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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골 정상 아찔한 경사면에 새겨진 신선암 마애보살상. 이곳에서 바라보는 남산은 고요하고 아름답다. | ||
남산이란 경주 남쪽에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위봉(468m)과 고위봉(494m)을 중심으로 수많은 계곡과 줄기를 가지고 있으며 남북으로 8km, 동서로 4km나 길게 뻗은 타원형이며 문화재나 유적지들은 주로 서남산, 동남산에 몰려있다. 부처가 보이지 않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고 할 정도로 산 전체가 신라시대 유적들로 뒤덮여 남산 자체를 노천박물관으로 보아야 한다고 할 정도다.
신라 유적과 유물을 보기 위해 경주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불국사와 석굴암 영역인 보문단지를 중심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지만 정작 신라를 제대로 느끼려면 남산을 빼놓아선 안된다.
돌돌돌 구르며 떨어지는 계곡의 물줄기는 음악이고, 솔숲에 숨은 듯 피어나는 진달래는 옛부터 피고 져온 전래의 풍경화가 아니겠는가. 우리 문화에 관심있는 외국인과 국내 답사객들이 올해도 5월까지 이어질 남산의 봄을 찾아 줄을 잇고 있다.
남산을 오르면 ‘잘 단장된 불국사처럼이 아니라 유허가 그대로 보존된 감은사지처럼’ 문화재가 보존되어야 한다는 어느 답사객의 주장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감은사지처럼 주변의 자연과 더불어 천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곳이 바로 남산이기 때문이다. 높은 담장도 비싼 입장료도 없지만 천년고도 경주의 참얼굴을 갖고 있어서 그토록 남산의 가치는 중요해진 것이다.
경주 남산은 40여 개 골짜기에 1백여 개의 절터, 70여 석불, 40여 기의 탑이 산재해 있어 ‘불교의 성지’라 할 만하다. 절터의 숫자로 헤아리건대 불상과 석탑의 숫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이 방대한 문화유적들을 샅샅이 훑어가면서 경주남산을 하루이틀에 다 들여다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많이 보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보통의 하루 관광 일정이라면 서남산, 동남산 혹은 남산종주 등 코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돌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라의 탄생(박혁거세가 탄생한 ‘나정’)과 멸망(포석정)의 장소가 불과 1km에 걸쳐 연결돼 있는 서남산코스와 보리사-부처바위-부처골-감실석상 등 다채로운 부처들을 만날 수 있는 동남산 코스는 반나절코스에 가깝다. 그 두 곳은 굳이 힘들여 등산을 하지 않고도 돌아볼 수 있는 유적 중심의 코스로, 맨 처음 남산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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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나리가 만발한 경주 남산. 천년고도의 진짜 얼굴은 잘 단장한 보문단지 불국사지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존된 바 로 이곳이다. 아래쪽은 칠불암 마애석불. | ||
경주시내에서 언양으로 빠지는 35번 국도변(배동)에 있으며 삼릉계곡이라고도 하고 냉골이라고 불린다. 통일신라 때 세워진 다양한 불상을 만날 수 있는 계곡으로 솔숲 사이 진달래가 철쭉과 함께 늦도록 만발하여 찾아온 등산객들의 춘심을 어루만진다.
삼릉은 아달라왕, 선덕왕, 경명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세 왕릉을 말하며, 계곡 입구 울창한 소나무숲에 나란히 누워 있다. 매년 청명(양력 4월5, 6일)에 삼릉에 제를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삼릉계곡에서 상선암까지 이르는 냉골에서 맨처음 만나는 불상은 목이 잘린 부처의 모습이다. 몸만 남아있어 금방 눈에 띄기도 하지만 단정한 결가부좌의 위엄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부터는 바위 계단길이 많지만 크게 어렵진 않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선각여래좌상-석불좌상까지 순서대로 볼 수 있다. 보물로 지정된 삼릉골 석불좌상은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데 깨진 코 밑부분을 시멘트로 보수한 모습이 아쉬움을 남긴다.
남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 상선암에 올라서면 주위 경관에 탄복하게 된다. 이곳에서 물을 보충하고 암자 뒤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남산 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답다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을 만난다. 높이 5.2m, 폭이 약 4.2m에 이르며 절벽 끝에서 웅장한 자태로 멀리까지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절벽 끝에는 기도터가 있어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곳 역시 소원을 비는 어머니들이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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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암에서 내려다본 칠불암과 경주의 모습. 위 사진은 칠불암에서 하산하면 만날 수 있는 남산리 쌍탑으로 남산 산행의 마지막 선물이다. | ||
금오산 정상에서 통일전으로 난 남산횡단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곧바로 용장사터 안내판이 나오는데 굳이 용장사터로 길을 잡는 것은 용장사터 삼층석탑을 보기 위함이다. 절벽 끝에 우뚝 솟은 삼층석탑(보물 186호)은 남산전체를 하층 기단으로 삼아 장쾌하게 서있기 때문. 상륜부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아래에서 바라보는 석탑은 그 자체로 신령스럽다. 남산에 자리한 모든 조형에는 부드럽지만 위엄이 넘치는 부처의 모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용장사에는 <금오신화>를 썼던 김시습에 얽힌 설화가 전해져 온다. 그의 나이 21세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전국을 유랑하기 시작는데, 31세부터 37세까지 머문 곳이 이곳 용장사였다고 한다. 김시습은 ‘용장골 깊어 오가는 사람 없네’라고 시를 읊었는데, 지금도 용장골은 남산의 수십 계곡 중에서 가장 깊은 골을 갖고 있다.
종주의 마지막 길은 용장사터에서 신선암, 칠불암까지로 이어진다. 칠불암은 용장계곡을 따라 호수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산을 타고 봉화골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 신선암 마애보살상이 있는 봉화골 정상은 평온한 금오산과는 느낌이 다르다. 깊고 큰 줄기를 따라 엄숙하기까지 한 남산의 힘이 묻어난다고 할까. 이 느낌들은 고스란히 신선암, 칠불암에 옮겨진 듯하다.
신선암 마애보살상은 동쪽으로 돌출된 바위절벽에 얇게 감실을 파고 새겨진 마애불이다. 남산에서 가장 아찔한 자리에 앉아 남산동으로 뻗은 남산을 조망하고 멀리는 토함산도 내다본다. 절벽 아래 칠불암을 내려다보기도 아슬아슬한데 날씨가 좋지 못할 때는 안전사고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앞쪽 바위 사면에 조각된 사면불과 뒤쪽 자연 암석에 새겨진 삼존불을 합쳐 칠불암이라 한다.
여유로운 하산길은 대개 통일전 입구까지 이어지고 아름다운 남산동길에서는 쌍탑인 남산리 삼층석탑이 마중인지, 배웅인지 반갑게 서있다. 여력이 된다면 서출지나, 통일전을 구경해도 좋고 차로 약 10분 거리인 보리사에 들러도 좋겠지만 남산 종주길만으로도 경주의 아름다움은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경주 샅샅이 살피기]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에서 삼릉으로 가는 경우에는 오릉앞 사거리에서 언양 가는 35번국도를 따라간다. 포석정을 지나 1.5km 정도 가면 삼릉주차장이다. 통일전으로 가는 경우에는 경주 IC에서 7번국도를 따라 10분 정도 가야 한다. /대중교통은 경주 고속버스 터미널 또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통일전 방향으로 11번 버스, 삼릉 방향으로 500번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경주역 054-772-7788, 고속터미널 741-4001
▲별미 & 숙박: 대릉원길(일명 쪽샘길)에 반찬이 20여 가지나 나오는 쌈밥집들이 많다. 구로쌈밥(054-749-0600)이 유명하며 쌈밥정식 6천원. 숙박은 보문단지에 비해 경주터미널 뒷편의 모텔들이 싼 편이다. 몇 집 안되지만, 미리 예약하면 깨끗한 민박을 이용할 수도 있다. (등잔초가집 745-7254, 고도민박 775-2882, 골기와집 745-9020)
▲기타: 남산이 처음이라면 경주남산연구소(kjnamsan.com/ 745-2771)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경주남산문화유산답사반’이나, ‘경주남산 알기 답사반’에 참여하여 함께 올라도 좋다.
박수운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