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찍고 대권행 포석…“꽃길만 간다”
생뚱맞게 제1야당 대표가 당협위원장을 하려는 것에 정치권은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배지가 없는 원외라서 원내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배지는 자신의 목표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당협위원장을 맡더라도 2020년 총선에는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원 하려는 시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일단 그는 대외적으로는 “보수의 기반인 대구경북(TK)을 교두보로 삼아 당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것”이라는 명분을 내놓고 있다. TK부터 잡으려면 자신이 대구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꽃길’로 불리는 TK로의 홍 대표 입성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는 상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왼쪽)과 함께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의 꿈, 그리고 TK행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이들은 TK에서 나온 역대 대통령이다. 물론,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상적인 헌정 절차를 통해서 대통령직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국민 직접선거를 통해 청와대로 갔지만 엄밀히 말해 그 역시 군부정치의 연장선상에 놓인 정치인이었다. 민주정치 체제를 갖춘 이후 탄생했던 대통령 가운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TK에서의 압도적 지지를 밑바탕으로 청와대 주인이 됐다.
홍 대표도 앞서 청와대를 다녀간 이들의 행보를 분석해왔고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홍 대표의 꿈 역시 국가 경영이다. 그는 “모든 정치인의 마지막 꿈은 당연히 국가 경영”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둘러서 얘기할 필요도 없이 홍 대표는 대통령을 하고 싶어 한다. 홍 대표와 오랫동안 교분을 쌓아온 한 현역의원은 “홍 대표는 TK에 가서 ‘확실한 TK정치인’이 되어야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대구로 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 대표는 1월 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초중고를 함께 다녔던 어릴 적 친구들이 있는 대구에서 마지막 정치 인생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만감이 교차한다. 대구가 마지막 종착역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제 TK정치인으로서 새로이 시작한다는 선언이다. 사실 홍 대표의 대구행은 홍 대표 입장에서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확실한 TK정치인으로 자리 잡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인 동시에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대비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구행을 알리면서 “대구경북(TK)을 안정시키고 동남풍을 몰고 북상해 지방선거에서 꼭 이기겠다”고 했다.
# 홍 대표 ‘고향 정치’ 시동
홍 대표는 페이스북 글에서 “과거 3김(金) 시대 지도자들은 지역구를 옮겨 다닌 일이 전혀 없었다”며 “제 인생처럼 정치도 역마살이 끼어서인지 전국을 유랑하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홍 대표는 고향이 경남 창녕으로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서울에서 국회의원 생활을 했고 도지사는 경남에서 했다. 페이스북 글을 볼 때 서울과 경남을 오가며 확실한 정치적 근거지를 못 만든 과거 이력에 대해 홍 대표 자신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3김’을 언급했듯이 홍 대표는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이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정치인이라는 것이 홍 대표 설명이다. 홍 대표가 좋아하는 YS는 1992년 대선에서 승리했을 당시 부산경남(PK)라는 자신의 오랜 정치적 근거지를 밑천으로 삼아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를 내걸어 TK의 마음까지 잡아냈다. 그 힘을 바탕으로 YS는 청와대로 갔다. YS 역시 ‘고향 정치’가 큰 동력이 됐다. YS 외에도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호남의 맹주였고,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 역시 충청권을 아성으로 갖고 있었다.
홍 대표와 친한 사이인 김문수 자유한국당 대구 수성갑 당협위원장의 고백도 홍 대표에게는 ‘고향 정치’의 위력을 알려주는 좋은 본보기다. 서울대 출신에다 노동운동 경력, 3선 의원, 경기도지사 등 화려한 프로필을 갖추고 있는 김문수 위원장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김부겸 의원에 밀려 낙선했다. 낙선 이후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허주(虛舟·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 아호) 얘기를 꺼냈다. 기자도 김 위원장으로부터 허주에 대한 ‘스토리’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경북 영천 출생으로 경북고를 나온 김 위원장은 이력을 보면 ‘딱 TK’지만 국회의원을 경기도 부천에서 3번 하고 도지사도 경기도에서 했다. 객지에서만 정치를 한 것이다. 허주는 김문수 위원장이 경기도에서 국회의원 당선이 됐을 때 충고를 했었다. “김 의원, 정치는 고향에서 해야 하네. 고향에 내려 가 정치를 하시게.” 부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 위원장에게 허주는 고향에서 정치를 하길 권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경북고 선배인 허주의 말을 묵묵히 들었지만 그 때는 그 말에 어떤 깊은 의미가 담겼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당시엔 허주의 깊은 뜻을 깨치지 못했는데 대구로 와서 총선에 출마해보니 ‘그 때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실감이 난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얘기다.
‘고향 정치’에 시동을 거는 홍 대표는 지난 장미 대선에서 한번 떨어졌다. 떨어진 것이 큰 흠이 될 것도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셨지만 다음 대선에서 청와대 행에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재수를 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여러 번 대선에 도전했다. 한번 떨어져본 경험이 세력을 다지는 데는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홍 대표는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 대표 대구 입성, 반응 엇갈려
자유한국당 대구 북구 광역·기초의원들은 1월 5일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대구행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들은 “최근 대구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없고 지역을 이끌어나가는 리더의 부재로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지역 민심을 중앙에 제대로 반영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한국당 혁신과 조직 쇄신을 위해 당협위원장 재선정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홍준표 대표가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에 거론되고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한국당 대구시당위원장은 홍 대표의 대구 입성에 대해 “TK를 대표하고 대한민국 보수층의 결집을 선도해나가는 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하다”며 “현실적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홍 대표가 대구에 정치적 기반을 두는 것은 대단히 긍정적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TK 주요 현안과 민심을 대변해 현 정부를 견제하는 데에도 홍 대표가 큰 책임을 맡을 것”이라고 했다. 정태옥 한국당 국회의원(북갑)도 “홍 대표가 대구에 오는 것은 그만큼 보수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방증”이라며 “21대 총선에서 대구 불출마를 약속한 만큼 홍 대표의 진정성 있는 결단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태흠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1월 8일 입장문을 내고 “당 대표라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험지를 택해 희생과 헌신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텃밭 대구 선택은 ‘셀프 입성’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앞서 대구를 희망한다고 했을 때는 설마설마 했는데 기가 막힐 뿐”이라며 “당 대표라면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솔선수범을 보이며 낙동강 전선 사수작전이 아니라 인천상륙작전을 도모해 전세 반전을 도모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국당 부산시장 후보 출마를 준비 중인 박민식 전 의원도 같은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홍 대표의 행보에 대해 “보수주의 대신 보신주의를 선택했다. 한마디로 창피하고 민망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홍 대표의 대구 당협위원장 신청 철회를 촉구했다. 그는 “당 대표가 제 한 몸 챙기겠다고 선언한 것은 전형적인 기득권이고 웰빙 작태이며 보수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소속 대구의 한 현역의원은 “꽃길로 무혈입성하려는 홍 대표에 대한 지역의 불만이 솔직히 크다”며 “하지만 홍 대표 외에는 한국당의 얼굴이 될 대안이 없는데다 당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지방선거 공천권까지 쥔 마당이라 홍 대표의 위세를 막을 힘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런 가운데 홍 대표가 지원한 대구 북을을 지역구로 둔 현역인 홍의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2의 김문수가 될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홍 의원은 1월 초 “홍 대표가 온다고 하는데 일반 시민은 김문수 전 한국당 의원이 수성구에서 실패한 것과 비슷하리라 전망할 것”이라며 “김 전 의원은 수도권에서 모든 걸 다 하고 대구에 와서 제대로 말 한마디 거든 적도 없다. 홍 대표도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 대구에 내려오려는 것이라면 ‘홍문수’밖에 더 되겠느냐”고 했다.
홍 의원은 또 ”언론에서 홍 대표가 고려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지역구에 있는 한 사찰에서 피신한 적이 있다는 보도를 얼핏 본 것 같은데 고대 동문인 제 입장에서 보면 홍 대표의 운동 경력은 찾아보기 힘들고, 선후배 사이에서도 홍 대표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