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애마’야 가을 타러 가자
▲ 가을을 타고 싶다면 봉화~영월 간 88번 지방도로를 달려라. 창밖의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달려도 멈춰도 가슴이 두근두근 설렐 정도다. | ||
베스트 드라이브 코스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차가 많지 않아야 하고 더욱이 교통 체증은 없을 것, 적당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을 것, 되도록 도시와 떨어져 있을 것. 그러한 필요충분조건들 때문에라도 호숫가나 해변도로 또는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명산을 에두르는 길이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간택되곤 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봉화 춘양면에서 시작되는 88번 도로는 최고의 산길드라이브 코스다. 길은 소박한 마을을 지나고 산과 산을 잇거나 산을 넘어서 북쪽으로 쏜살같이 내달린다. 이따금 태백과 소백을 잇는 1,000m 이상의 준봉들 사이를 바람처럼 빠져나와 시군의 경계마저도 가볍게 넘어 버린다. 봉화 춘양면에서 시작해 영월 하동면으로 이어지는 이 88번 지방도는 마침내 영월군 동강 자락에 가서야 긴 호흡에 마침표를 찍는다.
파도가 밀려오듯 때론 부드럽고 때로는 격렬하게 변화를 맞는 길. 넓고 깨끗한 도로에는 오가는 차도 별로 없어 막힘없이 달릴 수 있다.
88번 도로의 전구간은 짧게는 두 시간에서 길게는 2박3일 동안 달릴 수 있다. 가능하면 되도록 느리게 달릴 것을 권하고 싶다.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볼거리, 먹을거리 그리고 즐길거리가 풍부하다는 뜻. 보다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달리다가 봉화 춘양면에서 한 번, 두내 약수탕 부근이나 우구치 계곡에서 한 번 더 휴식하는 것이 좋다. 또한 영월 옥동천 부근이나 김삿갓 계곡에도 하루 이상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똑같은 길이지만 영월에서보다는 봉화에서 넘어가는 길이 좀 더 운치 있다.
▲ 서벽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코스모스 꽃물결은 여름 파도 못잖게 낭만적이다. | ||
춘양면에서 두내약수탕까지
춘양은 88번 구간 중에서도 가장 볼거리가 많은 구간이다. 길가의 코스모스나 파란 가을 하늘은 배경처럼 따라다니고 춘양면은 아직 포장지도 뜯지 않은 선물로 가득하다.
춘양면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즉 양백지간이 갈라지는 곳이자 1,000m 이상의 준봉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이다. 일찍이 정감록이나 택리지에서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의 하나로 기록된 곳. 게다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정자가 남아 있어 드라이브 코스라기보다는 문화유적 탐방 코스로 더욱 반길 만한 곳이다.
또한 춘양면은 예로부터 ‘금강송’, ‘적송’이라 불리는 소나무, 즉 ‘춘양목’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억지 춘양’이라는 말도 이곳에서 유래되었다. 물론 갖가지 설이 난무한다. 춘양목이 너무도 유명하여 춘양·내성(봉화) 장날 상인들이 너도 나도 가져온 자기 나무가 춘양목이라고 우긴다 해서 ‘억지춘양’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예닐곱 가지의 낭설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유력한 설로는 ‘영동선을 개설할 당시 직선으로 뻗어 달리게 설계된 노선을 춘양면 소재지를 감아 돌아 지나가도록 억지로 끌어들인 데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있다. 실제로 철도 노선을 보면 춘양면 삼거리 쪽의 직진 거리를 놔두고 춘양면 안쪽으로 깊게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춘양삼거리에서 10여 분 남짓. 춘양역 부근은 88번 드라이브 길에서 만나는 첫 번째 쉼터다. 왼쪽으로는 문수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 상류로 이어지는 운곡천이 흐르고, 오른쪽은 여러 차례의 운행중단을 경험한 사연 많은 춘양역이다. 운곡천은 최근 1급수에만 산다는 다묵장어, 쉬리 그리고 우리나라 하천 가운데 수달이 가장 많다고 알려져 최근 환경관련 단체의 관심을 받는 곳이다. 운곡천을 가로지르면 다리 끝에 위치한 한수정을 비롯해 10여 분 거리 내에 봉화만산고택, 와선정, 백산정, 태고정 등 유교문화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각화산(覺華算·1,176m)도 여기서 10여 분 거리에 있다. 각화산은 우리나라 5대 사고지의 하나인 태백산사고지가 있는 곳으로 고산준령에 막혀 있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조선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각화사와 함께 불에 탔으나 실록만은 온전히 남아 있다. 사고는 아직까지도 미복원 상태.
각화사에서 서벽으로 가면 조그만 식당들이 있지만, 왼쪽으로 두내약수, 오전약수관광지 쪽으로 가다보면 괜찮은 먹거리도 찾을 수 있고 약이 된다는 약수도 맛볼 수 있다.
▲ 와선정과 각화사 그리고 봉화를 가르는 길(위부터). | ||
우구치유원지에서 영월 가는 길
서벽에서 우구치계곡까지는 작고 탐스런 꽃사과가 길을 안내한다. 길마다 빨갛게 익은 사과가 만발해 있다. 탐스러운 마음에 요리조리 구경을 하고 있으니, 사과밭의 넉넉한 주인이 “아~이 사과밭 뭐 찍을 거 있다고…” 하며 농을 건네고는 나무에서 제일 실한 사과를 따서 건넨다. 이처럼 여름은 가도 인심만은 그대로 남아 길손을 맞아주는 곳이 봉화다.
다시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따라 달리면 이번엔 도래기재 부근 팔각정이 눈에 들어온다. 도래기재는 백두대간 종주 코스의 하나로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중심 길이다. 구룡산(1,346m)과 옥돌봉(1,242m)이 여러 산봉우리들과 어깨동무라도 한 듯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전망 좋은 드라이브 장소로는 그만이다.
이어지는 쉼터는 아름다운 계곡과 숲, 그리고 방갈로까지 갖춘 우구치유원지. 여름철에도 호젓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우구치 계곡은 맑고 청정한 계곡으로 ‘아는 사람만 아는 최고의 휴양지’다. 쉼터 텃밭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여기 채소는등산객이나 피서객을 위해 가꾸어 놓았으니 필요한 만큼 따서 드세요. - 우구치리 마을 주민.”
우구치교를 지나칠 때마다 느껴졌던 포근함의 정체가 그것이었다. 그림 같은 풍경이 아니라 풍경보다 넉넉한 마을 인심 말이다.
우구치2교, 3교를 지나 아슬한 산길을 에돌아 내려가면 이젠 영월이다. 지금부턴 영월군 하동의 직진 도로가 시원하게 전진한다. 여름철 피서객으로 북적대던 옥동천이나 김삿갓 계곡도 휴식기에 들어갔는지 사람들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여름이 아니더라도 김삿갓 계곡 일대는 민화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특별한 체험거리와 향토 먹거리가 즐비해 들러보면 좋다.
반드시 길이 목적이 아니어도 좋다. 영월에서 봉화로, 봉화에서 영월로 가다가 또 곁가지로 새면 어떤가. 영월, 태백, 영주, 안동 등 첩첩산중에 둘러싸여 어느 곳에 가든 가을 하늘과 산은 일상처럼 따라다닌다.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풍기IC-5번 국도로 영주시 진입 후-봉화 방향 36호 국도 이용- 춘양삼거리에서 88번 지방도로 좌회전 후-각화사-우구치계곡-영월
★드라이브 코스 : 봉화 춘양면에서 시작되는 88번 지방도-춘양역 삼거리-서벽-도래기재-우구치유원지-영월군 하동 88번 도로
★음식 : 두내 약수터나 오전약수 인근에 토속 먹거리가 많고, 춘양면 서벽 일대는 봉화 송이버섯 채취로 유명하다. 춘양면에 못 미처 만나는 다덕약수탕 일대 역시 봉화 송이 전문점을 비롯해 유명한 음식이 많다.
★문의 : 봉화군청 054-673-5800, 오전약수관광지 054-672-6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