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환자 인공호흡기 떼냈다’ 거짓자백…12년 옥살이 후 재심 청구…“나는 살인하지 않았다”
마이니치 방송 ‘나는 하지 않았다’에 출연한 니시야마.
“심문하던 형사를 좋아했다. 그의 마음에 들고자 한 거짓말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나는 살인하지 않았다.”
12년의 형기를 마치고, 2017년 8월 출소한 전직 간호조무사 니시야마 미카(38)는 무죄를 호소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그리고 오사카 고등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법원의 판결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엄격한 심리를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니시야마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0대를 형무소에서 보낸 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체포·구속 때부터 따지면 무려 13년 가까이 자유를 빼앗긴 셈이다.
사건은 2003년 5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가현의 고토기념병원에 입원했던 의식불명의 남성 환자(당시 72세)가 새벽에 심폐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은 “의료진이 인공호흡기가 빠진 걸 눈치 채지 못해 질식사한 것”으로 보고, 과실치사 사건으로서 수사를 시작했다. 다만 인공호흡기의 호스가 빠지면 자동 알람이 울리는데, 이상하게도 알람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간호조무사였던 니시야마가 “알람이 울렸다”며 진술을 바꿨다. 그리고 사건 발생 후 1년 이상이 경과한 2004년 7월, 이번에는 니시야마가 “병원 대우에 불만을 품고 인공호흡기 호스를 빼 환자를 살해했다”고 자백하기에 이른다. 당시 니시야마가 취조실에서 자백한 상대는 시가현경찰본부에서 파견된 젊은 남자 형사 A였다.
이와 관련, 최근 일본 매체 ‘주간여성 프라임’은 ‘형사를 사랑해 살인범이 된 여자’라는 제목으로 니시야마와의 단독 인터뷰를 공개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니시야마가 이때 자백한 이유는 취조관이었던 형사에게 호의를 가져서였다”고 한다. 형사 A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동조해주는 등 자상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 니시야마는 “그런 A 씨 마음에 들고 싶어서 거짓 자백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설마 그것 때문에?’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니시야마가 복역 중에 받은 진단을 살펴보면, 가벼운 발달장애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그녀의 자백이 발달장애의 영향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조 과정에서 형사 A는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다가도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다. 가령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던 것은 알람소리. 만일 누군가 인공호흡기를 강제로 제거했다면 알람이 울리는 시스템이었다. 형사 A가 니시야마에게 다가와 “알람소리를 들었냐”고 물었다. “듣지 못했다”고 답하자 A는 “그럴 리 없다. 거짓말하지 마라”며 책상을 발로 찼다. 니시야마는 “밀실이라 무서웠다. 하지만 내가 ‘알람소리가 울렸다’고 인정하자 A는 한없이 다정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니시야마는 “간혹 나는 정서가 불안정해질 때가 있다. 닦달하거나 몰아붙이면 패닉에 빠져 자포자기 심정이 된다. 취조로 인해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가끔씩 상냥한 미소를 보이는 형사 A에게 매료되어 갔다”고 덧붙였다. 당시 형사 A는 ‘살인죄라도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해줬다고 한다.
목격자는 없고, 증거는 자백뿐이었다. 뒤늦게 니시야마는 ‘잘못됐다’는 걸 깨달아 재판에서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오쓰 지방법원은 징역 12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옥중에서도 누명을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만기 출소 후 2번째 재심 청구 끝에, 드디어 오사카 고등법원은 “경찰이 유도심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재심을 인정했다. 또한 환자의 사인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발견됐다. 니시야마 측 변호단은 “식물인간 상태였던 환자의 칼륨 수치가 상당히 낮았다. 범죄행위가 아니라 자연사, 치사성 부정맥으로 병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도 겐이치 주임변호사는 “부자연스러운 진술 변화로 봤을 때 경찰이 결론부터 내려놓고 수사방향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도, 사고도 아니다. 없던 범죄를 경찰과 검찰이 만든 것”이라고 단언했다.
‘주간여성 프라임’은 이번 사건의 또 다른 배경으로 “숨진 환자의 심폐정지를 최초 발견한 간호사 B”의 존재를 들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B는 숨진 환자의 가래제거 흡인처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가래가 막혀 숨진 것으로 착각한 B가 근무태만 징계를 두려워한 나머지 ‘인공호흡기가 빠져 있었다’고 증언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는 의혹이다.
한편, 또 다른 매체는 “14년 전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니시야마와 형사 A의 이별이 마치 연애 드라마 같았다”고 전했다. 기소되기 이틀 전, 니시야마는 A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이제 당신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쓸쓸하다”고 흐느꼈다. 그리고 “떠나고 싶지 않아. 계속 함께 있고 싶다”며 A를 껴안기도 했다. 니시야마는 “A 씨는 거부하지 않았다. ‘힘내’라고 토닥여줬다”고 덧붙였다. 매체가 “형사 A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니시야마의 아버지는 “딸이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진짜 친구가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돈을 주고 친구를 만들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초 경찰이 ‘변호사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국선을 추천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딸이 너무나도 잔혹한 일을 겪었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논란의 형사 A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일본 주간지 ‘주간신조’에 따르면, “A는 2005년 혐의자에게 폭행을 가해 ‘특별 공무원 폭행 능학죄’로 불구속 입건된 적이 있다”고 한다. 더욱이 무고한 사람을 오인 체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이 건은 불기소로 끝났기 때문에 현재 A는 시가현경찰본부 경부로 승진한 상태다.
20~30대 대부분을 ‘재소자’로서 보낸 니시야마는 향후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유의 몸이 된 것이 기쁘지만, 아직 누명이 풀리지 않았다. 변호사와 함께 꼭 무죄를 증명하고 싶다.” 니시야마의 바람대로 법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하지만 오사카 고등검찰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아 대법원에 항고할 방침이다. 그녀의 법정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