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려다 잘해버려”
당시 국회는 5공 청문회와 광주 청문회 두 개의 청문회가 중심이 되어 있었는데 변호사인 노 전 대통령은 5공 청문회 위원으로 배정됐다. 그런데 청문회가 열리기 2~3일 전 부산 연합철강 노동자들이 서울로 올라와 농성투쟁을 시작했다. 변호사 시절, 노동운동에 힘써왔던 노 전 대통령은 초창기 의정 활동 역시 노동현장의 민원을 해결하는 데 주력해왔던 터. 국회에서 문제가 잘 풀리지 않자 그는 자신도 농성장으로 가 농성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결국 이 때문에 5공 청문회는 안 나가는 것으로 내심 결정을 내렸다는 것.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그런데 비서들이 농성은 길게 가겠지만 청문회는 짧게 끝날 것이니 일단 청문회를 하고 가라고 하도 요청을 해서 결국 청문회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청문회를 너무 잘해버렸다. 청문회의 중심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후로도 계속 청문회를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처음 결심대로 청문회 대신 농성에 참여했더라면, 분노하며 명패를 집어던지는 ‘청문회 스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뻔했던 것.
청문회에서 명패를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서도 해석이 엇갈린다. 당시 대다수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던졌다고 묘사했다. 박철언 전 장관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한 바 있다. 박 전 장관은 “극도로 흥분한 민주당의 노무현 의원은 단상을 향해 명패를 집어던졌다. 일곱 차례의 정회를 거듭한 끝에 새해를 1분 남겨놓은 밤 11시 59분에 전 전 대통령은 남은 원고를 마저 읽고 백담사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상황에 대한 ‘오해’가 있다며 자신의 저서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소위 ‘명패투척사건’은 청문회에 나온 전두환 씨가 퇴장할 때 내가 명패를 집어던진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전두환 씨에게 명패를 던진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내동댕이를 친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전두환 씨에 대한 분노보다는 당시 내가 소속하고 있던 통일민주당의 지도부에 대해 화가 치밀어 내동댕이쳤던 것이다. …그 해 연말 4당 영수 회담에서 노태우-YS-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정호용 씨만 희생양으로 삼는 선에서 5공 특위와 광주 특위 건을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소장 의원들은 지도부의 그런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