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 문화 대면하며 ‘행간’ 읽게 되기를…
교환학생으로 만달레이에 온 부산외대 동남아학부 여학생들. 서점에서 미얀마 청년을 만났다.
[일요신문] 서점은 책과 만나는 곳이지만 사람과도 마주치는 장소입니다. 제가 사는 만달레이에 큰 서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하러 갑니다. 저희 회사 직원인 뭉섬도 가보고 싶다며 따라 나섭니다. 그만큼 대형서점을 보기 힘든 나라입니다. 신도시 쇼핑타운을 미로처럼 돌다보니 뒤 블록에 서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잉와(Innwa) 북스토어입니다. 안에 들어서니 온통 새 책들이 환하게 서가에 높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영문 잡지, 일러스트 화보집, 요리책, 소설, 인물평전, 정치경제 등 전문서적들이 형형색색으로 꽂혀 있습니다. 미얀마 청년들이 처음 보는 대형서점을 구경하러 옵니다. 그런데 이 서점 안에서 느닷없이 한국말이 소란하게 들립니다. 뭉섬과 제가 그 사람들 쪽으로 가보니 얼굴이 하얗고 예쁜 한국 여대생들입니다. 너무 반가워 우리가 말을 붙입니다.
여대생들은 이 도시에 처음 온 교환학생들입니다. 이 도시에 한국 대학생들이 공부하러 오긴 처음입니다. 책을 보러 온 미얀마 청년들이 밝은 모습의 한국 여대생들을 바라봅니다. 학생들은 부산외대 동남아학부생들로 미얀마어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각 학년마다 뽑혀 이곳 만달레이 대학에서 1년을 공부하게 된답니다. 남녀 기숙사 생활까지 교환학생의 혜택을 누리니, 곁에 있는 뭉섬이 부러운 눈치입니다. 이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직장을 다니지만 오는 3월에 서울로 유학을 가기 때문입니다. 유학비용이 너무 들어 요즘 걱정이 많습니다. 책을 고르며 두 나라 청년들이 얘기를 나눕니다. 그 모습을 보니 두 영화 속 서점이 생각납니다.
영화 ‘비포 선셋’ 중 다시 만나게 되는 서점 앞에서.
노팅힐 서점. 영화 <노팅힐>의 두 남녀가 런던 변두리 여행전문 서점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주연입니다. 서점을 운영하는 소심한 남자. 그 서점으로 책을 사러온 유명한 여배우. 그는 그 고객이 유명인사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 그 서점 자리는 현재 쇼핑가게로 바뀌고 서점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파리 센강변에는 1921년 문을 연 오래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있습니다. 영화 <비포 선셋(Before Sunset)>의 무대가 된 곳입니다. <비포 선라이즈>의 후속편입니다. 전편에서 두 남녀,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는 낯선 도시에서 만나 하루를 보냅니다. 그후 그들이 6개월 후에 과연 만났을까 궁금증을 남기고 끝났습니다. 한편으론 배낭여행 붐을 만든 영화였지요. 후속편은 9년 후 제작되어 9년 후 만나는 설정으로 이어집니다. 30대가 되어 작가로 유명해진 그는, 낡고 오래된 파리의 서점에서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그녀가 찾아온, 영화 속 서점. 그 서점이 바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입니다.
새 책으로 가득한 서점. 미얀마에 서점시대가 열리고 있다.
“책을 쓰는 일은 건물을 짓는 일과 비슷해.” “뭔가 갖고 싶은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 그게 구두든 사랑이든.” 그들의 대사가 숨 가쁘게 흐르던 영화. 그 파리의 서점은 헤밍웨이가 가난하던 시기에 영감을 얻었던 ‘도서관’이었고, <위대한 개츠비>의 피츠제럴드, 앙드레 지드가 아끼던 서점이었습니다. 그들은 창문을 적시는 파리의 햇살 속에서 책을 읽곤 했었지요. 하지만 한때 경영난에 처해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새 책 냄새가 나는 잉와 서점에서 한국과 미얀마 청년들이 이제 책을 골랐습니다. 이 서점은 미얀마에서 유명한 원로 여배우의 딸이 주인입니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 그 주인은 없지만 많은 청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외국의 책들을 뒤적입니다. 선진국처럼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서점. 그럼에도 이곳은 서점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고요함과 사색’을 상징하는 책들의 세상입니다. 한편 한국에서 미얀마어를 공부한 한국 여대생들은 이제 이 나라 문화와 관습을 직접 대면하며 ‘살아있는 책’의 행간을 읽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