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구도 ‘개헌vs호헌’으로 재편되면 아군은 결속 적군은 내분
특히 개헌의 블랙홀인 권력구조 개편을 후순위로 미루는 ‘최소 개헌’도 언급했다. 6·13 지방선거와 동시 투표하는 개헌안은 기본권·지방분권에 한정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청와대 의도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한국당은 권력구조를 함께 논의하는 ‘패키지딜’로 맞불을 놨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6일 오전 국무회의 참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꽃놀이패냐, 자충수냐.’
문 대통령의 개헌 이슈 선점의 결말은 둘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 승부수는 역대 대통령과는 다르다. 개헌은 대표적인 국면전환용 이슈다. 국정농단 게이트로 벼랑 끝에 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10월 24일 개헌안을 던진 게 대표적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명박(MB) 전 대통령도 수세 국면 타개용으로 개헌안을 던졌다. 모두 용두사미에 그쳤다. 역대 정권에서 높은 지지도일 때 개헌안을 꺼내는 것은 일종의 금기로 통했다.
문 대통령의 개헌 문법은 정반대다. 당·청 지지도는 새해 들어서도 변함없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반면 야권의 대안 부재론은 정점을 찍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으로선 올해 6·13 지방선거는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다. 문 대통령은 이 와중에 개헌 이슈를 던졌다.
내부에선 의견이 갈린다.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개헌 약속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과 함께 청와대발 개헌으로 국회 논의를 어렵게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문 대통령의 권력구조 후순위 개헌을 “앙꼬 빠진 찐빵”이라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의 ‘최소 개헌’ 드라이브에는 복합적인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우선 지방선거 구도의 재편이다. 지방선거 구도가 ‘개헌 대 호헌’으로 재편한다면, 야권의 ‘정권 심판론’ 프레임은 무력화된다. 구도 흔들기를 통해 변수를 줄이는 ‘1타 2피’ 전략이다. 청와대로선 최소 개헌 이슈 제기로 야권 부활의 싹을 완전히 도려낼 수 있다. 청와대발 개헌 이후 자유한국당 홍준표·김성태 원내대표가 각각 “좌파 사회주의로 개헌하자는 것” “땡처리 패키지로 다루자는 거냐”라고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문 대통령이 언급한 ‘선 기본권·지방분권’ 개헌은 가장 효과 높은 선거운동이다. 내부 결속은 다지고 외부 결속은 흐트러뜨릴 수 있다. 지방분권은 역대 지방선거마다 정국을 관통한 핵심 키워드였다. 야권이 이를 반대한다면, 비수도권 후보를 중심으로 당 지도부에 불만을 드러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범야권이 반개헌 프레임에 묶일 경우 상당한 고전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대로 여권은 사활을 걸고 있는 낙동강 벨트 탈환에 청신호를 켤 수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번 선거 승패의 가를 지역은 수도권과 함께 부산·경남(PK)”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투표율 제고 효과도 있다.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은 대체로 낮았다. 첫 번째 민선이었던 1995년에만 68.4%를 기록했을 뿐, 제2회(1998년) 52.7%, 제3회(2002) 48.9%, 제4회(2006) 51.6%, 제5회(2010) 54.5%, 제6회(2014) 56.8% 등에 불과했다. 6·13 지방선거와 개헌을 동시 투표를 할 경우 국민적 관심사를 모을 수 있다는 게 여권 내부의 판단이다. 여기에 미니 총선급으로 판이 커진 재보선까지 같이 치러진다면, 투표율이 승패를 가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기 중후반을 내다보는 사전 작업적 성격도 있다. 레임덕 국면에서 개헌 카드는 일종의 정치 공식이다. 이번에 개헌을 못 하더라도 향후 수세 국면에 몰릴 경우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카드다. 야권을 반대 프레임의 덫에 가둘 수만 있다면, 개헌 카드는 국면전환용 카드로 유효하다. 문 대통령이 레임덕(권력누수)에 빠졌을 때 으레 나오는 야권 공세의 명분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의 ‘최소 개헌’이 꽃놀이패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청와대의 딜레마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난관은 실현 가능성이다.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전제조건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다. 한국당 현재 의석수는 117석이다. 한국당만으로 개헌 저지선 확보가 가능한 셈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여야 모두 개헌선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개헌 저지선은 확보했다”며 “이것이 개헌 정국에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보수논객으로 활동 중인 정두언 전 의원도 “청와대 발의는 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발 독자 개헌론을 내놓은 순간, “왜 지금이냐”라는 헌법개정 당위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할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을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할 경우 긁어 부스럼을 만든 ‘대통령 책임론’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대통령 권력구조 개편을 뺀 최소 개헌도 딜레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 여론이 반대 여론을 압도하지만, 이는 대통령 권력구조 문제까지 포함한 개헌안이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큰 상황에서 이를 뺀 채 ‘최소 개헌’을 추진할 경우 되레 관심도가 낮아질 수도 있다.
김무성 한국당 의원은 “개헌은 제왕적 권력구조를 분산시키는 ‘권력 분산 개헌’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권력구조를 빼자는 여권이 호헌세력”이라고 날을 세웠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문 대통령은 4년 중임제론자다. 최소 개헌 의사를 밝힌 자리에서도 대통령제 선호 의사를 밝혔다. 반면, 한국당과 국민의당 등은 분권형 개헌(이원집정부제)을 원한다. 대통령제론자인 문 대통령은 정작 최소 개헌의 한 축으로 지방분권을 제시했다.
대통령제와 지방분권은 상충 관계는 아니지만, 헌법이 할 수 있는 지방분권은 사실상 추상적·선언적 조문의 변경 정도다. 국회 한 관계자는 “지방재정의 분권화 등은 헌법이 아닌 법률 개정으로 가능하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최소 개헌 발의가 지방선거용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야권은 이미 문 대통령의 중임제 개헌을 ‘정권연장용’으로 폄훼했다. 한국당 한 의원은 “친문(친문재인) 정권을 8년간 하겠다는 술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 동력도 문제다. 여당은 지난해 12월 12일과 14일 개헌 의원총회를 열었다. 그러나 첫 번째 개헌 의총 땐 70명, 두 번째 개헌 의총 땐 50명이 참석했다. 우원식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참석 독려 문자를 돌렸지만, 내부 반응은 차가웠다. 민주당 한 의원도 “국회 합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독자 개헌 준비에 들어간 청와대는 정태호 정책기획비서관 등을 투입, 헌법개정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개헌 시계는 지금도 흐른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4년 중임제는 야당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결국 지방선거에서 ‘찬성 세력 vs 반대 세력’으로 몰아치기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청와대가 4년 중임제 단일안을 밀고 나가는 것은 최악의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