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봄 때깔 제대로 들었고마
▲ 여자만 갯벌 | ||
한반도 어느 곳보다 봄소식이 먼저 날아든다는 남도의 끝 마을 전남 고흥. 이르게 움튼 봄을 찾아, 바다보다 푸른 초록의 들판과 햇살보다 반짝이는 은회색의 갯벌을 에두른 고흥 땅을 찾았다.
고흥은 동쪽으로 여자만과 순천만, 서쪽으로는 보성만과 득량만을 끼고 있는 고흥반도와 1백70개 올망졸망한 섬들로 구성된 한반도의 막내 땅이다.
물 찬 풍선의 목처럼 벌교로부터 길고 좁게 뻗어 내린 진입로 끝에 뭍의 끝자락인 고흥이 있고, 그 너머에 고흥의 맏섬 내나로도와 외나로도가 뭍을 향한 징검다리처럼 연결돼 있다. 90년대 중반, 연륙교가 놓이면서 뭍으로 편입된 나로도는 바다로 길을 낸 계단식 논밭이 독특한 풍경을 보여주는 곳. 땅과 이어진지 벌써 1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섬마을의 순박함이 그대로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센터가 들어서고 있는 외나로도 일대의 해안 풍광은 절경이다.
포인트1 ‘태백산백’ 소설 속 벌교를 찾아서
호남고속도로 주암IC에서 고흥으로 들어가는 길은 주암호와 벌교를 거친다.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 줄기를 막아 만든 주암호는 인근 순천 보성 화순 등 3개 시군 49개 수몰마을의 애환을 담고 있다. 호수를 오른편에 끼고 달리는 27번 국도는 청정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날 만큼 운치있다. 감상 포인트는 식당촌이 있는 신흥리 일대. 현재 물이 많이 빠져 있지만 주암호의 푸른 물과, 물에 드리운 산 그림자가 아름다운 곳이다.
여기서 10여 분을 달리면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다. 전라도에서도 가장 전라도답다고 할만큼 질박한 남도 사투리와 푸근한 인심이 남아있는 벌교는 일제 때 기차역이 생기면서 번성한 도시다.
가장 먼저 찾을 곳은 소설의 주무대인 소화다리.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 등 현대사의 비극을 진하게 거치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던 곳. 다리가 가로지른 벌교천을 따라 붉은 피가 강물처럼 흘렀으리라.
보성 버스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진 현부잣집도 소설의 무대다. 정하섭과 소화가 사랑을 키우던 곳으로 행랑채가 붙은 흙담장과 2층 누각형태의 소슬문을 남겨놓았다. 최근 보수돼 옛 대갓집의 풍모가 대단하다. 읍내 한가운데 있는 금융조합과 벌교 남초등학교 앞에 있는 남도여관도 소설처럼 생생하다. 소설 속 임만수와 토벌대가 머물던 남도여관은 지금은 상가로 변했지만 낡은 일본식 건물이 소설 속 시대나 별다를 바 없다.
벌교읍에서 순천으로 이어지는 경전선 철다리와 홍교 인근에 있는 김범우의 집도 색다른 풍광의 소설 속 무대다.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돌아와 벌교 제일의 주먹 땅벌과 결투를 벌이던 철다리는 하대치의 아버지 하판석 영감이 등이 휘도록 돌을 져 날랐다는 중도방죽과 함께 주변의 우거진 갈대밭 속에서 봄을 맞고 있다. 홍교 동쪽 언덕 위에 소설 속 김범우의 집이 서 있다.
▲ 외나로도 하촌 | ||
다음 코스는 고흥의 갯벌이다. 27번 국도를 벗어나 남양면 선정마을로 들어가면 드넓게 펼쳐진 여자만 갯벌을 만날 수 있다. 이팝나무, 사철나무 등 수령 1백 년 안팎의 나무 4백여 그루가 숲을 이룬 선정마을은 꼬막을 잡는 ‘뻘배’의 행렬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갯벌이 은회색으로 빛나는 오후 3~4시경부터 채취한 꼬막을 싣고 뻘배들이 돌아온다. 나른한 봄날 오후를 등에 지고 돌아오는 뻘배들은 봄을 밀고 오듯 갯마을 아낙들의 삶을 힘겹게 싣고 와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갯벌을 스친 길은 점암면으로 이어져 능가사에 닿는다. 나로도로 접어들기 전 들러볼 능가사는 신라 눌지왕(417년) 때 아도화상이 세운 고찰. 새벽 무렵 무게 9백kg의 범종이 울리는 우렁차고도 은은한 새벽예불 무렵이 압권. 능가사를 품은 점암면 일대를 울릴 정도로 그 소리가 우렁차면서도 은은하다.
능가사를 빠져나와 나로도로 갈 때는 해창만 방조제 길(77번 국도)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고 또 운치있다. 드넓은 해창만 간척지와 호수, 철새, 다대포구가 부럽지 않을 갈대밭이 봄기운에 밀려나기 시작한 막바지 겨울을 그려낸다.
해창만 방조제를 벗어나면 길은 다도해의 훈풍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섬, 나로도다. 다리로 연결된 내나로도(동일면)와 외나로도(봉래면)가 1백70여개 올망졸망한 섬들의 시위를 받고 있다.
지난 95년 나로대교로 뭍과 연결된 내나로도는 외나로도에 비해 뭍에서 더 가깝지만 손때가 거의 묻지 않은 오지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해 들어간 곳에 자리한 덕흥해변. 해변 경사지에 층층이 자리한 다랑이논을 푸르게 채운 보리밭과 마늘밭이 인상적이다. 다리가 놓이기 전부터 관광객들은 주로 외나로도를 찾았다.
여의도 면적의 3.5배 정도인 외나로도는 내나로도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센터가 들어설 곳으로, 내나로도에 비해 해안선이 아름답다. 수령 3백 년 이상된 곰솔 3백여 그루가 늘어선 나로도해수욕장이 가장 유명하지만, 염포 창끝 창포 하반 등 해안마을은 아름다움에 더해 정겹기까지 하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유람선도 이용할 수 있다. 일몰은 검은 몽돌로 가득한 염포 해안이 포인트다.
일출을 보기에 좋은 곳은 반대편 하반마을. 우주센터가 들어설 중심지다. 일출 감상 포인트는 몽돌해변 입구. 하반마을과 가까운 예내, 예당 마을과 창포, 중창개, 창끝 같은 해안마을에서는 발목까지 자란 보리밭 너머로 넘실대는 쪽빛 바다를 볼 수 있다.
▲ 벌교(왼쪽), 소록도 모습. | ||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이 서린 소록도는 여의도의 1.5배 크기. 녹동항에서 6백m 거리지만 다리가 없어 배를 이용해야 한다(5분 거리). 작은 사슴의 섬이라는 이름 그대로 지상천국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88년 개방 이후 찾는 이들이 꾸준하다.
선착장에서 2km(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중앙공원이 가장 빼어나다. 편백ㆍ히말라야 삼나무ㆍ동백ㆍ영산홍 등 1백년 남짓의 수목들로 가득 찬 중앙공원은 환상적이다 못해 천국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명물은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아픈 사연을 간직한 바위 위에 한하운의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포인트Tip
▲교통: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순천 주암IC 이용. 27번 국도-주암호-벌교-고흥. 고흥읍에서 나로도는 15번 국도 22km, 소록도(녹동항)는 27번 국도 19km. 안내표지가 잘 되어 있다.
▲맛집: 전라도식 백반이 유명한 곳은 벌교읍내 국일식당(061-857-0588)과 녹동항 다래정(842-2315)이다. 국일식당은 40년 전통의 남도 맛 한정식집. 외나로도 축정항에 얼큰하고 시원한 장어탕집이 여러 곳이다. 2대째 한 자리를 지켜온 순천횟집(833-6441)이 괜찮다.
▲숙박: 팔영산 자연휴양림(833-8779)과 나로도 하얀노을모텔(833-8311~3)이 눈에 띈다.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팔영산 자연휴양림은 지난해 오픈해 시설이 깨끗하고, 하얀노을모텔은 객실과 카페에서 바다와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