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꼬리표 떼고 “진짜 나를 보여줄게”
선미와 수지가 솔로가수로 성공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 솔로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아이유와 더불어 이제는 ‘3색 구도’가 갖춰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더해 일본에서 케이팝 열풍을 만든 1세대 스타 보아도 최근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대결에 합류했다. 그룹 씨스타의 멤버인 효린 역시 솔로 활동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여풍당당’으로 불러야 할 만큼 다양하다.
한편으로 이들 솔로 가수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걸그룹의 활동이 주춤한 가운데 나오는 성과로도 볼 수 있다. 막강 걸그룹으로 꼽혀온 소녀시대와 씨스타 등이 해체와 활동 공백을 겪는 과정에서 홀로서기에 나선 멤버들이 늘어난 영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미가 출연한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송 화면 캡처.
# 선미와 수지…걸그룹 해체 뒤 솔로 ‘성공’
지난해 가요계는 방탄소년단과 워너원이 만든 신드롬이 거셌다. 특히 방탄소년단은 국내를 넘어 해외 무대에서까지 성과를 냈고 미국 빌보드뮤직어워드 수상, 아메리칸뮤직어워드 참여로 케이팝 스타의 저력도 과시했다. 이들이 발휘하는 막강한 파워로 인해 남성 아이돌 그룹은 ‘황금기’를 맞았다. 물론 그 분위기가 여전하지만 새해 들어 눈에 띄는 활동을 보이는 주역은 남성 아이돌이 아닌 여성 솔로다.
솔로 ‘투톱’은 선미와 수지다. 걸그룹 활동으로 쌓은 경험, 오랜 기간 연습으로 닦은 탁월한 실력, 돋보이는 외모와 인지도가 고스란히 이들의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미는 지난해 내놓은 노래 ‘가시나’에 이어 1월 공개한 신곡 ‘주인공’으로 또 한 번 온라인 음원차트를 석권했다. 더욱이 ‘가시나’가 음원차트 장기 집권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신곡마저 성과를 낸 덕분에 여성 솔로로서의 저력을 키워갔다.
수지도 마찬가지다. 1월 발표한 미니앨범 ‘페이시스 오브 러브’의 타이틀곡 ‘홀리데이’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를 통해 온라인 음원차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사실 음악성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오히려 연기자로 활발히 활동한 탓에 이젠 가수의 이미지가 잊히기도 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가수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려는 듯 음악적인 욕심을 아낌없이 보였다. 결과 역시 만족스럽다.
선미와 수지는 모두 걸그룹 출신이다. 중학생 때인 2007년 원더걸스로 데뷔한 선미는 경력만 따지면 10년차를 넘긴 베테랑. 수지 역시 2010년 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했다. 오랜 연습생 시기를 거쳐 걸그룹 멤버로 활동한 이들은 국내를 넘어 일본과 중국, 미국으로도 그 무대를 넓힌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아이돌 시장은 가요계에서도 변화와 부침이 잦은 곳. 각기 그룹 탈퇴와 해체 등 상황에 놓이면서 솔로 가수로 발 빠르게 나서 자신의 위치를 확장했다.
물론 그룹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홀로 나서는 일은 더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수지는 솔로 활동에 나서면서 “미쓰에이가 해체된 후 홀로 서야 한다는 생각에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룹 활동과 다른, 내 색깔이나 내 음악을 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조금 성장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그룹으로 활동할 땐 섹시한 콘셉트가 주된 이미지였지만 솔로 앨범을 통해서는 내가 다양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솔로 활동은 이들에게 곧 진짜 ‘나’를 보이는 기회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마음이 선미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원더걸스를 통해 정상의 인기를 누렸지만 솔로로 나서는 과정에 부담이 없던 건 아니다. 그런 선미는 지난해 데뷔 때부터 몸담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독립해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을 밟았다. 운이 좋게도 그는 소속사 이적 뒤 내놓은 첫 번째 노래 ‘가시나’의 성공 이후 두 번째 곡 ‘주인공’까지 인기를 얻으면서 솔로 가수로 확실한 위치를 다지게 됐다.
그렇다고 고민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선미는 “내 위치는 중요하다”며 “여성 솔로 가수들이 많이 있고 모두 스타일이나 추구하는 음악적인 성향이 다르다보니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는 일도 있지만 나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수지가 타이틀곡 ‘홀리데이’ 무대를 선보인 MBC ‘쇼! 음악중심’ 방송 화면 캡처.
# 걸그룹 활동 ‘유효기간’…음악 활동 이으려는 도전
그룹 씨스타의 효린도 이달 ‘싱글 3부작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지난해 그룹 해체 뒤 ‘브리지’라는 독립 회사를 설립하고 그동안 걸그룹을 통해 보이지 못한 다양한 음악을 아낌없이 내놓겠다는 각오다. 가창력으로 따지면 현재 가요계에서 첫 손에 꼽히는 보컬리스트로 통하는 만큼 솔로 활동을 통해 그 실력을 하나씩 꺼내 보인다는 계획이다.
여성 솔로가수가 늘고, 이들의 활약이 늘어난 데는 걸그룹이 가진 ‘경쟁력’과 ‘한계’가 동반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끊임없이 탄생하는 걸그룹은 그만큼 활동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여야 한다. 남성 아이돌그룹과 비교해 활동 지속 기간도 짧은 편에 속한다. 물론 소녀시대처럼 결성 10년을 넘긴 걸그룹도 있지만 이들도 지난해 멤버들이 각자 소속사를 이적하는 등 변화를 통해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에 접어들었다.
가요계 한 관계자는 “걸그룹으로 데뷔하고 활동 기간이 늘면 멤버들은 각자의 방향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연기자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지만 최근에는 음악적인 욕심을 갖고 역량을 보이려고 솔로로 나서는 멤버들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수지 역시 “연기자나 가수 한 쪽으로 쏠리기보다 두 가지 모두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이번 솔로 앨범에 담긴 7곡 가운데 4곡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촬영하는 열정도 보였다. 음악 욕심, 솔로 활동에 갖는 의지가 없다면 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롤모델’이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는 사실도 이들에게 도전할 용기를 준다. ‘한국의 마돈나’로 통하는 엄정화는 연기활동과 동시에 가수로도 꾸준히 역량을 내보이고 있다. 40대 후반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무대에서 과감한 퍼포먼스를 보이고 지난해 말에는 후배 선미와 연말 시상식에서 합동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이효리 역시 솔로 가수들이 닮고 싶어 하는 선배로 인정받는다. 그가 남편과 함께 출연하는 JTBC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이 지난 시즌1에서 아이유를 캐스팅할 수 있던 힘, 현재 방송 중인 시즌2에서 소녀시대의 멤버 윤아의 섭외에 성공한 배경은 ‘롤모델 이효리’가 있어 가능했다는 평가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gofl10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