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반한 무릉이 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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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이 시원스럽게 트인 의구네집 2층 찻집. 차 한모금에 바람 한줄기 일듯 분위기가 일품이다. | ||
김삿갓의 유적지로 알려진 영월군 동쪽의 마대산(1,052m)은 충북과 경북, 그리고 강원도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심산유곡의 청정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더구나 마대산 일대는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지나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로 흘러들어 맑은 계류를 형성, 여느 명소에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그 계곡을 일컬어 ‘무릉계’라며 크게 감탄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흔히들 ‘김삿갓 계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때 묻지 않은 산과 계곡에, 유적지와 박물관까지 끼고 있는 와석리 일대는 가을여행에 딱 어울리는 여행지라 할 수 있다.
마대산 아래 김삿갓 계곡은 어래산과 마대산 사이의 계곡으로 골이 깊고 길이도 길다. 때문에 영월과 봉화를 잇는 88번 지방도로에서 한 번 더 허리를 굽혀 산으로 들어와야 한다. 하류까지 물이 맑고 주변이 청정해 매년 등산객보다는 피서객이 더 많다. 올 여름도 8km의 맑고 긴 계곡에는 피서객들과 그들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의 행렬이 길게 늘어졌다. 그럼에도 다른 이름난 유원지에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행락질서가 깨끗하고 차분한 것이 특징이다.
김삿갓 유적지는 계곡 끝자락에 모여 있다. 마대산 자락 노루목(노루가 엎드린 형상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에서 ‘김병연지묘’가 발견된 것은 30여년 전이지만 마대산 동쪽 자락에 생전의 ‘집터’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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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대산(왼쪽), 김삿갓 생전의 집터 | ||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1807∼1863)으로 방랑을 하며 삿갓을 쓰고 다녔다고 하여 ‘김삿갓’ 또는 ‘김립’으로 불렸다. 그가 20세 되던 해에 향시에 응시해 장원급제를 하였으나 그 내용이 조부(김익순)를 욕되게 한 시였음을 알고, 삿갓을 쓰고 방랑 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풍자와 해학이 담긴 시를 쓰며 전국을 방랑하다가 전라도 화순에서 객사하였다. 그의 시신은 삿갓의 유언대로 젊은 시절 살던 영월 와석골 노루목에 안장됐다.
산행 들머리(들어가는 첫머리)인 노루목 김삿갓묘 앞에는 많은 장승과 돌탑이 조성되어 있고, 작은 성황당이 있는 좌측 옆으로는 마대산 등산 안내판이 자리 잡아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김삿갓 주거지’에 들렀다가 가려면 묘지가 있는 노루목에서 성황당이 있는 왼쪽 길로 들머리를 잡는 것이 좋다. 중간 중간 발목까지 오는 계곡을 건너가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가을까지는 물길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 더 좋다.
마대산은 1천m 높이의 봉우리면서도 노루목에서 출발해 5시간 이내로 산정을 밟고 능선을 타고 내려올 수 있을 만큼 완만한 산이다. 물론 울창한 원시수림과 깊은 계곡을 지나가지만, 길 자체가 크게 가파르거나 위험하지는 않다. 이처럼 마대산에는 인공이 가미된 흔적은 전혀 없다. 수풀이 우거지고 울퉁불퉁한 바위들까지 자연 그대로의 산길을 걷는 게 도리어 고맙고 귀한 경험이라 하겠다.
골이 깊은 계곡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 지 약 1시간 남짓이면 어둔이마을에 마지막 남은 ‘외딴 농가’를 발견한다. 농가 못 미쳐 다리가 하나 있는 데 그곳이 합수지점이다. 김삿갓 주거지와 마대산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마대산은 하루 반나절 코스로도 충분하지만, 조금 여유를 부린다면 외딴 농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를 권한다. 적게는 일곱 가구에서 많게는 열다섯 가구까지 모여 살던 어둔이 일대는 이제 ‘의구네’집 한 곳을 빼놓고 모두 떠나버렸고, 그 외딴집 홀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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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루목의 김삿갓묘(위)와 하류까지 맑고 깨끗하기로 소문난 마대산 계곡. | ||
‘부부의 인심 외에는 가져갈 게 없다’는 외딴 집. 의구 아버지나 어머니는 단박에 주인임을 알아 볼 수 있는 산인(山人)의 외모-화장기 없는 얼굴, 길고 검은 머리카락, 붉다 못해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지녔다. 이들은 서울에서 살다가 15년 전에 어둔이로 들어와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미리 전화를 하면 노루목에서부터 의구네 트럭을 타고 3~4개의 계곡길을 지날 수가 있다.
가족이 지내는 낡은 농가 외에도 손님이 쉬어갈 수 있는 2층짜리 통나무집이 있는데, 미산계곡의 살둔산장과 퍽이나 흡사한 구조를 지녔다. 통나무를 정자형(井字形)으로 양 귀를 맞추어 쌓아올려 그 사이를 흙으로 채우고 바람을 막는 귀틀집 형태로,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볼거리다. 1층은 민박, 2층은 전통찻집으로 사용중인 이 건물은 흙집 짓는 일을 하는 주인장이 직접 지었다.
2층 찻집은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창(窓) 없는 창이 매력적이다. 넓게 트인 창을 통해 밖의 풍경을 고스란히 안에 옮겨다놓은 듯한 것이 우리네 전통가옥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창턱에 다리를 괴고 앉아 저무는 해를 느긋이 바라보는 여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굴뚝의 연기, 별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 ‘따악따악’ 장작 타는 소리. 산 속 외딴 집의 묘미가 거기에 있다.
기자가 들른 날에도 외딴 집에는 손님이 제법 많았다. 이런 일은 여름 성수기 때 잠깐이란다. 간혹 등산객이 차를 마시거나 구경을 오는 일은 있어도 잠을 자러 오는 일은 그다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대산은 아직까지 등산객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호젓한 산행코스로 알려져 있다.
의구네에서 김삿갓 주거지까지는 약 2백m 남짓이다. 오른쪽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고 다시 물길을 한 번 더 지나면 ‘김삿갓 생가’다. 복원한 주거지 건물은 소박한 당시 살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집 앞으로는 유리알처럼 맑은 원시계곡이 흐르고 있다.
마대산 정상까지는 집터에서 2km쯤 더 올라가야 한다. 30~40분 편안하게 걷다가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주능선 안부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으로 올라서게 된다. 오르막을 따라서 30분 정도 산행하면 이내 마대산 정상이다. 하지만 조망은 정상에서 9백m 정도 더 내려간 지점인 전망대 바위가 탁월하다. 이곳에서는 태백산, 함백산 선달산 등 백두대간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강원도 특유의 거대한 산자락을 품게 된다. 하산은 주거지로 내려가는 것보다는 안부능선에서 선낙골로 내려가는 것이 편안하다.
여행 안내
▲가는 길: 김삿갓 계곡_중앙고속도로 제천IC→38번 국도→영월읍→88번 지방도→하동면소재지→김삿갓 계곡(계곡 끝 지점에 좌측엔 김삿갓 문학관, 우측 오르막길에는 김삿갓 묘지와 마대산 김삿갓 주거지 가는 길이 있다.)
▲숙박 : 마대산 어둔이 의구네집(033-374-9694), 해선식당(033-374-9209), 김삿갓식당민박(374-9666)
▲산행코스: 노루목(김삿갓묘·40분)-김삿갓 생가(60분)-안부(10분)-정상(30분)-전망대(20분)-처녀봉(40분)-선낙골(50분)-노루목(김삿갓묘) ▲문의: 김삿갓 문학관: 033-375-7900,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033-374-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