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라지 뱃사공이 긴 줄 하나에 의지해 관광객을 실어나 르고 있다(위). 아래는 태백산 기슭 정암사에 구경온 아 이들. | ||
사방이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들이 제각기 흘러들어 조양강으로 모이고 끝내는 남한강으로 흐르는 그곳에 정선이 있다. 외지사람들은 첩첩산중에 숨겨진 정선이 천혜의 자연경관이라 감탄해 마지않지만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소외된 오지생활의 서러움이 더 익숙하다.
가슴에 사무치는 정선아리랑
두 강이 만나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이 비단 이곳만은 아닐 텐데 오랜 답사지기들이 가슴속에 품고 오는 곳이 정선아우라지라는 말을 들으며 찾아가는 정선행은 숨겨둔 보물찾기에라도 뛰어드는 기분이다.
그러나 정선아리랑의 발원지로 알려진 아우라지강에서 누구나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실망만을 안고 돌아오기 쉽다. 특히 주말에 대형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여유와 분위기조차 조성되지 않는다면 더욱 큰일이다.
다행히 아직은 아우라지를 향하는 길에는 지나가는 차라고는 손에 꼽을 만큼 한적하다. 초입부터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들이 빼곡이 둘러싸고 있는데 경북의 오밀조밀한 풍경과도 다르고 전라도의 풍만스런 산세와도 다르다.
정선아우라지는 오대산에서 발원되어 흐르는 송천과 임계 중봉산에서 발원되는 골지천이 합류되어(어우러져) 흐른다 하여 아우라지다. 조선시대에는 남한강 1천리 물길을 따라 서울로 뗏목을 띄워보내던 목재 산지다. 자연히 전국에서 모여든 뗏사공과 이들을 대상으로 밥을 팔고 술을 파는 객점들이 모여 성시를 이루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가슴 메이는 로맨스와 사연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떼를 타고 떠난 님을 애타게 기다리거나 장마로 인해 강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지 못하는 남녀의 애절한 사연을 담은 정선아리랑이 뗏목을 타고 강물따라 흘러퍼졌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사시장철 임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정선아리랑 ‘애정편’의 일부분이다.
이 외에도 산간마을 주민들의 소박한 생활 감정을 담은 가사가 5백여 가지나 전해온다. 가식없이 솔직한 감정을 여과없이 배설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구슬픈 곡조만은 변치 않고 가슴 언저리에 맺힌다.
지금도 아우라지 강변에는 아우라지 처녀 동상이 꼿꼿이 서서 님을 기다리고 있건만 더 이상 뱃사공은 노를 젓지 않는다. 돛대도 삿대도 없는 나룻배 하나가 긴 줄 하나에 의지해 관광객을 싣고 이쪽과 저쪽을 하루 종일 오고 간다.
▲ 선5일장 풍경. 꼼꼼히 살펴보면 잃어버린 옛 정취를 찾을 수 있다. | ||
정선여행 Tip: ‘정선 5일장’ 기차 상품을 이용해도 좋고 개별적으로 와도 좋지만 그럴 경우에는 정선 공설운동장에서 오후 2시30분에 출발하는 정선군내 관광코스(코스별, 5천~6천원)를 이용하기를 추천한다. 정선 아리랑을 감상하고 싶을 때는 장날 오후 4시40분에 군청 옆 문화예술 회관 3층 대공연장에서 시연되는 정선 아리랑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니 꼭 참고할 것.
시골장터 정취 ‘한번 찾아봐’
정선읍에는 5일장의 전통이 남아 있다. 하지만 옛 정취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도심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 대부분이고 보면 5일장이란 것도 교통의 발달에 의해 영 심심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꼼꼼히 살펴봐야 골목골목 숨어 있는 시골장터의 넉넉함을 찾을 수 있다.
한국산 나이키로 불리던 검정고무신, 새총, 설피, 짚신, 대장간 농기구, 감자떡, 메밀전 등이 정겨움을 더하고 장터에 두런두런 둘러앉아 메밀국수, 메밀전 등을 먹는 맛도 이곳 장터만의 구수한 풍경이다. 사고 파는 물건은 적어도 끝자리가 2일, 7일로 끝나는 날이면 빠짐없이 장이 선다.
‘정암사’ 불당엔 불상이 없다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태백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 정암사(淨岩寺). ‘숲과 골짜기가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북 고한이라면 시커먼 탄광촌을 연상하며 TV 뉴스에서 보고듣던 탄광촌 사람들의 애환을 기억해내기 쉽겠지만 공기처럼 맑은 산사를 만나고 보니 탄광촌은 흔적조차 찾아내기 어렵다.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말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해오는 정암사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유명하다. 창건설화가 분분하나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전설은 자장이 사북리 불소 위에 있는 산정에 불사리탑 세운 얘기다.
탑을 세우고자 했으나 세우면 무너지고 세우면 또 무너지기를 거듭하여 손을 멈추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칡줄기가 세 갈래로 눈 위를 뻗어나가 지금의 수마노탑과 적멸보궁과 사찰이 위치한 터에 이르러 각기 멈춘 것을 보게 되어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을 세웠다고 한다.
세속과의 경계를 구분짓는 일주문을 통과하면 왼쪽으로 선불도량과 무량수전, 자장각, 다리 건너 오른편에는 적멸보궁이 위치하고 있다. 오른편 높직한 축대 위에 올라앉은 선불도량의 모습은 절의 크기를 능가하는 권위를 느끼게 한다. 축대 위에는 작은 돌기둥을 불균형한 길이로 죽 늘어놓았는데 이것이 더욱 특별한 느낌으로 전해준다.
▲ 마노석으로 쌓아올린 수마노탑으로 옥개석 네 귀퉁이에 달린 풍경이 은은한 소리를 낸다. | ||
독특한 수마노탑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수마노탑은 정암사의 가장 높은 곳, 적멸궁 뒤쪽으로 쉽지 않은 계단길을 올라야 볼 수 있다. 정성스럽게 놓인 돌계단은 지겨움이 아니라 기다림의 시간으로 한껏 부풀어오르는 길이다.
수마노탑은 전탑양식인데 재료가 전돌이 아니라 고급 석재로 알려진 마노석(瑪瑙石: 보석의 일종)이다. ‘물길을 따라 온 마노석’이라 하여 수마노탑인데,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무수한 마노석을 배에 실어 물길로 울진포까지 운반한 뒤 신통력으로 태백산(갈래산)에 갈무리해두었다가 불탑을 세울 때 보배가 되게 하였다고 한다.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새말IC~안흥~평창~정선(3시간) / 혹은 하진부IC에서 정선(3시간10분). 정암사는 태백선 사북역과 고한역에서 414번 지방도를 따라 들어간다. 대중교통은 태백선(청량리-고한역),정선선 꼬마열차(증산-구절리)를 이어서 이용한다. 문의 033-591-1069.
박수운 여행작가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