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프팅으론 못보는 비경 속에 나를 보낸다
▲ 동강은 트레킹보다 래프팅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탁 트인 동강 물줄기를 따라 걷다 보면 쉽게 지나쳐버린 영월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
“초행자는 갈 수가 없을 거예요. 예전에는 길이 있었는데, 요즘은 래프팅이 유행하면서 산길을 걷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길이 아마 지워졌을 거예요.”
문산나루에서 어라연을 지나 거운리까지 동강 줄기를 따라 걸어보겠다는 계획은 문산리 어느 촌로의 말에 벌써부터 삐걱거렸다.
문산리는 2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 대부분 민박을 놓는다. 지금은 강 건너에서 마을로 통하는 다리가 놓였지만 예전에는 나룻배를 대서 건넜다. 다리가 놓이면서 나루는 없어졌지만 그 정취만은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까지도 문산나루라는 마을이름과 ‘동격’으로 쓰인다.
동강은 정선군, 평창군, 영월군 세 지역을 품에 안으며 흐른다. 조양강과 동남천이 합수하는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에서 평창을 지나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서강과 만나는 지점까지 이르는 장장 1백25리, 50여km의 긴 몸체를 지닌 강이 바로 동강이다.
동강은 정선의 ‘떼꾼’들이 정선과 태백 일대에서 나온 질 좋은 목재를 뗏목으로 엮어 서울로 나르는 물줄기로 이용됐다. 그러나 태백선 철길이 새로 생기면서 이 강은 곧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 영월댐 공사 계획이 발표되면서 다시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문산나루는 이런 동강의 영월 시작점이랄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영월 동강트레킹은 따로 코스가 정해져 있다. 거운리에서 출발해 잣봉을 거쳐 어라연에 이른 후 강줄기를 따라 다시 거운리로 돌아오는 코스다. 7km의 이 코스는 그러나 모처럼 이곳을 찾은 트레커들에게는 조금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거리도 짧고 3시간 30분이라는 소요시간도 마뜩찮다. 그래서 택한 곳이 문산나루다.
▲ 잣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 최대의 경승인 어라연(위). 국내 최대의 민간 개방 천문대인 별마로 천문대. | ||
5백m쯤 걷다보면 강을 따라 난 길이 끊기면서 가마산 방향으로 틀어진다. 소로를 따라 다시 5백m 정도 올라가면 폐가가 나오는데 길은 여기서 아예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폐가 오른쪽으로 막아선 풀숲을 잠깐 헤치면 흔적은 희미하지만 분명 사람들이 다녔던 길이 있다. 뻐꾸기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진 이곳은 세속과 단절된 자연공간이다. 낯선 자의 침입에 놀란 꿩들이 날아오르면, 오히려 그 소리에 나그네가 소스라칠 판이다.
그렇게 산을 오르다보면 강물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졸졸거리는 계곡물 소리가 들린다. 땀을 식히기에는 더없이 고마운 계곡이다. 물은 그냥 마셔도 될 만큼 맑고, 10초 이상 발을 담글 수 없을 만큼 차다.
길은 다시 산허리를 돌아 나간다. 좀처럼 강가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정말로 길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당황할 일은 없다.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길을 만들어 내려가면 그만이다. 오른쪽 능선을 따라 슬슬 숲을 헤쳐 내려가면 어라연 입구 강가에 닿는다. 래프팅보트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여기서는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보트의 도움을 빌려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것이 낫다. 잣봉 전망대에서 동강의 마지막 비경이라 일컬어지는 어라연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기 어(漁), 비단 라(羅), 연못 연(淵)’ 자를 쓰는 어라연에는 비단결처럼 아름다운 고기들이 많았다고 한다.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강물 가운데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섬 세 개로 이뤄진 어라연은 보는 이들의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기괴하고 아름답다.
어라연에서부터 거운리까지 강변은 들꽃 천지다. 원추리꽃과 망초꽃, 나팔꽃, 며느리밥풀꽃 등 들꽃들이 아름답다. 어라연을 지나면 동강에서 가장 거친 여울(수심이 얕고 물의 흐름이 빠른 곳)이라는 된꼬까리가 나오는데, 이곳을 지나면 강변을 벗어나 다시 산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30여분쯤 더 걸으면 거운리. 트레킹의 마지막 지점에 당도한다.
영월을 흐르는 동강트레킹이 못내 아쉽다면 평창군 운치리에서 출발해 제장나루까지 가는 평창 동강트레킹 코스를 권한다.
운치리 점재나루에서부터 제장나루까지 4km 구간은 상수원 보호를 위해 래프팅마저도 금하는 곳. 운치리의 래프팅업체 고성리버관광이 위치한 곳으로부터 고성리로 넘어가는 당목이재 마루턱에서 트레킹은 시작된다.
마루턱에서부터 10여분 걸으면 백운산 둔덕 동강전망대다. 구절양장과 같은 동강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으로 그 아찔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자태에 감탄사가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다.
▲ 동강 어라연으로 향하는 트레커들. | ||
자갈밭을 계속 내려가다보면 말목처럼 생긴 말목여울이 나타나고 가매소(수심이 깊고 유속이 느린 곳)를 이루었다가 다시 소통여울로 동강은 변한다. 그리고 강가에선 각종 기암괴석이 시선을 잡아챈다.
그렇게 변화무쌍한 동강의 매력에 빠져 걷다보면 어느새 제장나루. 동강래프팅 최전방 출발지다. 이 코스는 전부해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한편 영월에 가면 단종유배지인 청령포와 방랑시인 김삿갓 유적지 등 들러볼 만한 곳이 많지만 그 중 별마로 천문대(033) 370-2542 )에서의 ‘추억 쌓기’를 꼭 권한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해발 7백99m 높이의 봉래산 정상에 세워진 별마로 천문대는 일반에 개방하는 천문대로는 국내 최대 규모. 직경 80cm 주망원경을 비롯하여 보조망원경 10대 등 총 11대가 설치돼, 신비로운 우주 세계를 보여준다.
트레킹명소 강추4
▲인제 내린천 인제군 미산리에서부터 홍천군 내면 광원리까지 20km. 동강처럼 래프팅 명소로 사랑받는 이곳은 동강보다 물살이 더 세 여울과 소가 연이어 있어 보는 풍취를 즐기기에 좋다. 하루 코스 혹은 1박2일이 알맞다.
▲영덕 옥계계곡 영덕 신양삼거리에서 69번 지방도를 따라 옥계계곡에 이르는 16km 구간이 백미. 오십천 강폭이 좁아지며 절경이 드러난다. 신선이 노는 곳인 듯, 물은 거울처럼 맑고 숲은 우거졌다.
▲울진 왕피천 영양 송보에서부터 울진 구고동까지 이어지는 28km 코스. 오지 중의 오지인 이곳은 협곡이 있어 걷는 맛이 있고, 모래톱에서는 야영까지 가능하다. 완주하려면 최소 1박2일, 여유롭게 즐기려면 2박3일이 적당하다.
▲전남 섬진강 다양한 생태자원과 문화 역사적 가치가 공존하는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에서부터 광양까지 5백50리 길이 모두 트레킹 코스다. 그 중 특히 곡성 구름다리에서 압록분교까지 6.5km 구간이 다슬기 생태체험 등이 가능해 추천할 만하다.
▲가는 길
·자가용
경부·중부고속도로 → 신갈·호법분기점(영동고속국도) →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 제천 I.C(38번 국도)→ 서영월 I.C → 영월
영월 시내에서 태백 쪽으로 가다 다리 앞에서 좌회전해 둥글바위를 지나 20여분 직진하면 거운리. 이곳에서부터 다시 20여분 달리면 문산나루.
평창군 운치리는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에서 들어가는 편이 낫다. 영월에서 정선 방향 38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예미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운치리까지는 약 20분 걸린다.
·대중교통
영월 시외버스터미널(033-374-2450)에서 거운리행 완행버스 하루 5회 운행. 오후 1시에 출발하는 버스만 빼고 나머지 버스들은 문산나루터까지 운행한다.
영월에서 예미로 가는 버스는 역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시로 운행한다. 그러나 예미에서 운치리로 가는 버스는 자주 없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1만5천원.
▲잠자리
거운리와 문산나루 등지에 펜션과 민박이 즐비하다. 오지마을인 제장나루에서도 민박을 할 수 있다. 목적지에 따른 자세한 내용은 영월군 홈페이지(http://www.yw.go.kr) 참고.
▲먹거리
이레가든(033-373-7744)-꺼먹돼지구이 8천원, 야채생불고기 1만2천원.
태화민물횟집 허브마을(033-374-3140)-장어구이(장어죽+허브주 포함) 4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