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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여름. 차가운 물에 발 담그고, 시린 냉면 국물을 들이켜 애써 체온을 내려도 그때뿐. 뭔가 ‘확실한 묘수’를 찾는다면 번지점프의 체험이야말로 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릴 확실한 처방전이다. 그때뿐 아니다. 그 기억을 반추하는 것만으로도 또다시 오싹 소름이 돋는 유효기간이 제법 오랜 서늘함이다.
뛰어보자. “셋 둘 하나! 번지∼.”
공포와 스릴, 그리고 쾌감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X-스포츠의 꽃’ 번지점프를 위해 강원도 철원 태봉대교 번지점프장으로 달려갔다. 태봉대교 번지점프장은 인공 타워나 크레인이 아니라 실제 한탄강을 가로지른 다리 위에 점프대가 설치된 것으로 유명하다. 철원군 동송읍과 갈말읍을 잇는 아치형 다리 위에 설치된 점프대는 그 높이만도 52m에 달한다. 이 점프대에서 ‘한국의 그랜드캐넌’이라 불리는 한탄강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은 마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주인공들이 뉴질랜드 카와라우 다리 위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한다.
번지점프는 서약서에 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서약서는 ‘장비나 시설 결함 외 일체의 안전사고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내용. 병원에서 대수술을 앞둔 환자 가족들이 서명하는 것과 같은 서약서.
비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 3층 접수대에서 서명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공포감이 밀려온다. 몸에서는 가느다란 떨림이 시작되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어서 장비 착용. 번지코드를 등허리에 연결하는 바디점프냐, 발목에 연결하는 앵클점프냐 선택의 순간, 주저 없이 후자를 골랐다. 앞서 번지점프에 단체로 도전한 어느 대학생 하나가 다이빙 선수처럼 멋지게 해낸 앵클점프에 이미 매료된 때문이다.
발목과 허리에 안전장비를 단단히 착용하고 나자 교관의 교육이 시작된다.
“절대 아래를 보지 마세요. 전방 15도를 주시한 다음 양팔을 벌리고….”
이어지는 몸무게 측정. 도전자의 몸무게에 따라 생명줄인 번지코드의 종류가 결정된다. 모든 게 끝나자 마침내 번지코드가 발목 장비에 연결된다. 순간 다리 힘이 빠지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점프대에 서니 더욱 아찔하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11m라는 말은 도무지 맞지 않다. 번지점프대에서 힐끗 아래를 쳐다보니 뭉크의 그림 ‘절규’ 속 남자처럼 몸이 먼저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미 공포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전방주시!” 교관이 큰 소리로 각성시킨다. 심호흡을 하고 앞을 바라보지만 시야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고, ‘뛸까, 포기할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뛰자니 두렵고, 그만두자니 자존심 문제다. 그야말로 백척간두요 진퇴양난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마음의 준비도 아직 안 끝났는데, 교관은 벌써 카운트다운이다. “다섯 넷…” 그 짧은 순간에도 물러설까 말까 갈등이 밀려온다. 한번 미루면 다음에는 더 힘들어질 것 같다. 그래. 내친 걸음이다.
“셋, 둘, 하나 번지!”
자유낙하를 시작한 몸에 가속이 붙으면서 무서운 속도로 강물을 향해 돌진하는데, 숨이 턱 막힌다. 추락이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공포는 극에 달했다. ‘첨벙’ 머리가 반쯤 강물에 빠지고 나서야 번지코드가 발목을 잡아당긴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릴 틈도 없이 이번에는 몸이 돌고래처럼 공중으로 솟구친다. 그러기를 4∼5차례쯤 반복했을까. 서서히 마음이 안정됨과 동시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공포에 맞서 싸우고 이를 극복해 냈을 때 인간은 가장 극적으로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두려움을 버리고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보자. 더위는 어느새 사라지고 단조로운 당신의 일상에도 커다란 활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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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주요 번지점프장
▲내린천 래프팅랜드(www.raftingland.com) 033-462-4629 ▲청평 리버랜드(www.myriverland.com) 031-585-5526 ▲청풍랜드(www.bigbungee.com) 043-643-4151 ▲포항 비학산(www. 61m.co.kr) 054-262-6778 ▲분당 율동공원 031-704-6266 ▲제주월드21 064-753-3010
번지점프 유래
번지점프는 남태평양 팬타코스트섬 원주민들이 성인식의 통과의례로 치르던 의식에서 시작됐다. 나무줄기를 발목에 묶고 30m 정도의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원주민 의식을 모델로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번지점프 스포츠가 창안됐다.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이후. ‘AJ 해킷 번지팀’이 뉴질랜드 퀸스타운의 카와라우 다리에 세계 최초의 번지점프장을 열었고, 이후 미국과 호주로 널리 퍼졌다.
번지점프 안전장치
▼번지코드(bungy cord): 번지점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안전장비로 천연 생고무 재질의 탄력 있는 줄이다. 몸무게 25kg부터 140kg인 사람까지 사용 가능하며 몸무게에 따라 사용하는 줄의 두께가 다르다.
▼하네스(harness): 점프할 때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안전장비로 상체하네스와 하체하네스, 발목하네스가 있다. 바디점프인 경우는 상체하네스와 하체하네스를 착용하고, 앵클점프는 발목하네스와 하체하네스를 착용한다.
▼안전 튜브(safety tube): 번지점프를 한 사람이 튀어 오르거나 내릴 때 발이나 손목 등에 번지코드가 꼬여 감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장비. 반동이 상하로 좀 더 일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