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은 ‘’어음‘’ 그는 ‘’현찰‘’?
▲ 탈당 파문을 일으킨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향후 행보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른쪽은 위부터 이명박 대통령,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정운찬 총리 후보자. | ||
사실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 내각을 총괄하는 막중한 직책의 총리 자리가 세 지도자의 자존심 싸움거리로 전락한 것에 대해 실망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판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2기 총리로 충남 공주 출신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심 전 대표 ‘대타’로 기용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충청 출신 총리에 목을 맨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다면 왜 이 대통령은 심 전 대표에게 정권 출범 직후부터 지금까지 세 차례나 총리직을 제안할 정도로 집착했던 것일까. 심대평 ‘몽니 정국’의 그 이면을 들여다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심대평 모시기’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8년 1월 인수위원회 시절에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를 초대 총리로 영입하려고 했다. 그 다음에도 지금까지 두 차례 더 심 전 대표는 청와대의 공식적인 총리직 제의를 받았다. 정치권에서는 총리와 같은 중요한 직책을 인선하는 과정에서 특정 인물을 세 차례나 구체적으로 지명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왜 이 대통령은 ‘심대평’이라는 인물에 꽂힌 것일까.
먼저 이 대통령은 심 전 대표의 뛰어난 행정 능력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서울시장으로서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2002. 7~2006. 6)을 맡고 있을 때 심 전 대표(민선 3기 충남 도지사)와 찰떡공조를 이뤄 중앙정부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등 호흡이 잘 맞았다고 한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구체적 성과를 내는 공직자를 매우 선호한다.
심 전 대표는 전국 우수광역단체 평가에서 3년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전국 14위(89년 도민소득 통계)였던 충청남도를 2위(96년 도민소득)로 올려놓는 등 도백으로서 출중한 능력을 과시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구미에 딱 맞는 인사임에 틀림없다.
또한 처음으로 서울시장이라는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 대통령이 ‘행정의 달인’ 심 전 대표를 공무원의 ‘사표’로 삼고 그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노력했다는 후문도 있다.
두 사람은 성향과 가치관도 비슷했다. 당시 시도지사협의회를 이끌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고려대 경영학과, 심 전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서 서로 ‘상과’ 출신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또한 이 대통령은 심 전 대표와 1941년 신사년생(뱀띠) 동갑으로서 남다른 유대감으로 말도 잘 통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심 전 대표는 자신의 프로필에서 스스로의 장점을 ‘강인한 의지와 추진력, 소탈한 인간미’를 꼽고 있는데 이것도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기질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특유의 승부욕이 공통분모로 자리 잡는다. 이 대통령은 군부대 방문 때 아들뻘 되는 군인들과 족구를 할 때도 절대 설렁설렁하는 법이 없다.
이 대통령과 테니스를 쳐본 인사들은 “웃으면서 하는 것 같지만 꼭 이기려고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무슨 게임이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라고 말했다.
심 전 대표도 승부욕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순둥이 같은 외모와 달리 지독한 말썽꾸러기였다고 한다. 덩치 크고 주먹 잘 쓰는 친구를 보디가드로 삼을 정도로 보스 기질이 있었고 자존심이 강해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는 것. 또 승부근성이 강해 제기차기를 한 번 시작하면 발이 아파서 못 찰 정도까지 계속했고, 구슬치기를 시작하면 수업이 시작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딸 때까지 놀았다고 한다. 이토록 어릴 때부터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던 그가, 자신의 일생일대 꿈인 총리직 등극 일보직전에서 그것도 세 번이나 물을 먹었다면, 그를 가로막은 장본인인 이회창 총재에 대해 얼마나 큰 승부욕이 꿈틀거렸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대통령이 세 차례나 러브콜을 보낸 배경에는 심 전 대표를 충청권의 차기 대권 주자 내지는 충청 표를 끌어 모으는 소지역 맹주라는 다목적 카드로 활용할 셈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남과 수도권에 일정한 근거를 두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던 ‘충청’을 확실히 잡는다면 정권 재창출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충청권의 확실한 차기 주자로서 ‘포스트 김종필’로 대변되는 심 전 대표는 적격의 인물이다(반면 비 충청권 인사인 이회창 총재(황해도 서흥 출생)와 측근들이 현재의 자유선진당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충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보기에 심 전 대표는 ‘현찰’이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어음’이다. 심 전 대표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계보를 잇는 충청권의 확실한 맹주다. 지난해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의 선전에도 일조해 표를 끌어 모은 정치인이다. 하지만 정 전 총장의 경우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신인이다. 그런 점에서 정 전 총장은 코스닥에 상장된 로또와 같은 것이지만 심 전 대표의 경우 향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확실하게 표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카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대통령은 심 전 대표에게 대권 주자 미션을 준 게 아니라 충청권의 맹주 정도로서만 인정해주려고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심 전 대표가 향후 한나라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이 심 전 대표를 끌어안아 정진석 의원, 이완구 충남지사 등과 함께 이회창 총재 깨기에 적극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심 전 대표가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자유선진당 의원 4~5명을 규합, ‘꼬마 정당’을 창당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충청 지역 일각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충청권 분열에 대한 책임을 지는 동시에 진정으로 심 전 대표의 복당을 원한다면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라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