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IB 핵심사업 발행어음 업무 따내…금융권 실세 떠오른 신상훈·김승유와 ‘의기투합’
금융권은 업계 1, 2위 증권사를 제치고 한투증권이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거머쥔 열쇠를 모기업인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과 그의 장남 김남구 한투증권 부회장의 인맥에서 찾고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권의 키맨으로 떠오른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 그리고 호남인맥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다.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자기자본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이 5개 증권사가 초대형IB로 선정될 것이라는 이미 예견됐다. 하지만 금융권은 초대형IB의 핵심사업인 발행어음 업무가 한투증권에만 허용됐다는 점을 주목했다. 특히 한투증권이 자기자본 규모 기준 증권업계 1, 2위인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을 제쳤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발행어음 업무는 수신 기능이 없는 증권사가 기업금융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해당 업무가 허용된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200% 한도 내에서 1년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발행어음 업무가 사실상 초대형IB 핵심사업으로 평가되는 배경이다.
초대형IB로 선정된 나머지 4개 증권사가 발행어음 업무에서 제외된 배경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금융기관의 대주주를 상대로 소송이 진행 중이거나 금융사가 금융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국세청 등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으면 해당 절차가 끝날 때까지 인가 심사가 보류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으로 일찌감치 심사가 보류된 삼성증권 외에도 미래에셋대우·NH·KB증권 등은 각각 다른 이유로 발행어음 인가를 받지 못했다.
우선 NH투자증권은 재무건전성이 발목을 잡았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의 채무보증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3조 1297억 원이다. 미래에셋대우(2조 7462억 원), KB증권(2조 4224억 원), 삼성증권(1조 2834억 원)에 비해 월등히 높아 건전성 문제를 지적받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공정위가 그룹 계열사간 내부거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발행어음 인가 심사가 보류됐다. 미래에셋대우는 이와 관련, 금융당국에 신청한 발행어음 사업 인가 심사가 보류됐다고 밝히며 공정위에 내부거래에 대한 자료 제출을 준비 중이라고 공시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은 박현주 회장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미래에셋컨설팅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래에셋컨설팅은 박 회장과 부인 김미경 씨가 각각 48.63%, 10.2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KB증권은 지난해 11월 금융당국에서 받은 중징계가 문제가 됐다. KB증권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현대증권 시절 대주주 계열사에 대한 신용공여로 ‘기관경고’ 조치를 받은 바 있다.
금융권은 이러한 공식적인 이유보다 한투증권 오너 일가의 움직임에 더 주목하고 있다. 동원그룹 계열인 한투증권은 김재철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전남 강진 출신인 두 사람은 호남을 대표하는 경제인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이들은 금융권 호남인맥과도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데, 특히 호남 금융계의 ‘대부’로 불리는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한동안 야인처럼 지내던 신 전 사장이 우리은행 사외이사로 전격 컴백하는 데 한투증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그런데 실제로 신 전 사장을 추천한 곳은 IMM PE가 아닌 한투증권이었다. 금융권은 대표적인 호남 기반 증권사인 한투증권이 호남권 금융 인맥의 대부로 통하는 신 전 사장을 지원한 것으로 해석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신 전 사장은 신한은행에 근무할 때부터 금융권 호남 출신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유명하다”면서 “당시 은행업이나 초대형IB 등을 통해 사업다각화를 꾀하던 한투증권과도 그런 인연을 통해 의기투합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신 전 사장은 한투증권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재등장한 뒤 금융권의 실세 중 한 명으로 급부상했다. 우리은행에서는 사외이사를 넘어 아예 차기 은행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고, 은행연합회장 선출 과정에서도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이런 자리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차지했지만, ‘신한 사태’ 이후 금융계를 떠나 은퇴한 것으로 치부되던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상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투증권의 심상찮은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6월에는 금융권의 또 다른 ‘대부’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을 한국투자금융지주 고문으로 영입했다. 주목할 점은 김남구 부회장과 김승유 전 회장이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이라는 점이다. 금융권에서는 김재철 회장까지 나서 김 전 회장의 영입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김 회장은 김 전 회장이 하나은행장을 맡고 있던 시절 하나은행 사외이사를 지낸 인연이 있고, 이 관계를 바탕으로 상당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승유 전 회장이 문재인정부 경제 실세라 불리는 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과 경기고-고려대 동문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장하성 실장의 경기고 1년 선배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장 실장과 경기고 동기라는 점 등을 이유로 김 전 회장은 이번 정부의 금융권에서 가장 강력한 ‘보이지 않는 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렇듯 올드보이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을 통해 연결된 학연과 지연은 한투증권의 최근 행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금융권 다른 고위 관계자는 “한투증권이 최근 금융권에서 소위 ‘핫(HOT)한’ 회사임은 틀림없다”면서 “오비이락일 수도 있지만 새 정부 들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 모두 한투증권 오너 일가와 가깝다는 것 또 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