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친구 앞에서 ‘바바리맨’ 된 ‘레인맨’
포문을 연 사람은 또 한 명의 전설적 배우인 메릴 스트립이었다. 그들은 1979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공연해 호프먼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스트립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었다. 스트립의 폭로는 충격적이었다. 첫 만남에서 호프먼은 갑자기 스트립의 상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만졌다는 것이다. 이후 호프먼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일단락되었지만, 사실 ‘졸업’을 찍을 때도 스크린 테스트를 하며 상대역인 캐서린 로스의 엉덩이를 만졌던 호프먼은 일종의 상습범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남성우월주의자이며 모든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서슴없이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냥 유쾌한 플레이보이의 치기 어린 행동 정도로 합리화되곤 했다. 하지만 스트립의 폭로와 함께 그의 범죄 행각은 속속 드러났다.
두 번째 폭로자는 웬디 리스. 1991년 발표한 첫 희곡에 관심을 보인 건, 호프먼이 이끄는 영화사 펀치 프로덕션이었다. 희곡을 영화화하자는 제안에 스무 살 신인 작가는 크게 고무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미팅 때 호프먼은 “40대 이상의 중년 남자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웬디 리스는 당황해 쓴 웃음을 지었다. 이때 호프먼은 그녀를 안으려는 듯 팔을 벌리고서 “이제부터 완전히 새로운 육체적 관계를 알게 될 것”이라며 근처 호텔로 가자고 했다. 리스는 거절했고, 물론 그녀의 희곡이 영화화되는 일은 없었다. 이때 호프먼의 나이는 53세. 리스의 아버지뻘이었다.
세 번째 고발자인 애너 그레이엄 헌터의 사례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 헌터는 ‘세일즈맨의 죽음’(1985) 현장에서 제작 보조 인턴을 했다. 호프먼이 주연을 맡았던 아서 힐러 원작의 브로드웨이 연극을 영상으로 옮긴 TV 영화로, 헌터는 인턴 첫날 호프먼에게 발 마사지를 요구 받았고, 다음 날 호프먼은 그녀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이런 일은 계속 이어졌고, 17세 소녀는 그럴 때마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렸다.
네 번째 고발자인 캐스린 로제터는 ‘세일즈맨의 죽음’ 연극과 영화 모두 호프먼과 공연했던 배우였다. 1983년에 겨우 한 작품을 마친 신인 배우였던 로제터는 운명을 걸고 ‘세일즈맨의 죽음’ 오디션에 응시했다. 이때 호프먼은 그녀를 강력 추천했고, 식사 초대를 하기도 했다. 리허설 기간부터 조짐은 안 좋았다.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던 중 호프먼은 숙소인 호텔 방에 중요한 물건을 놓고 왔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더니 셔츠를 벗은 후 침대에 엎드려 마사지를 해달라고 했다. 연극 무대 뒤에선 끔찍한 일이 있었다. 로제터는 캐릭터 때문에 슬립에 가터벨트 차림으로 무대 뒤에서 대기해야 했는데, 이때 호프먼은 슬그머니 다가가 그녀의 허벅지 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공연이 거듭될수록 성 폭력의 강도는 점점 높아졌다.
여섯 번째 고발자 멜리사 케스터는 ‘사막 탈출’(1987)의 오디오 녹음실에서 호프먼을 만났다. 당시 남자친구가 스태프여서 놀러갔던 것. 당시 작가 지망생이었던 케스터는 호프먼과 자연스레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고, 호프먼은 아이템이 마음에 든다며 케스터에게 연락처를 요구했다. 사건은 세 번째 방문 때 일어났다. 녹음이 잘 안 풀린다며, 호프먼은 케스터에게 녹음실로 들어오라고 했던 것. 밖에선 잘 안 보이는 구조였는데, 이곳에서 호프먼은 케스터의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일곱 번째 고발자도 역시 ‘사막 탈출’ 현장에서 당했다. 22세의 엑스트라였던 그녀에게 다가간 호프먼은 식사나 같이하자고 했고, 촬영 마지막 날 부르기도 했다. 쫑파티가 끝나고 새벽 1시쯤 되었을 때,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차에 태운 호프먼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그녀의 스커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으며, 그런 행동을 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빙긋이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자 호프먼은 ‘세일즈맨의 죽음’ 현장의 인턴이었던 애너 그레이엄 헌터에게만 “유감이다” 정도의 미약한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다른 모든 상황에 대해선 부인했고, 체비 체이스나 리암 니슨 같은 배우는 “그를 이해해야 한다”는 식으로 실드를 치는 상황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