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손’마저 떠나고...
▲ 손학규 전 대표의 불출마 선언으로 민주당의 재보선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송영길 최고, 정세균 대표, 이강래 원내대표(왼쪽부터).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민주당은 MB(이명박 대통령)발 ‘친서민·중도실용’ 바람이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정국’을 잠재우자 정국주도권 탈환을 위한 반전카드로 재보선을 택했다. 그러나 재보선의 간판 주자로 내세우려던 손학규 전 대표가 당 지도부의 삼고초려에도 지난 20일 ‘불출마 의사’를 밝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경기 수원 장안, 안산 상록을, 경남 양산, 강원 강릉 등 4곳에서 치러지는 이번 재보선은 그 결과에 따라 당장 정국주도권의 향배는 물론, 내년 지방선거 승기 선점을 좌우할 분수령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필승 카드’로 여겼던 손 전 대표의 출마가 무산되면서 민주당은 재보선 출정을 하자마자 암초와 마주친 형국이 됐다. 특히 ‘정세균 리더십’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칫 재보선 패배는 지도부 퇴진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MB정권 심판론’으로 재보선 전선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수도권 승리를 안겨줬던 묘책이다. 정 대표는 지난 1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우리는 이번 재보선이 지난 1년 반 동안 이명박 정권의 잦은 실정에 대한 심판의 장이 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이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정치보복에 대한 심판의 장도 돼야 한다”며 ‘서거정국’ 이후 처음 치러지는 재보선임을 강조했다.
특히 구체적 전술 방향과 관련, ‘야권연대를 통한 해법’을 제시했다. 정 대표는 “정권 심판을 위해선 민주개혁 진영의 연대와 선거 공조가 절대 필요하다. 민주개혁 진영의 제정당과 시민사회가 선거 공조와 연대를 함께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는 경기도 교육감 선거와 지난 4월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당시 김상곤 후보와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는 각각 사실상 ‘야권 단일후보’로 출전, 악조건 속에서도 한나라당 세를 물리치는 기염을 토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재보선은 야당에게 유리하다”며 “민주주의·민생·남북관계 등 ‘3대 위기’에 대한 호소를 통해 정면 돌파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10월 재보선은 달리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작금은 정권심판론이 제대로 먹힐 수 있는 정치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 때문이다. 대통령 인기가 치솟는 상황에서 정권 실정을 심판하겠다는 호소가 먹히겠느냐는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를 맴돌던 4월 재보선과 다른 이유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지난 12∼13일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53.8%를 기록했다. 정권 출범 초기 수준이다.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컨설팅본부장은 “이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넘는 상황에서 ‘심판론’ ‘중간평가’ 같은 정치 구호가 먹힐지 의문”이라며 “민주당이 효과적인 전선을 구축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인물 대결’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애초 당 내부에서 손학규 전 대표(수원 장안)와 김근태 전 의원(안산 상록을)의 ‘동반차출론’이 튀어나왔던 결정적 배경이다. 실제 정 대표는 연일 두 사람을 향해 러브콜을 날렸고, 특히 손 전 대표에 대해선 노골적으로 ‘구애’를 했다. 지난 16일에는 당 지도부가 재선거 지역인 수원으로 몰려가 최고위원회의를 여는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이 자리에서 정 대표는 “손 전 대표가 출마를 고사하고 있지만 결국 당이 필요하다면 당명에 따라야 할 것”이라며 ‘엄포’까지 놨다. 하지만 손 전 대표의 프러포즈 거절로 정 대표의 삼고초려는 결국 허사가 되고 말았다.
정치컨설팅사인 포스커뮤니케이션 이경헌 대표는 “민주당이 손 전 대표 출마를 압박한 것은 심판론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라며 “그의 불출마로 김 전 의원의 거취까지 불투명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초 민주당은 ‘손·김 카드’를 통한 ‘수도권 쌍끌이’ 공천으로 4곳 중 수도권 2곳은 차지하겠다는 복안이었다. 강릉은 마땅한 후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고, 양산은 ‘친노 후보’인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을 전략 공천했지만 ‘전황’은 아직 열세다.
사실 ‘수도권 승리’는 정 대표 체제의 공고화와 직결된다. 정 대표가 손·김 두 거물의 정치적 재기가 몰고올 당내 역학구도 변화를 감수하면서까지 베팅했던 이유다. 한 핵심당직자는 “지난 4월 재보선에서도 인천 부평을과 경기 시흥시장 선거 승리로 정 대표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며 “만약 이번에 패하면, 비주류 측의 조기전당대회 요구는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록 손학규 카드가 무산되긴 했지만 정 대표를 위한 최선의 시나리오는 수도권과 양산을 싹쓸이하는 ‘3승’인 경우다. 정 대표는 양산의 경우 특히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이들 3인은 정 대표에게 직접 송 전 비서관의 전략공천을 요청한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양산에 상주하며 선거전을 지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아직 ‘노무현 향수’가 남아 있는 양산에서 ‘이명박 VS 노무현’ 대결구도가 형성되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게 당 전략통의 판단이다.
민주당 경남도당의 관계자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양수 전 의원이 탄탄한 지역조직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나라당 박희태 후보와의 3자 대결구도가 의외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두 곳 중 한 곳만 챙기게 되는 ‘1승 3패’의 경우 상황이 제일 복잡하다. 주류는 ‘나름의 승리’를, 비주류는 ‘사실상 패배’를 주장할 공산이 크다. 어떤 경우든 정 대표는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될 수밖에 없다.
당 일각에선 인물론을 뛰어넘는 카드가 나와야 낙승을 점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이 재보선 막판에 ‘중도실용·친서민’ 행보의 ‘결정판’을 들고 나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재선의원은 “여권이 정운찬 총리 후보자 인준 뒤 그를 통해 용산참사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이란 관측이 돌고 있다”며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희 KSOI 컨설팅본부장은 “결국 민주당의 ‘진정한 변화’가 관건”이라며 “민주당은 유권자들에게 자신들이 한나라당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