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하숙집에 숨어지낸 선배 박종운, 한나라당 입당해 변절자 낙인 찍혀
21세 꽃다운 나이였던 박종철 열사의 희생은 군부독재를 무릎 꿇리고 민주화를 가져왔다. 그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 속 주인공들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진출처=CJ E&M 공식 홈페이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부영은 1974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해 정권에 맞섰지만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돼 옥살이를 했다. 그는 교도관들로부터 박종철 사건 전모를 듣게 되고 이를 수배 중인 김정남에게 전한다. 출소한 후 이부영은 정치권으로 투신, 14·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4대 때는 민주당에 있다가 16대 때는 한나라당으로 적을 옮겼다. 그는 2004년 노무현 탄핵 사태 때 “이건 쿠데타야“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부영의 친구 김정남은 수사망을 피해 절과 명동성당에 몸을 숨긴다. 투옥 중이던 이부영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실체를 편지로 작성하고 이를 받은 김정남은 편지를 바탕으로 성명서를 작성해 ‘정의구현사제단’으로 보낸다. 그렇게 쓰인 성명서는 1987년 5월 18일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가 읽었고, 이로 인해 6월 항쟁이 본격 시작됐다. 김정남은 YS 문민정부에서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한 뒤, 현재는 자신이 참여한 30여 년간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정리·기록하고 있다.
최환 검사(하정우 역)는 경찰이 박종철 열사를 화장시키도록 허락해달라며 변사사건 보고서를 내미는 경찰들을 거부한다. 경찰이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최 검사는 상부의 압박을 정면으로 맞선 채 이를 거부하고 ‘시체보존명령’을 내린다. 박종철 열사 부검을 주장하던 극 중 최환은 결국 신변에 대한 협박을 못 이기고 지방으로 좌천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본 문무일 검찰총장은 “극 중에서는 최 검사가 그만두는 것으로 나오지만 계속 고검장까지 했다”고 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 검사에 대해 “(영화에서는) 건달기 있게 나왔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최 검사는 6월 항쟁 이후 문민정부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그는 부산고검 검사장을 그만둔 뒤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최 검사는 다른 검사에게 부검을 지시하는데, 영화에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이 검사는 바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표 출신의 안상수 창원시장이다. 안상수 검사는 부검을 지휘하며 수첩에 메모를 받고, 부검의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안 전 시장은 자신의 저서 <이제야 마침표를 찍는다: 박종철 사건 수사 검사의 일기>를 통해 자신이 부검을 주도한 것처럼 설명했지만, 훗날 부검의에 말에 따르면 부검을 주도적으로 지휘했던 인물은 안상수가 아닌 바로 최 검사였다. 안 전 시장은 15·16·17·18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창원시장이 됐다.
극 중 신성호 <중앙일보> 기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인물이다. 6년째 법조를 출입하던 신 기자는 “경찰, 큰일 났어”라던 이홍규 공안4과장의 말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추가 취재에 나서 특종을 보도했다. 그는 저서 <특종 1987>과 박사학위 논문으로 ‘박종철 탐사보도와 한국의 민주화 정책변화’를 쓰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부검의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의혹에 대한 정보를 얻어낸 윤상삼 <동아일보> 기자는 그로부터 12년 뒤인 1999년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하다가 간암으로 별세했다.
(좌)안상수 창원시장 (우) 박종운 전 한나라당 후보. 연합뉴스
경찰들이 박종철을 고문했던 이유는 선배 박종운 때문이었다. 수배 중이던 박종운은 후배 박종철 하숙집에 며칠 숨어 지냈는데, 대공수사요원들이 박종철을 강제 연행해 박종운 행적을 알아내기 위해 고문했다. 박종철은 선배를 지키기 위해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모진 고문 끝에 숨진 것이다.
박종운은 ‘박종철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을 지냈지만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공천을 받아 부천시에 출마했다. 박종운은 박종철 열사 기일과 생일에 그의 묘를 찾는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 그가 총선 후보 시절 운영하던 홈페이지에는 “종철이가 살아 있었다면 나와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현재의 민주화투쟁이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보는 이들의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박종철의 후배였던 오현규는 민주화운동 맨 앞줄에서 박종철 영정사진을 들었다. 그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해운대구 의원에 당선되며 박종운과 함께 ‘변절자’ 낙인을 받았다.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핵심 인물로는 현 박상옥 대법관이 있다. 박 대법관은 박종철 사건 수사팀 일원이었다. 2015년 박상옥 대법관 후보 인사청문회는 ‘박종철 인사청문회’라고 불릴 만큼 여야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엄격한 검사 동일체 원칙이 적용되는 당시 검찰문화와 시대상황을 고려할 때 박상옥 후보자가 단독으로 추가 수사를 지시할 지위에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상부의 지시나 지휘 없이 별도의 독립적 검사로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아울러 ‘은폐 권유를 받았었나’라는 질의에는 “한 번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무고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가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주도적으로 은폐했던 박처원 치안감(김윤석 역)은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희대의 궤변으로 진실을 숨기려 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구속됐지만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출소했다. 박종철에 대해 단 한 번의 사과도 하지 않았던 박처원은 오히려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은신도피를 지원했다가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