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딩’이 없는 나라에서 ‘포옹’을 생각하다
전통적으로 ‘홀딩’이 없는 나라에서 ‘사람 간의 홀딩’을 생각합니다. 이 나라는 정말 잘 껴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몇 년 만에 가족들이 만나도 서로 얼굴만 보면 그만입니다. 춤 공연에 가보아도 남녀가 마주 잡고 추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춤은 곧잘 고고한 꽃과 비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꽃송이, 두 손은 꽃잎, 몸통은 꽃대처럼 흔들림을 표현합니다. 이렇게 홀딩이 없는 이 나라에도 요즘은 많은 젊은이들이 오토바이로 도시 근교를 질주합니다. 남녀가 꼭 껴안은 채. 우리 삶과 사랑은 때론 플로어를 헤치고 추는 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 간에도 아름답지만 고통스런 로맨스들이 있습니다. 그 로맨스를 생각하면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은 저희 동네에 살던 평범한 남자입니다.
미얀마 청년들이 꽃이 만발한 해바라기 밭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10여 년 전 동네 아파트에 한 분이 살았습니다. 그분은 아내가 심한 당뇨에 걸려 집안에 어둠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 있었지요. 집안일도 남편이 해야 하고 수발도 들어주어야 하고 회사도 가야 하고. 하지만 헌신적으로 아내를 보살펴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댄스를 배우기로 했다’는 겁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답게 ‘좀 더 밝게, 좀 더 활기차게 살아야겠다’는 겁니다. 그게 뭡니까? 왈츠, 탱고 이런 거 들어봤어? <쉘 위 댄스>, <여인의 향기> 영화 같은 거. 장님이 된 퇴역장교 알 파치노가 젊은 여성과 추던 우아한 탱고가 생각납니다.
부부는 일주일에 서너 차례, 저녁에 댄스스포츠를 하고 땀을 뻘뻘 흘리고 돌아오는데 부인 얼굴이 많이 밝아진 것 같았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되던 날. 부부가 놀러왔습니다. 며칠 후에 자기네가 발표회를 갖는다는 겁니다. 결혼 25주년 기념 작품발표회라 유명호텔의 홀을 빌려서 하는데 초대 팸플릿에 들어가는 시를 써달라는 겁니다. 저는 춤도 모르는데. 며칠 고민고민하다 그 부부의 고통스럽지만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제목은 ‘그대에게 가는 여행’입니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장님이 된 퇴역장교 알 파치노가 탱고를 추는 모습.
그대여, 당신을 만나고부터/ 가슴에 비 내리고 모래바람이 눈을 찌를 때도 있었으나/ 우리가 여행을 멈출 수 없었던 까닭은/ 어제의 눈물도 모두가 물방울처럼 하나가 되어/ 언젠가는 푸르른 바다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대여, 당신의 늦은 귀가길,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수없이 쓴 애증의 편지를 끝내 부치지 못한 까닭은/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고 사는 일이 더 괴롭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대여, 세상의 시련 속에서/ 당신이 울음을 참고 있을 때/ 당신의 손을 가만히 잡고만 있었던 까닭은/ 사랑도 슬픈 음률의 댄스와 같아서/ 혼자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혼자 지나치면 춤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밤과 낮, 홀로 있을 때마다/ 내 마음속을 걸어오던 당신이여/ 우리의 먼 여행은/ 바로 옆, 당신에게 가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두 개의 물방울이 하나로 흐르듯/ 그대의 사랑이 내게로 흐르듯/ 나도 그대에게 촉촉이 스며들고 싶습니다.
작품발표회에 가니 첫 순서에 시낭송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남녀 아나운서가 교대로 시를 읽으며 남편은 웃고 아내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 부부의 발표회를 보고 제가 댄스를 3년이나 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지만 나중엔 대회도 나갔습니다. 홀딩이 없는 나라. 댄스의 추억이 그립습니다. 왈츠의 리듬으로 오라 내 사랑하는 이여. 눈감으면 떠오르는 너와 나의 홀딩.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