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한농 이종헌 선임 ‘업무평가 최하’…현대차 김광호 전 부장 ‘고소에 해고까지’
일명 ‘땅콩회항’ 사건의 내부폭로자이자 피해자가 된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은 검찰 조사를 받고난 뒤 사측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연합뉴스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은 항공기에 탑승한 뒤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 방법을 문제 삼으며 폭행을 가했고, 박창진 전 사무장을 항공기에서 강제로 내리게 했다. 박 전 사무장은 회사 측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일을 그대로 검찰과 국토교통부 조사 과정에서 털어놨다. 휴직을 하고 업무에 복귀한 박 전 사무관은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됐다.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조양호 회장은 “박창진 사무장이 회사 생활을 하는 데에 지장이 없도록 모든 조처를 다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료들이 박 전 사무장을 따돌리는 등 회사 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3년이 흐른 11월 20일 법원에 대한항공을 상대로 부당징계 무효확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 자회사 ‘팜한농’도 산재 은폐를 신고한 내부고발자에 대해 보복성 행위를 일삼아 도마에 올랐다. 팜한농에서 노무와 원가업무 등 관리직을 담당하던 이종헌 선임은 2014년 사측이 근로자 산재 사고를 은폐한 것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고용노동부는 사측에 과태료 1억 5000만 원가량을 부과했다. 그런데 팜한농은 이 선임에 대해 ‘역량개발 성과 미흡’ 등의 이유로 대기발령을 연장했고, 결국 논산공장으로 인사발령 조치를 했다.
당초 노무와 원가업무 등 관리직을 담당하던 이 선임은 논산공장으로 옮긴 뒤 제초작업, 배수로 청소, 쓰레기 수거 등 자신의 직무와 관련 없는 단순 업무 작업을 지시받아 수행해 왔다. 그는 국민권익위원회에 보호조치를 신청하는 등 반발했지만, 이후에도 회사 측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팜한농은 이 선임을 상대로 시설물 출입제한, 사내 전산망 접속제한, 프린터 이용 제한 등의 조치를 취했고, 업무평가에서도 최하등급인 ‘C’를 줬다. 그는 현재 구미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은 2015년 현대·기아자동차의 엔진 결함을 고발해 150만여 대의 차량 리콜을 이끌어냈다. 20년 이상 현대차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해 온 그는 현대차의 세타Ⅱ 엔진 결함을 발견하고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때만 해도 김 전 부장은 회사가 자신에게 포상을 하리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사측은 1년 동안 이를 감췄다. 결국 김 전 부장은 이 사실을 언론과 국토교통부,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에 제보했다.
사측의 태도는 강경했다. 김 전 부장을 대외비 유출과 사내 보안규정 위반 혐의로 민·형사 고소했다. 그리고 ‘비밀유지의무 및 영업비밀 침해 등 보안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지난해 11월 그를 해고했다. 김 전 부장은 “해고라는 것에 너무 충격이 컸다. 게다가 공권력을 이용해서 고소까지 했지 않나. 민사와 형사 동시에 고소를 당해 힘들었다”며 “조사를 받으며 가족이 있는 집까지 압수수색 당했다. 직장 내 왕따? 해고와 고소는 그 이상이었다”라고 털어놨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해고 취소 및 원상회복’이라는 보호조치를 결정했고, 현대차는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이내 다시 복직을 결정했다. 하지만 김 전 부장은 지난 5월 16일 회사를 그만뒀다.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에 실망했고, 환부를 도려내기는커녕 감추는 데에 급급한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같이 회사 부패 척결을 위해 용기를 내 내부공익신고를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불이익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때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박창진 전 사무장은 “후회는 없다. 진실은 진실대로 말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팜한농의 이 선임도 “저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와 딸에게 많이 미안하지만 제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결심이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 김 전 부장 역시 “부당한 상황을 보고 바로잡는 것이 사회인으로서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자부했다.
한편, 12월 21일 권익위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내부고발로 피해를 본 이들이 권익위에 보호사건(보호조치·신변보호·신분공개·불이익금지 등)을 접수한 현황은 2011년 6건, 2014년 17건에서 2017년에는 31건으로 증가했다. 내부고발자를 압박하는 사례가 7년 동안 약 5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인터뷰] 이지문 대표 “부패 몰수 기금 모아 내부제보자에 보상하자”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는 백마부대에서 중위로 복무하던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관이 병사들에게 당시 여당 후보를 찍으라는 요구를 했다고 폭로했다. 이를 계기로 군 부재자투표가 영외에서 실시됐고, 그 해 대통령 선거는 부대 안이 아닌 일반 투표소에서 투표가 이뤄졌다. ‘반(反) 부패’의 상징으로 통하는 이지문 대표를 만나봤다. ‘반 부패’의 상징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는 기존의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포상금을 더 늘리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준필 기자 ―대한민국에서 ‘내부고발’이란? “용기를 내 내부 비리를 폭로하기엔 법률·제도적으로 너무 부족한 환경이다. 내부고발자가 보호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있는데. “우리나라 법의 핵심은 ‘신분보장’이다. 누군가가 내부고발을 했을 때 그 직급을 보장한다는 게 이 법의 핵심인데,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이 법이 없으면 내 위치를 잃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보상금, 포상금에 대한 부분이 너무 빈약하다. 신고자가 다니는 회사의 비밀을 폭로하고, 그 회사는 500만 원의 과태료를 받는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신고자는 잘 받아도 100만 원밖에 못 받는데 누가 100만 원 받자고 위험을 무릅쓰고 신고를 하겠나.” ―어떤 식으로 법이 개선돼야 하나. “작은 정육점에서 고기의 원산지를 속인 것을 신고한 종업원이 500만 원밖에 못 받으면 신고를 하겠나. 하지만 1억 원을 보상해주면 다들 신고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작은 영세업자들도 위법을 저지르진 않을 것이다. 얻는 사회적 가치가 더 큰 셈이다.” ―그렇게 큰 보상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기업이 부패를 저지르고 부정 축적한 재산을 ‘부패 몰수 기금’으로 환수해야 한다. 이렇게 모인 기금으로 피해자 구제 사업을 하면 된다. 1차적으로는 신고자의 연봉 등을 책임지면 된다.” ―연고주의와 의리 문화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그런 문화가 내부고발자에 ‘배신자’ 낙인을 찍는다. 직장 동료들은 ‘내가 저 내부고발자와 함께 밥을 먹으면 윗선에서 나까지 찍어 내리겠지’라는 걱정을 하고 결국 그는 소외를 당하게 된다. 이는 교육으로 극복하면 된다. 지금은 공직자 대상 교육만 있고, 중고등학생의 청렴 교육은 교장 재량이다. 공익신고를 포함한 청렴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켜야 한다.” ―내부고발을 한 사람들 대부분 그때의 행동을 후회하나. “금전적으로 많이 힘들지 않은 경우의 사람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때로 돌아가면 내부고발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한다. 후회하는 것과 다시는 안 하겠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내부고발을 비교한다면. “외국은 내부고발을 하기에 앞서서 비용과 편익을 다 계산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너무 순진하다. 앞뒤 안 가리고 준비가 안 된 채로 고발하는데, 고발에 앞서서 관련 단체와 변호사를 만나서 상의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에서 피해만 받는다.” ―내부고발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 “내부고발을 하기 전에 법에 대해 숙지하고 이해해야 한다. 회사에서 소송을 걸 경우, 소송에만 매몰되면 삶이 엉망이 된다. 생계를 떠나서라도 규칙적인 생활수단은 가져야 하고 그래야만 장기적인 싸움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단체·법조인과 함께 충분한 상의를 하고 법의 테두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한다. 내부고발 후 (회사의 부당한 대응을 기록하기 위해) 회사 컴퓨터, 팩스, 전화를 사용해서도 안 되고 업무시간에 내부고발 관련 작업을 해서도 안 된다. 회사에선 오히려 더 열심히 근무해야 한다.” ―회사에서 내가 내부고발자인 것을 알아채면 그땐 어떡하나. “회사에서 ‘당신이 내부고발자냐’라고 물으면 인정할 필요 없다. 오히려 ‘조직 내 내부고발자 색출’ 자체가 위법행위라며 반발해야 한다. 또, 감정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상급자에 대한 모욕이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올 수 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해고된 뒤 보복성으로 내부고발을 하는 사례도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경우 회사에서는 ‘너가 해고가 안 됐으면 고발을 했겠느냐’고 되묻는 경우가 있다. 잃을 게 없으니 고발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당사자도 소송이 걸릴 것, 업계에서 평판이 안 좋아질 것을 각오하고 용기를 낸 것이다. 내부고발의 내용이 사심인지 공익적인 목적이었는지 그걸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동기를 왜 따지나. 동기는 계량화할 수 없다. 내부고발자의 동기를 묻고 그 사람을 탓하기 시작하면 내부고발을 할 사람은 없다. 털어서 깨끗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자들이 불이익 당하는 것을 보면 용기가 안 난다. “언론의 책임도 크다. 항상 내부고발의 극단적인 피해 사례를 보여주는데 시청자들이 내부고발을 할 용기가 생길까. 반대로 내부고발로 인해 얻은 혜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병원에서 수액관리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고발해야 내 가족이 제대로 된 수혈을 받을 수 있고, 현대차가 리콜되지 않았으면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고, 불량 소화기에 대한 결함을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큰 화재가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나의 내부고발로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보여줘야 한다.”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