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양 칠갑산은 아직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청정한 편이다(왼쪽). | ||
이젠 이동할 수 있는 거리도 좀더 넓혀볼 수 있다. 주말 나들이의 사정권을 확장해보자. 이번 주말 배낭 메고 떠나는 여행지로 칠갑산 산마루는 어떨까. 오랜 보물들로 가득한 장곡사 산행길은 어느 산 못지 않게 편안하다. 가을이 오는 칠갑산에서 충청도 산세가 지닌 편안함을 맛봤다. 솔솔 부는 가을바람에 신이 나는 사람은 등산 애호가만이 아니다.
평소 산에 오르기를 귀찮아하던 사람이라도 가을이 되면 한번쯤은 산행의 유혹을 받게 되니 말이다.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햇볕은 아직도 따갑지만 걸음 멈추면 언제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있어서 떠나는 사람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청양군의 중심부에 위치한 칠갑산(561m)은 차령산맥에 속하며 칠갑산에서 발원한 대치천 장곡천 지천 잉화달천 중추천 등 계곡이 각기 이 산의 능선에서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간다.
지천과 잉화달천이 계곡을 따라 흐르면서 자연히 일곱 명당이 생겼다고도 하고 일곱 장수가 나온다고도 하여 칠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로 시작하는 노래 때문에 ‘칠갑산’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고 보면 ‘잘 만든 노래 하나 홍보대사 뺨친다’는 말도 나올 만하다. 칠갑산 입구에는 벌써 빨갛게 익은 청양고추들이 가을하늘 아래에서 더욱 돋보인다. 마치 단풍 곱게 물든 가을 산을 보는 것처럼 마음마저 들뜨기도 하는 것이다.
이곳 특산품이기도 한 청양고추의 매운맛만큼이나 톡톡 쏘는 즐거움이 칠갑산에 숨어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청양군의 3개 면에 걸쳐 있는 칠갑산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고 알려져 왔다.
봄에는 야생화 천국으로 여름에는 울창한 삼림욕장으로 가을에는 오색의 단풍으로 물드는 이곳은 등산보다는 트레킹 명소라고 해도 될 만큼 가벼운 등산이 매력적인 곳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코스는 칠갑산입구∼장곡사 방면이다.
이 코스는 오르막에서 가벼운 산책을 즐기다가 내리막에 이르면 아기자기한 등산로의 재미를 만끽할 수가 있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이기 때문이다. 칠갑산 입구인 샬레호텔에서부터 칠갑광장 휴게소까지 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서 대부분 차를 이용하지만 걸어서 올라간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 칠갑산 장곡사는 절 전체가 보물덩어리다 칠갑산 정상에서 하산길로 잡아 와볼 만한 곳이다 | ||
칠갑산 조용한 산길에는 혼자 걷는 즐거움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산길이 험하지 않고 안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산장로라 불리는 코스는 자동차라도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폭에 경사가 약한 산책로다. 마치 문경새재의 제1관문, 제2관문의 그 길과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꼬맹이를 데리고 나선 가족들도 많다. 등산보다는 산책로같이 편안한 길이다. 쉽사리 산 중턱에 위치한 칠갑정에 이르지만 빼곡한 나무들로 인해서 시야가 멀리 뻗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버섯이 많이 나는 산이라 길에서도 커다란 버섯들을 관찰할 수 있어 흥미를 끈다.
평탄한 산책로 끝에 이르러서는 정상을 향한 마지막 고비가 나타나는데 미끄러운 진흙길이라 비가 온 후에는 반드시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정상이 뭐이래.” 아빠 손을 꼭 잡고 올라오던 꼬맹이도 아예 투정을 부린다.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직경 50m 정도의 잔디밭에 등산객을 기다리는 것은 하늘과 산뿐이다. 그리고 피할 길 없는 태양과 서늘한 바람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산 아래는 아흔아홉계곡을 비롯한 까치내, 냉천계곡, 천장호, 천년고찰인 장곡사 등이 우산살처럼 펼쳐져 있다.
장곡사 이정표를 따라 하산하면 ‘사찰로’라는 등산코스를 따라 걷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혼자 걸어갈 수 있는 좁은 등산길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걷는 재미가 있는 코스다.
등산객들도 많지 않아서 여유있게 걸어도 한 시간이면 장곡사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칠갑산 자락에서 가장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 장곡사다. 칠갑산에서 하산길로 잡거나 혹은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장곡사를 찾아오는 이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신라 문성왕 12년(AD 850년) 보조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그동안 여러 차례 중수해온 장곡사는 대웅전이 두 개인 절로도 유명하다.
상(上)대웅전, 하(下)대웅전으로 나뉘며 하대웅전 뒤로 길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상대웅전이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천년고찰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8백년 넘은 괴목이 상대웅전 앞에 묵묵히 서 있다. 기도 도량으로 이름나 그런지 정성을 다해 불공을 드리는 이를 쉽게 볼 수 있다.
장곡사에는 특히 국보급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어 절 전체가 보물덩어리다.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58호), 철조비로자나불(보물 174호), 하대웅전(보물 181호), 금동약사여래좌상이 있으며, 길이 7m 폭1m의 비자나무로 만들어진 밥통과 목어, 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어진 큰북 등이 있다. 하대웅전이 있는 곳에 위치한 조선중기 건물인 설선당도 눈여겨 볼만하다.
▲ 장승 | ||
장곡사에서 내려오다 보면 특이한 장승들이 모두 모인 장승공원을 지나치게 된다. 이곳은 1999년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자는 의미로 ‘칠갑산 장승축제’를 개최하면서 조성된 곳이다. 원래부터 청양은 장승에 얽힌 전설과 유래가 많은 곳으로 수백년 전부터 장승제를 올려 오는 등 장승문화를 이어오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높이만도 11.5m에 이르는 칠갑산 대장군과 칠갑산 여장군을 세워 풍요와 화합, 밝은 미래 등을 염원하는 뜻을 담았다. 그리고 전국의 장승조각가들에 의해 재미있는 표정의 장승들이 재현되었다. 장승공원을 지나 조금만 더 내려가면 칠갑산에서 발원한 작천, 지천 등 협곡이 기암괴석과 어울려 이루어진 지천구곡을 볼 수 있다.
특히 까치네유원지나 물레방앗간유원지가 유명하다. 칠갑산 등산을 할 경우 보통 산을 넘어 가야 하기 때문에 교통편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장곡사로 오는 버스가 하루에 세 번뿐이므로 시간을 맞춰가지 못하면 비싼 요금의 택시를 불러 터미널이나 주차장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특히 장곡사에서 칠갑산 입구로 가는 바로 갈 수 있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장곡사에서 출발해 대치리로 내려오는 것이 좋다.
정산면의 천장호나 서정리 구층석탑, 목면의 모덕사 등 볼거리가 있지만 교통편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 대중교통편으로 둘러보기가 어렵다. 승용차로는 모두 10~20분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