 없소’ 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은 과열 예선전 우려가 나올 정도로 후보군이 넘쳐난다. ‘호남 정치 1번지’ 광주의 경우 현역인 윤장현 시장을 비롯해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를 거부하고 일찌감치 선거전에 나선 강기정 전 민주당 의원, 민형배 광산구청장,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 이병훈 광주동남을 지역위원장, 최영호 남구청장 등이 레이스에 섰다. 광주시장 최대 변수인 이용섭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의 출마 여부에 따라 서울시장에 버금가는 선거판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민의당에선 공식 출마자가 없다. 천정배·김동철·박주선 의원 등 ‘현역 차출론’만 군불을 지핀 상황이다. 이 중 천 의원은 반통합파의 선봉장이고 나머지 두 의원은 중재파다.
전남지사는 민주당 소속 이개호 의원, 노관규 전 순천시장과 국민의당 박지원·주승용·황주홍 의원 등이 가세한 형국이다. 장만채 전남도 교육감도 3선 대신 전남지사로 턴할지 고민 중이다. 지역정가 안팎에선 국민의당이 파국을 맞을 경우 반통합 선두에 선 박 의원이 전북의 맹주 정동영 의원과 ‘구민주계 연대’를 형성, 민주당과 1 대 1 승부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전북지사도 현역이자 민주당 소속인 송하진 지사와 국민의당 정동영·유성엽 의원 간의 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유성엽 의원은 반통합파의 핵심이다. 정 의원은 안 대표를 향해 “골목 독재”라고 비판했고 유 의원은 안 대표가 전 당원투표 제안 후 의원총회에 나타나지 않자 “안철수 끌고 와”라고 외치며 격렬히 반발한 바 있다.
친문계 한 관계자는 “20대 총선에서 호남이 국민의당을 지지한 것은 박지원·정동영·천정배 등을 DJ의 후계자로 인식한 결과”라며 “이들 없는 ‘안철수·유승민’ 조합이 호남 민심을 잡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반통합파의 원심력에 따라 호남은 ‘민주당 vs 구민주계 vs 통합신당’ 간 3자 구도를 형성할 수도 있다. 호남 판세의 첫 분수령은 안철수발 정계계편의 시너지효과다. ‘안철수·유승민’ 통합 파괴력 실체는 이르면 1월 말 베일을 벗는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