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돈독한 사이였는데…연맹 말 아껴 궁금증 증폭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력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여자 쇼트트랙 심석희가 담당 코치로부터 손찌검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진=갤럭시아SM
선수촌에서 14년 사제관계의 불화가 터져 나온 것은 지난 16일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3개의 메달(금1·은1·동1)을 따내 한국 여자 쇼트트랙 간판 선수로 꼽힌 심석희(한국체대·21)가 이날 진천 선수촌을 이탈했다. 훈련 도중 휴식 시간에 대표팀 코치에게 손찌검을 당했다는 이유였다.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선수촌을 방문해 쇼트트랙 대표팀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심석희와 문제의 코치가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문제가 배경에 있었다.
심석희는 이틀 만인 18일 선수촌에 복귀했다. 중요한 대회를 코앞에 두고 이틀이나 훈련에 참석하지 않은 셈이 된다. 더욱이 심석희는 여자 대표팀 주장 자리에 올라 그 책임이 막중하다. 주장이 흔들린 팀 안팎에서 불거져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올림픽을 앞두고 페이스가 잘 올라오지 않으면서 담당 코치와 마찰을 빚어왔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 가운데 급기야 손찌검이 이어지면서 자존심이 크게 상한 심석희가 선수촌 이탈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
심석희가 돌아오는 데까지 이틀이 걸린 이유는 병원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입원이나 큰 치료를 요하는 부상이 아니었기에 현재는 정상적으로 복귀해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사건의 중심에 선 여자 대표팀 코치 조재범(38)은 현재 무기한 직무정지가 내려진 상태다. 조 코치의 빈자리는 박세우 경기이사가 합류해 훈련을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이 대중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조 코치와 심석희가 14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사제관계로 돈독한 모습을 보여줘 왔기 때문. 특히 심석희는 조 코치의 첫 제자이며, 조 코치가 직접 발굴해 세계무대 위까지 올렸다는 인연이 있다. 그런 그들이 폭행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름을 올린 만큼 올림픽을 앞두고 안팎으로 뒤숭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 코치와 심석희의 인연은 2004년 강릉 빙상장에서 시작됐다. 먼저 스케이트를 시작했던 다섯 살 위의 친오빠를 따라 빙상장에 들른 심석희를 눈여겨 본 조 코치가 스케이트를 권유했다. 이후 경포초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스케이트의 길을 다졌다.
5학년 무렵 더 넓은 무대로 나가기 위해 서울행을 감행한 그의 곁에 조 코치도 동행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심석희는 “코치님은 제가 나약해지면 강하게 만들어 주시고, 힘들어 하면 에너지가 돼 주신 분이다. 제가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하는 것도 모두 코치님 덕분”이라며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조 코치는 2014년 소치올림픽에 선임됐던 대표팀 코치가 이전 소속팀에서의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교체되면서 해당 장비 담당 코치의 자리에 선임됐다. 심석희는 “이전에도 장비나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조 코치를 찾아가 상담을 받아왔다”라며 그의 합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바 있다. 소치올림픽 공식 프로필에서도 심석희는 조 코치에 대해 “스케이팅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꼽았다.
조 코치 역시 제자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해 왔다. 그는 심석희에 대해 체력 조건이나 지구력보다 강한 정신력을 강점으로 주목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심석희는) 꾀나 요령을 절대 피우지 않고 주어진 훈련량을 100% 이상 해내는 끈기와 멘탈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심석희가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주장을 맡기 시작한 뒤부터 사제 간 갈등이 불거져 나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2016년 대표팀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한 포석으로 심석희를 주장으로 내세웠다. 2014 소치올림픽 때만 하더라도 주장을 별도로 두지 않았으나 팀의 단결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선임했다는 것.
심석희는 대표팀 가운데 김아랑(23)에 이어 두 번째 연장자다. 올림픽 경험자인 맏언니와 함께 주장으로서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인생의 반절 이상을 선수로 살았다고는 해도 아직 어린 선수다 보니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라며 “정확한 사태의 전모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이전 체육계의 오랜 적폐였던 폭행과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큰 경기를 앞두고 선수와 코치 간 불화설이 도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고 귀띔했다.
빙상연맹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연맹 관계자는 “아직까지 상세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현재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 중”이라며 “이후 이사회를 개최해 정확한 조치를 취하겠다. 선수가 평창올림픽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한편 심석희의 소속사인 갤럭시아SM은 19일 공식 입장을 내고 대한빙상경기연맹 측에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이어 심석희의 현 상태에 대해서도 “현재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만큼 선수의 안정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며 “심석희 선수는 올림픽을 위해 훈련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본인의 의지로 훈련장에 복귀한 상태”라고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