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기주의 비난에도 목포·순천 등지서 남발…이낙연 국무총리도 자제 당부
한국전력 빛가람혁신도시 전경. 사진=한전
광주시와 전남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한전공대 설립은 한전이 2022년 개교를 목표로 5000억 원을 투자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현재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국제적인 컨설팅 용역이 진행 중이며 연말쯤 부지가 선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입지를 선정 조건으로는 △장래확장성 △학교 발전방향 등을 두루 살핀 뒤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최종적으로 입지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한전 관계자는 “1차적으로 용역 결과가 나와야 대학설립 기본 계획이 수립될 수 있다”면서 “빨라야 연내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전공대 설치를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한전공대의 구상은 이낙연 총리가 전남지사 시절 조환익 전 한전사장을 만나 대선공약으로 적극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방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지금껏 한전 본사가 자리한 나주와 광주시가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전남지역 서부권과 동부권 지자체가 지역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한전공대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전남 서부권인 목포에서는 지난 2일 발족한 한전공대 목포유치 시민위원회는 목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전공대를 목포에 유치하는 것이 가장 최적이고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한전 본사가 지역 균등발전이라는 사회적 효용을 감안해 나주로 이전했으니, 한전공대는 전남에서 가장 낙후된 목포권에 유치하는 것이 설립 취지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시민위원회는 13일 오후 한전공대 목포 유치를 위한 대국민 호소문을 작성해 문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에 등기발송을 마쳤다. 또 설 명절을 맞아 목포역과 버스터미널 등에서 10만 명 유치 서명 작업을 펼쳤다. 김한창 시민위원회 공동대표는 “목포시 남악 대학부지와 무안군 일로 등에 (한전공대 부지) 활용이 가능하다”며 “세계적인 석학들을 교수로 초빙하기 위해서는 국제공항이 필수인데 광주 군 공항 이전 대가로 한전공대를 목포에 유치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고 한발짝 나아갔다.
전남 동부권인 순천에서도 한전공대 유치전에 나섰다. 주윤식 전남 순천시의회 부의장은 지난 13일 한전공대 순천 유치를 위한 한전공대순천유치시민위원회(가칭) 발족을 공식 촉구하고 나섰다. 주 부의장은 “한전공대 설립은 광주·전남의 도시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의 획기적인 공약으로 교육도시인 순천으로 유치해야 한다”며 “설 이후 시민과 정치인, 시민단체 등의 참여를 통해 한전공대유치위를 구성해 지역사회 차원의 추진역량을 결집하자”고 말했다.
나란히 재선에 도전하는 윤장현 광주시장, 강인규 나주시장은 모두 한전공대 유치를 주요 시정 방향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특히 광주의 경우, 구청장 출마자까지 한전공대 유치를 공약하고 있어서 한전공대 유치 과열현상이 우려된다. 앞서 지난 1일 장성수 전 광주도시철도건설본부장은 지방선거 광산구청장 출마 기자회견에서 한전공대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광주·전남 상생현안인 한전공대가 오히려 광주·전남 갈등 요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걱정에서 지나친 유치경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전공대 부지 선정과 관련해서는 광주시와 전남도가 큰 틀에서 한전과 정부 결정을 따르기로 합의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불거진 한전공대 유치전은 시기적으로나 주민설득 측면에서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전력 나주혁신도시 사옥. 사진=한전
전남지사 시절 한전공대 설립 필요성을 제안해 대통령 공약에 이어 정부과제로 이끌어냈던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대학 부지 선정을 놓고 불거진 지자체간 경쟁에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이 총리는 지난 1월 17일 광주·전남 언론포럼에서 “한전공대 부지를 두고 경쟁하지 않는 게 더 멋질 것”이라면서 “지역 지도자들이 넓은 마음으로 봐 달라”고 당부했다. 이 총리는 “(한전공대 부지로) 한전이 굉장히 머리 아파 한다”면서 “정치권의 줄다리기에 견딜 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다. 한전공대 설립 주체인 한전도 지자체간 과열양상이 빚어지면서 부지와 관련한 공식 발언은 아직껏 단 한마디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상당기간 잠잠했던 한전공대 유치 얘기가 선거시즌과 맞물려 또다시 불거지면서 이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은 우려와 함께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 시행된 이후 오히려 부작용으로 나타난 지역이기주의, 소지역주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방선거가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입지자들이 손쉽게 내뱉는 공약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 때문에 지역의 미래발전을 위한 성장동력인 만큼 지역이기주의를 버리고 상생발전이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성수 광주전남연구원장은 “제 논에 물부터 대려는 소아병적 행태를 버리고 보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슬기와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당사자인 한전 역시 광주·전남 지자체들 간 양보 없는 유치경쟁에 우려의 시선과 함께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한전 측이 직접 나주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제를 요청한 데 이어 광주시, 전남도와 첫 만남을 가진 자리에서도 “아직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 등에 ‘한전공대’가 자꾸 거론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유치전이 과열돼 시끄러우면 사업자체를 안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수 원장은 “어디에 들어설 것인가보다는 우수한 교수진 확보, 인재 유치 등 종합적인 곳을 고려해서 광주와 전남이 함께 추진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자칫 지역 이기주의 탓에 정부가 그리는 큰 그림이 깨어질 수 있다”면서 “특정 지역에서 한전공대 유치를 마치 정치적 성과로 이야기하는 것도 맞지 않다. 광주와 전남이 상생의 개념으로 크게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원철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