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한 홍보 없이 입소문으로만 전국구 개척
[대구=일요신문] 남경원 기자 = ‘살롱 드 꼬레(salon de coree)’란 18세기 프랑스를 향유한 살롱 문화이다. 귀족과 서민간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신분제가 존재했던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토론 방식이었다. 덕분에 누구나 자유롭게 정해진 주제 없이 대화를 통해 생각을 공유했다고 한다. 이같은 토론문화가 현대에 들어 또다른 방식으로 구체화됐다. ‘일요신문i’가 ‘살롱드꼬레’ 대표 안치형 씨(37)를 만나봤다.
“‘살롱 드 꼬레’란 표현이 낯설다면 ‘생각모임’이라고 하면 됩니다. 내 생각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싶은 사람 또는 나를 찾고 싶은 사람, 건전하고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소개하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안치형 씨가 운영하는 ‘살롱드꼬레’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가벼운 철학적 주제를 나누는 ‘생각모임’ ▲살롱드꼬레에서 선정한 도서 100권으로 하는 ‘문학산책’ ▲두 발로 세상을 겪으며 이상과 현실 간의 균형 잡힌 시야를 갖는 ‘생각여행’이다. 종류는 나눴지만 주입된 생각에서 벗어나 독립적 사고를 하기 위한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살롱드꼬레는 대구를 비롯해 서울, 부산 등에서 매달 1회씩 열린다. 다른 지역에도 신청자가 늘고 있는데 최소 10명 이상이 모이면 모임을 연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첫 모임을 개시한 후 현재 전국 총 11곳에서 105명의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특별한 홍보수단은 없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만 모집을 한다. 한마디로 입소문으로만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생각을 나누면 시선이 높아지고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타인과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되죠. 그렇게 타인과 내 생각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다듬어 간다는 게 이 모임의 장점입니다.”
‘살롱드꼬레’는 SNS으로만 모집하는 제한된 방식을 고수하지만, 수개월 만에 전국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임에 몰렸다.
“사실 기업 CEO 등 전문직 종사자분들은 매우 명확한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어 예의상 경청해도 ‘내가 옳고 당신 생각은 틀릴 수 있다’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 생각이 유연해지고 다시 다듬어지게 되죠.”
이러한 모임의 특성 덕분에 안 대표는 모 대기업 회장부터 아기를 키우는 주부까지 전국적인 인맥을 자랑한다. 안 대표는 이렇게 규모가 커질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국내 모 대기업 기획팀부터 외국계 기업까지 다양한 일들을 해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배우고 싶었어요. 회사일 그만두고는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옷 떼어와서 쇼핑몰도 해봤고요. 운이 좋은 건지 일이 커지고 수출계약까지 진행됐지만 ‘이것을 더 하면 다른 일을 못 하게 될 거 같다. 이것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고민해서 그만뒀습니다.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었거든요.”
각자마다 자신의 자리가 있고 그 자리마다 시선이 달라진다. 안 대표는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모으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고 이것을 공유하고 싶어 살롱드꼬레를 만들었다고 한다.
“목표를 정하면 거기에 얽매일까 봐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목표를 말하라면 하루 평균 성인남녀 독서시간이 6분이라고 하던데 그것을 조금이라도 늘리면 좋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살롱드꼬레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거대한 세상 속에 잃어버린 진정한 자신을 찾는 모임이기도 하다. 자격증을 따는 학원처럼 손에 쥘 수 있는 명확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본질을 발견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있다.
지난달 12일 대구에서 열린 첫 모임에 참석한 살롱드꼬레 사람들.
“아이를 키우는 주부님이 모임에 참석한 후 정작 본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방황했던 자신을 이제야 발견했다고 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건전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는 의견도 많았고요. 그럴 때는 운영진으로서 참 뿌듯합니다.”
스티븐 잡스가 창고에서 시작됐듯 살롱드꼬레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해외의 유명한 기업들이 잘하는 것은 ‘표준’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선도한다는 겁니다. 절대로 카피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바로 ‘나 자신’이듯 살롱드꼬레의 이러한 콘텐츠가 또 다른 표준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정답은 없다.’ 안 대표가 항상 모임마다 칠판에 휘갈기는 문구이다. 안 대표는 “실현 가능한 꿈이 아닌 실현 불가능한 꿈을 꾸세요. 꿈의 기준이나 방향을 외부에서 찾지 마시고 내 안에서 찾으세요. 만약 꿈이 이뤄지면 나다움이 온전히 발현된 것이니 좋고, 미완으로 남더라도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나의 모습이 완성되고 있었으니 또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다수 훌륭하다는 인물들도 사실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들을 꿈꾸며 자아실현을 했다. 이왕이면 높고 커다란 불가능한 꿈을 꿔보는 건 어떨까? ‘살롱드꼬레’처럼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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