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만에 육중한 대문을 개방한 청남대에 신록이 우거졌 다. 사진은 청남대 배밭길에서 바라본 대청호. 아래는 본관 내부를 둘러보는 관람객들. | ||
대청호 깊은 곳에 자리잡은 대통령 별장 ‘청남대’가 그 문을 활짝 열어 문의마을과 하나가 된 까닭이다. 개방된 지 열흘, 벌써 호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느낄 만큼 문의마을 사람들은 축제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청남대 개방과 함께 밀려드는 관광객들 등쌀에도 아직은 즐겁기만 한 청원군 문의마을로 가보자.
연초록 잎들이 꽃보다 더 빛나는 5월. 어느 곳인들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키다리 아저씨의 높은 담집’처럼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금단의 땅’이 비로소 자유롭게 숨을 쉬는 청남대야말로 이 5월 한층 따사로운 햇살을 맞고 있다.
청와대의 남쪽에 있다하여 ‘청남대’라 불렀다는 이 별장은 충북 청원군 문의면 소재로 대청호반 한가운데 아늑한 곳에 자리를 틀었다. 천년전 신라 고승 원효가 지형을 둘러보고 ‘장차 임금이 머무는 나라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주위 능선이 임금 왕(王)자를 이루고 좌청룡 우백호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옥새를 닮은 옥새봉과 아홉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가진 용굴이 있어 이런 말들은 한층 그럴싸하다.
호반을 곁에 두고 달리는 연초록의 가로수 터널은 이미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 훌쩍 자라있다. 보기만 해도 하루이틀쯤은 즐거울 것 같은 푸른 생명력으로 넘쳐난다.
▲ 문의문화재단지엔 삼년상을 치르던 여막도 재현해 놓았 다. 장승 모양의 이정표도 이색적이다. | ||
정문에서부터 청남대 본관까지는 도우미들의 안내를 받으며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본관 정문 앞에는 청남대를 돌려받은 문의마을 주민들이 기쁜 마음으로 쌓아올린 돌탑이 관람객들을 반겨준다. 본관 주변으로는 대통령의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마련된 사색의 공간이 대부분이다. 본관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미니골프장, 초가정 왼쪽으로는 오각정, 양어장 등 주로 자연 속에서 조용히 휴식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청와대처럼 청기와를 입힌 본관은 생각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20년 전 인테리어를 그대로 보전해온 탓에 고급스런 맛은 있되 화려한 치장은 생략된 모습이다. 1층은 회의실, 접견실, 손님용 방이 있고 2층은 대통령 침실과 서재, 거실과 가족실 등이 있다. 그나마 천장의 화려한 샹들리에나 고급스런 소재의 가구들이 관람객들에겐 볼거리지만 한결같이 서구식 인테리어며 가구들이라 섭섭함을 드러내는 관람객도 있다.
청남대의 최고 볼거리는 역시 50만 평에 골고루 식재된 4천여 그루 수목이 호반과 어우러진 풍경이다. 외부와의 단절이 산림을 보호하는 훌륭한 울타리였던 셈이다. 특히 본관 입구의 반송, 본관 잔디밭의 금송과 백송 등은 대표적인 조경수라 할 수 있다. 본관 주변에는 역대 대통령 영부인들의 취향에 따라 매발톱, 놀솜방망이, 비비추, 꽃도라지 등 희귀한 국내 야생화 단지가 조성돼 있어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공간별로 마련된 세 개의 정자도 볼거리다. 본관 뒤쪽 소나무 숲길과 야생화가 조화를 이룬 산책길 끝의 아담한 오각정, 골프 연습장을 지나 옛스런 멋이 배어나는 초가정, 아름다운 배밭길의 배나무밭 정자 등은 한결같이 대청호반과 야트막한 산들이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을 얻어 청남대를 찾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용굴. | ||
‘청남대를 돌려주신 대통령께 감사합니다’ 청남대 주변에는 이런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청남대가 출입통제구역으로 묶이면서 본의아닌 불편을 겪어야 했던 문의면 사람들은 그간의 숙원을 성취한 기쁨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대청호 건설과 함께 수몰된 문의마을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통째로 옮겨 약 3만3천 평 규모의 문화재단지로 조성해 놓은 곳을 문의문화재단지라 부른다. 이 마을의 오랜 옛집들, 지금은 지방문화재가 된 문산관을 비록해 양반가옥, 전통가옥 등 고건물과 성황당, 연자방아 등 옛 생활의 흔적까지 그대로 옮겨 재현해 놓았다.
행정구역으로 청원군 문의면에 해당하는 이 마을은 조선시대에는 문의현이 있던 곳으로 향교와 객사가 자리한 행정중심지였다. 문화재단지의 제일 높은 곳에 당시의 객사를 옮겨놓았고 중부지방 특유의 토담집과 주막집도 원래 모습대로 꾸며놓았다. 부모님 상을 당한 뒤에 여막을 지어 삼년상을 치르던 모습도 재현해놓아 흥미를 끈다.
전통마을에 비해 그리 특별할 것은 없지만 계단식으로 구성된 문화재단지는 위로 올라 갈수록 대청호가 앞마당처럼 넓게 보여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하다. 언덕 위의 아담한 야외공연장은 문화재단지에서 가장 훌륭한 공간이다. 주말이면 탁 트인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국악이나 일반공연이 펼쳐진다.
문화재단지 내에는 또 문의기와전시관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1996년 11월 개관한 전시관으로 백제시대부터 근대까지의 기와를 비교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곳이다. 와당 및 기와 7백44점과 문화적 가치를 지닌 불상, 석조유물 등도 함께 전시해 놓았다.
문화재단지로 들어오는 길에는 문화재단지 간판보다 ‘문의영화마을’이라는 큰 안내판이 더 눈에 띄는데 사실 문화재단지 주차장은 밤마다 자동차극장으로 변신을 한다. 충북 최초의 자동차극장으로 2백50여 대를 동시 수용할 수 있어 데이트 코스로도 그만이다.
문의지역은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넓게 분포돼 있다. 대표적인 곳이 문의마을에서 청남대로 가는 도중 위치한 용굴이다. 청남대 제 1관문에 이르기 전 길가에 작은 분수대와 함께 ‘용굴’이라는 안내표지가 나온다.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된 석회암 수평동굴로 길이 약 60m이며 입구로부터 30m 지점에 너른 광장이 있어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터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성질이 포악하고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던 열 마리의 용이 개과천선하는 마음으로 동굴에서 수도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한 마리의 이무기가 이를 참지 못하고 호수의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한다. 이에 옥황상제는 한 마리의 이무기를 죽이고 아홉 마리의 이무기를 용으로 만들어 승천시켰다는 것이다. 굴 입구 위쪽에 하늘을 향해 뚫려있는 구멍이 그럴싸한 증거로 제시되곤 한다.
▲청남대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신탄진IC 통과후 첫 번째 사거리에서 직진하고 두 번째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청주, 대청댐 방면이다. 현암사와 팔각정을 지나면서부터는 ‘청남대’ 이정표가 나온다. 문의문화재단지가 먼저 나오고 5분 정도 더 들어가면 청남대 셔틀버스 정류장과 안내소다. 자가용은 여기서 용굴 있는 곳과 제2문 앞까지 진행할 수 있으나 주차할 수 있는 곳이 없어 되돌아 나와야 한다.
청남대관광안내소 043-220-4999
충청북도 관광과 043-220-4261~3 www.cbtour.net
박수운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