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약속했던 유류 및 물자 지원 취소 통보...김정은 “차라리 미국과 논의” 불만 표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특사 자격으로 지난해 11월 17일 방북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오른쪽)이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측근 최룡해 당 부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는 앞선 연재를 통해 지난 연말 조기 진행된 북한의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1일자로 북한군은 한일 및 한미 해상 합동군사훈련에 대비해 역대급 동기훈련 및 예비훈련을 진행했다. 당연히 군사훈련에는 기름을 비롯한 각종 물자가 넉넉하게 공급되어야 하지만,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현실은 녹록하지 못했다.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7일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기 이전, 북-중 사이에선 11월 훈련을 앞두고 기름을 비롯한 물자 공급 약속이 선행됐다고 한다. 북한 당 정무국 군사부에선 지난해 10월 훈련 준비 과정에서 이미 중국 군부 측에 11월 20일 이전까지 기름, 식량, 군수용 약품 등 물자를 사전 청구했고, 중국 역시 이에 대한 이행을 약속한 터였다고 한다. 당시 중국 측은 11월 초 미중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중 관계가 원만하게 추진되면 일부 이 같은 대북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한다.
북한이 중국에 요청한 물자의 핵심은 역시 기름이었다. 사전에 군사훈련을 위해 정제유 6000여 톤을 중국 측에 요구했다고 한다. 그 구체적인 유종은 항공기용 정제유 3000톤, 함정 및 기타 육지 운수기재용 정제유 2000톤, 그리고 모빌유 1000톤 비율이었다고 한다.
이전에 비해 훈련 규모를 확대한 북한군 입장에서 이 같은 특수용도의 정제유는 필수였다. 무엇보다 이러한 품목의 정제유들은 북한의 전략자산 운용에서 꼭 필요했다. 또한 북한 정제 기술로는 생산하기 어려운 품목이기에 더더욱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무엇보다 이중에서도 핵심은 고성능 비행기 및 함정에 쓰이는 고가의 각종 모빌유 부족이었다고 한다. 모빌유는 각종 군사장비들을 가동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윤활유다. 자동차로 따지면, 에너지원인 휘발유가 아닌 엔진오일이라 할 수 있다. 원활한 모빌유 공급이 없다면, 아무리 에너지원 역할을 하는 기본적 유류가 넉넉해도 전술 훈련 및 전투작전 효과가 상당히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러한 모빌유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 할 경우 한국보다 날씨가 10도 정도 낮은 북한의 혹한 동계훈련과정에서 전략 및 전술 무기들이 오작동할 수 있다. 이는 인명피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를 감수해야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일반적으로 북한군은 기름을 비롯한 각종 전략물자 대부분이 넉넉지 못했지만, 그중에서도 자체 생산이 불가능한 모빌유 비축 분량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미국과 국제사회의 다양한 대북제재를 받고 있는 현재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북한군은 앞선 중국과의 약속을 토대로 기존 비축분의 기름과 모빌유를 우선 사용했다고 한다. 어차피 유류 저장기간을 넘어선 물량을 소비해야 했고, 11월 20일을 즈음해 중국이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중국은 북한에 약속한 기름 및 물자 지원을 이행하지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앞서 관계자에 따르면 오히려 중국은 미 함대 훈련이 있었던 11월 초 북-중 국경 지대에 배치한 자국 해방군 대형을 방어대형으로 배비했다. 보통 미 함대 훈련 시 이 지역 해방군들은 공격대형이 우선이다. 이 때문에 북한 최고지도부가 심히 섭섭해 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은 지난해 11월 17일 북한을 방문했다. 쑹타오 특사단 측은 최룡해와의 공식 면담 전 모처에서 북한의 당 부부장급 간부를 비롯한 복수의 인사들과 비공식 사전 면담을 진행했다고 한다.
북한 측은 이 면담에서 기존에 중국이 약속한 물자 공급을 요구했지만, 중국 측은 국제적 상황을 이유로 거부했다고 한다. 대신 중국 측은 오는 2월 중순을 전후해 전략물자를 나누어 순차적으로 공급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된 북-중 해상국경 단속을 일부 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앞서의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러한 중국 측의 제안에 심히 실망했고, 오히려 중국 측에 ‘통중(通中)이 아닌 미국 및 서방세계와 직접 현안을 논의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결국 쑹타오 부장은 지난해 11월 17일 최룡해와의 면담만 이행하고 빈손으로 중국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국의 특사와 면담을 거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앞서의 이행되지 못한 북-중 간 지원 약속 탓이 크다.
최근 북한의 대미대남 유화 스탠스도 이러한 북-중 간 외교적 갈등 양상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지난해 12월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군은 최고사령부 작전 지휘조 내 토의를 거쳐 각 산하 부대에 ‘유류 공급 허가량을 적극적으로 줄이라’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한다. 북한군은 이번에 훈련 규모를 역대급으로 확대하면서 1만 톤 이상의 유류 소비를 계획했지만, 이 계획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슷센터 대표(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