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둥둥 산 둥둥 나도 ‘둥둥’
▲ 섬진강을 앞섶에 끼고 꽃구름이 둥둥 뜨는 매화마을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같다. | ||
(김용택의 시 ‘이 꽃잎들’ 일부)
섬진강 고운 물빛은 지금 빛깔 좋은 꽃밭이다. 현기증이 일 만큼 고운 꽃내, 무서울 만큼 화사한 꽃무더기에 가슴엔 그리움 병이 든다. 홍매화 청매화 소리없이 터지고, 산수유꽃 하늘거리며 산으로 오른다. 이파리보다 먼저 목을 불쑥 내미는 봄꽃들의 속살거림이 그립다면, 김용택 곽재구 시인이 쓴 ‘섬진강’ 시집들을 챙겨들고 꽃빛 서린 그 강가에 서 볼 일이다.
광양 다압 매화마을
은은하게 퍼지는 매향을 좇아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섬진교에 섰다. 구불구불한 861번 지방도로를 따라 매화마을로 가는 길. 산 아래 둔덕과 산자락이 눈꽃처럼 환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강 저편 산중턱에도 매화구름이 하얗게 올랐고, 길가 여염집 담벼락과 앞마당에도 옷섶이 단정한 매화다. 온 마을이 매화 숲, 매화마을이다.
항아리 2천여 개가 도열한 5만여 평의 청매실농원이 그 중심에 있다. 섬진강을 발치에 둔 청매실농원은 강과 꽃, 산의 어울림이 좋은 곳. 향긋한 매실차로 단내 나는 입을 축인 후 산책을 시작했다.
얕은 등성이를 에돌 때마다 나타나는 매화. 아니, 봄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깊은 골짜기 온 천지가 백설의 봄이다. 건너편 언덕, 길 따라 오른 산 뒤쪽 등성이까지 희고 붉고 혹은 파리한 꽃잎의 봄이다. 노고단 운해인양 산자락이 몽실몽실하다. 눈을 들자 꽃구름 뒤로 섬진강의 살결 푸른 물빛도 아른댄다.
금빛이 도는 흰모래와 산 그림자를 담아 흐르는 강물. 섬진강으로부터 푸른 바람이 부는 건 당연지사다. 전망대가 있는 산기슭을 돌아 1백여m를 걷자 청보리가 자라는 매화숲이다. 바람이 봄숨을 쉬며 한참을 쉬어 가는 매화그늘. 여주인 홍쌍리씨가 ‘작가들처럼 농사꾼도 농사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심었다는 청보리밭. 초록이 짙은 보리밭은 춘분을 넘기면서 흩날리기 시작한 꽃잎들로 눈부셨다.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강물에 져서 강이 서러운/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사랑도 그렇게 와서/그렇게 지는지/섬진강 가에 서서 당신도/매화꽃잎처럼/물 깊이 울어보았는지요.’ 시인 김용택의 시로 봄날 매화는 더욱 설운 빛이었다.
구례 산동 산수유마을
전라도 땅 매화마을에서 물 건너로 보이는 곳이 경상도 땅 화개마을이다. 이쪽에서 매화가 질 때쯤 저쪽에선 벚꽃이 핀다. 그 유명한 쌍계사 십리벚꽃길. 쌍계사 길이 아니더라도 강변 따라가는 19번 국도변이 온통 벚꽃으로 덮인다.
여기에 마침 물오른 야생차밭이 유명하고, 또 가까이에 매화와 벚꽃의 사이를 비집고 피어나는 노란 봄꽃 산수유가 유명하다.
▲ 쌍계사 십리벚꽃길. 매화마을 매화가 질 때쯤이면 19번 국도변에 벚꽃망울이 정신없이 터져오른다고(왼쪽). 작은사진은 매화꽃. | ||
여울목을 돌아 다시 20분쯤을 달렸을까. 고샅길, 개울가 곳곳에서 노란 꽃무더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몸채의 꽃, 산수유다. 소설가 윤대녕씨가 ‘마른 가지에 뿌옇게 튀어 올라 비구니 애처로운 머리통에 비죽비죽 돋는 머리칼 끝들을 생각나게 한다’던 바로 그 꽃이다. 지리산온천랜드에서 4km를 걸어 올라가면 산수유마을이 나온다. “꽃이 피어서/산에 갔지요/구름밖에/길은 삼십리/그리워서/눈감으면/산수유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리.”(산수유꽃 필 무렵)
곽재구 시인의 시에서처럼 산으로 이어지는 오리 길은 비구니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서 자라나는 설움인양 산수유로 샛노랬다. 드디어 30만 평 산자락이 산수유꽃으로 뒤덮인 상위(산동)마을. 돌담이 단정한 마을길은 샛노란 구름으로 가득했다. 마치 마을 전체가 노란 구름에 갇힌 듯 발랄한 느낌. 그야말로 꽃첩첩, 산첩첩이다.
입구에 걸려 있는 작은 다리 왼쪽으로 난 물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물방울을 튀기듯 하늘로 기세 좋게 뻗어 오른 산수유꽃. 바람이 불 때마다 톡톡 튀는 꽃술엔 빛이 가득했다.
계곡을 지나 왼쪽 마을길로 접어들면 S자형 돌담길이 나타난다. 구불구불 둘러쳐진 돌담 위로 산수유꽃 터널을 이루고, 나뭇가지도, 돌담도, 그 속에 든 사람도 노란 봄날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아마 여순사건 때 ‘산동애가’를 부르며 국군에 끌려갔다는 19세 소녀도 봄날처럼 그렇게 아름다웠을 게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도 못한 채…” 구슬픈 노래 속으로 노란 꽃바람이 밀려든다.
▲ 30만평 산자락이 산수유꽃으로 뒤덮인 산동마을. 사방이 온통 노랗다(왼쪽). 연두빛 일렁이는 쌍계사 차밭. | ||
▲산수유축제: 구례군청은 27일까지 지리산온천단지 일원에서 산수유축제를 연다. 꽃구경 후 지리산온천에서 여독을 푸는 것은 보너스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7.
▲벚꽃축제: 4월 초부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십리 벚꽃길과 하동군 섬진강변 일대에서 벚꽃축제도 열린다.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5-880-2341.
교통정보
호남고속도로 전주IC-17번 국도 임실-춘향터널-남원-19번 국도-밤재터널-구례. 또는 17번 국도만 곧장 이용해 곡성-구례-하동. 17, 19번 국도 모두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난 곳이다. 산수유마을은 19번 국도 밤재터널을 지나, 지리산온천랜드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 후 2km. 온천부터 가장 윗마을인 상위마을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으나, 온천지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4km쯤 꽃길을 천천히 걷는 것이 낫다.
산동 산수유마을에서 나온 뒤 19번 국도를 타고 섬진강 따라 하동으로 내려가면 쌍계사 벚꽃길이, 도중 섬진교를 건너 봉동리 구례군청앞에서 좌회전하면 강변따라 매화마을 가는 861번 지방도로가 시작된다. 남해고속도로에서는 하동IC 이용. 기차는 전라선 구례구역, 경전선 하동역 이용.
별미 & 숙박
▲숙박정보: 청매실농원(www. maesil.co.kr, 061-772-4066)과 주변 매화마을에서 민박이 가능하나 방이 넉넉하지 않다. 하동읍내에 섬진각모텔(055-882-4343) 등 숙박업소가 많다. 산수유마을은 지리산온천호텔(061-783-2900) 등 시설이 넉넉하다. 상위마을에 정든상회민박 (061-783-1309), 상위민박(783-3566) 같은 민박집이 있다.
▲음식정보: 시원한 섬진강 재첩국을 하동과 구례에서 맛볼 수 있다. 참게탕과 지리산 산채정식도 별미다. 화엄사 주변에 있는 그 옛날 산채식당(061-782-4439, 산채정식), 지리산 대통밥식당(783-0997, 대통밥), 하동에 동흥식당(055-883-8333, 송림 인근, 재첩국), 화개장터 입구 강남식당(055-883-2147, 참게탕)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