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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진 불영계곡(위)과 봉화 다덕약수. | ||
이 코스에는 산과 계곡, 문화유적에서 온천 바다까지 풍성하게 포함돼 있다. 혹 맑은 날의 드라이브 여행을 위해 휴가를 아껴둔 사람이라면 중앙고속도로를 통해 시작할 수 있는 36번 국도에 도전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36번국도, 촘촘한 길 풍경
하늘은 벌써 가을처럼 높아졌다. 길을 나서면 시야를 가득 채우는 푸른 하늘과 하늘로 솟은 푸른 나무들이 지천이다. 그런 풍경을 등에 업고 좁고 긴 도로를 한가로이 달려보자. 창을 열면 향긋한 바람이 코 끝을 스친다. 밀리는 자동차에 떠밀리듯 달리지 않아도 좋은 이곳은 영주에서 울진으로 가는 36번 국도다.
영주에서 봉화로, 봉화에서 울진으로 가는 길은 경북 내륙의 오밀조밀한 속살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 경계는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서 마을로 넘어가는 꼬부랑 고갯길만이 “여기서부터 봉화라고 하자” 뭐 그렇게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풍경을 넘겨받는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를 허물며 달리는 길은 ‘자유로움’ 그 자체.
36번 국도의 북쪽으로는 어머니의 품처럼 풍요로운 소백산과 영험한 기운의 태백산이 버티고 있고 봉화 남쪽으로는 이름처럼 산뜻한 청량산이 푸른 얼굴을 내밀며 그 기상을 전한다. 낙동강의 원류도 길에 그 흔적을 남겨 놓았다.
길의 끝은 바다다. 동해의 서슬 퍼런 바다가 언제든 반길 태세다. 영주에서 제 아무리 서둘러도 울진 바다까지는 2~3시간. 속도계만 보고 달리면 모를까, 길 옆에 앉은 풍경까지 살피고 가려면 족히 하루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꼬부랑 고갯길을 넘어
달리는 길은 이내 꼬불하다. 이따금씩 현란한 동작으로 산을 넘고, 산은 또 유연하게 산허리와 계곡을 끼고 달린다. 봉화를 넘어서면서 길은 더욱 아찔해진다. 노루재, 회고재재, 곧은재, 꼬치비재 등 해발 500~600m 고지의 높은 재를 파도를 타듯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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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주 부석사.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아늑한 건축미로 유명하다(위). 울진 달우광업소 자수정 찾기 체험. 계곡을 따라 보석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 ||
바다를 만나기까지 길은 몇 번씩이나 여행자를 유혹한다. 영주 부석사의 곧은 길 앞에서 한 번, 봉화 닭실마을의 따뜻할 것만 같은 동구에서 한 번, 917번 소광리의 좁은 드라이브에서 마지막 한 번, 마음은 갈팡질팡한다. 너무 성급하게도, 너무 지체하지도 않게 시간과 일정을 잘 조절하며 달리는 지혜가 필요한 곳이 36번 국도다.
부석사에서 소수서원까지
36번 국도가 영주 일대를 지나갈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부석사’다. 누군가 ‘머무르고 싶은 절’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부석사는 사찰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5월의 사과꽃 향기, 가을의 노란 은행나무 길은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이나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부석의 아름다움만큼이나 감동적이다.
부석사는 먼저 소백산의 동쪽 끄트머리인 봉황산 자락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소백산을 굽이굽이 돌아 찾아간 부석(浮石)사, 그 명칭은 무량수전의 왼쪽 산기슭에 커다란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데서 비롯됐다. 신라 고승 의상을 사랑했던 선묘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창건설화로 전해진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빛내주는 것은 각각의 돌을 재단해 쌓은 것 같은 9개의 석축이다. 최초의 석축을 딛고 올라서면 부석사 특유의 가람배치가 드러나고 마지막 석축을 딛고 올라서는 안양루는 부석사에서 숨이 차오르는 마지막 관문이 다. 석축 위에 가뿐히 걸터앉은 안양루를 가리켜 옛시인은 ‘바람난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부석사에서는 불교문화를 알리기 위해 외국인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예불체험 신청을 받는다.
부석사에서 곧장 순흥면으로 10여 분을 달리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다. 서원 입구에는 초원계곡에서 발원한 죽계수가 흐르고 있으며 주변의 바위와 울창한 노송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내고 있다.
▲길라잡이: 36번 국도에서 부석면으로 가는 935번 지방도로 이용. 그밖에 풍기IC에서 931번 지방도로를 이용해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054-634-3310)을 거쳐 곧장 부석사로 가는 방법도 있다. ‘부석사, 소수서원’ 이정표만 따라가도 쉽게 찾는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영주간 하루 21회 운행. 영주터미널 631-5844 풍기터미널 636-2074.
부석사를 새벽이나 밤에 자유롭게 관람하고자 한다면 부석사 입구에 숙소를 정하자. 산채나물정식과 청국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몰려 있어 식사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부석사식당(633-3317), 종점식당(633-3606)
금계포란형 닭실마을
한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정자가 있었다는 경북의 오지마을 봉화. 문수산 화장산 감의산 왕두산 죽미산 횡악산 등 봉화를 지나가는 길에 만나는 수많은 산들의 이름조차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나리, 비나리 등 낙동강을 살포시 안고 달리는 봉화의 마을들은 이 땅에 남아 있는 마지막 청정지역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36번 국도로 봉화를 지날 때면, 양반마을로 알려진 유곡리 닭실마을에 들러보자. 안동 권씨 집성촌인 닭실마을은 한강 이남의 4대 길지(吉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마을은 풍수지리상으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곧 닭이 알을 품은 듯한 지세라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닭 모양의 입간판이 서 있다.
오늘날 닭실마을은 전통 유과로 유명한 곳이다. 전통유과는 마을 부녀회를 중심으로 권씨네 집안 부녀자들이 주문생산한다(054-673-9541.4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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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화 닭실마을 충재 권벌 선생의 종택(위)과 마을 특산물인 전통 유과를 만드는 모습. | ||
닭실마을에서 나와 ‘억지춘양’의 본고장 춘양으로 가도 좋고,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로 빠지는 것도 좋다. 낙동강 상류인 명호천은 맑은 물도 물이거니와 청량산에 이르기까지 강변 드라이브, 래프팅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길라잡이: 부석사에서 봉화군 물야면 방면 931, 915번 지방도로를 차례로 이용하면 다시 울진방면 36번 국도를 만날 수 있다. 36번 국도에 진입한 뒤 곧바로 유곡리 닭실 마을의 이정표가 보인다.
다덕약수탕 인근에는 산채정식을 비롯하여 버섯전골 등이 유명하다. 옥류관(054-672-6666). 해마다 9월이면 봉화에선 송이축제가 열린다. 봉화군 문화공보실(054-672-0228)
길 끝에서 열리는 바다
봉화가 오지의 살가운 풍경을 보여줬다면 울진은 경북 내륙의 험준한 산과 그 산 아래 숨어 있는 비경을 보여준다.
숨은 비경의 절정은 울진군 서면에서부터 불영계곡의 선유정부터 불영정까지의 15km 구간이다. 기암절벽은 제쳐두고서라도 절벽 아래 굽이치는 불영계곡 때문에 소름이 살짝 돋는다. 아름다운 길을 따라 달리고 싶은 욕구와 잠시 머물고 싶은 욕구가 심각히 갈등을 일으킨다. 절벽가에 세워진 선유정이나 불영정에 올라서서야 불영계곡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불영사에 가기 전, 비좁고 험한 917번 지방도로를 따라 잠시 소광리로 가보자.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간다’는 황장목이 길게 도열해 있는 울진소나무숲과 우리나라 최초의 자수정 광산인 달우광업소가 갈림길로 나뉜다. 달우광업소에서는 아이들과 계곡을 걸으며 자수정을 찾는 체험 코스가 인기다.
불영계곡의 시작 지점에 위치한 불영사는 신라 진덕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마음이 일지 않으면 찾아가기 힘든 사찰이다. 계곡을 끼고 도는 숲길을 약 20여 분 차곡차곡 걸어 들어가면 미소가 해맑은 비구니들이 싱그러운 인사를 보낸다. “좋은 날 되세요.”
불영사에는 아담한 연못이 하나 있다. 이 연못에 부처 모양의 바위 그림자가 비쳤다 해서 불영사(佛影寺)라 불렸고 그에 따라 계곡 이름도 불영계곡이 됐단다. 깊은 산 중 절집 치고는 그 품이 너무도 아늑해서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불영사에서 잠시 멈췄던 걸음은 다시 바다로 흘러가는 36번 국도를 달린다. 종착지는 동해바다. 불영계곡과 왕피천이 흘러 바다로 만나는 망양해수욕장이 쪽빛으로 반겨준다.
관동팔경 중의 하나인 망양정이 5분 거리에 있고 하늘빛을 닮은 바다가 마지막 여름을 즐기고 있다. 길이 끝나고 하늘과 바다가 열린 곳. 그곳의 바다는 말한다. “여름이 가도 바다는 남는다.”
▲길라잡이: 망양해수욕장-해안도로-성류굴-덕구온천. 문의 울진군청 문화관광과(054-785-6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