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 입수해 분석해보니…“교체 업체 정해져 있었다” 구린내 폴폴
지난 4월 빙상연맹은 평창올림픽을 9개월여 남겨두고 유니폼 교체 작업을 단행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논란은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됐다. 빙상연맹이 5년간 사용했던 휠라의 경기복 이외에 새로운 경기복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정하면서부터다. 갑작스런 유니폼 교체 전까지 대표팀은 5년간 스포츠 브랜드 ‘휠라’가 개발사 ‘스포츠컨펙스’사 경기복을 대표팀에 공급하는 계약을 이어왔다. 교체 이유로 연맹은 2015년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때 이승훈 선수 유니폼이 찢어져 매스스타트에 출전하지 못했고 지난해 2월 삿포로아시안게임에서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가 넘어지면서 경기복이 찢어졌다는 점을 들었다.
휠라가 제공해 대표팀이 사용하는 ‘컨펙스’ 경기복은 지난해 2월 강릉 빙속 세계선수권 19개 출전국 가운데 14개국이 사용했다. 세계 최강 네덜란드 대표팀도 컨펙스 경기복을 입는다. 큰 대회를 앞두고 경기복 교체가 어렵다는 점으로 볼 때 평창올림픽에서도 대부분 컨펙스 경기복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선수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빙속여제’ 이상화 선수가 경기복 교체 결정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 선수는 “예전 걸 입고 세계신기록도 세웠고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땄다”며 “내년(2018년)에 올림픽이라는 중요한 대회가 있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냥 예전 걸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경기복을 고르기 위해 ‘헌터’, ‘미즈노’사 경기복을 입히고 선수들에게 의견을 묻는 테스트가 진행됐다. 기존 제품인 휠라는 테스트에서 배제됐다. 테스트는 쇼트트랙 심석희, 최민정, 임효준, 서이라,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김민석, 김태윤, 김보름 등 8명이 나섰고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선수 평가지를 보면 컨펙스 경기복에 대한 의견을 적는 곳은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가지 양식 옆에 손으로 박스를 그려 넣어 평가한 흔적이 발견됐다. ‘공기 저항’ 등 과학적인 요소는 없었고 테스트에 참가한 선수들의 간단한 의견이 전부였다.
선수들의 의견도 대부분 ‘헐렁하다. 잘 잡아준다’ 등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맞춤이 아닌 기성 사이즈 경기복을 입었기 때문에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선정 결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 테스트에 의문을 갖게 했다.
테스트 참여 선수 구성을 놓고도 뒷말이 나왔다. 평창올림픽에 나선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단은 27명이다. 일각에서는 ‘8명으로는 테스트 인원이 너무 적고 그 8명도 일부 파벌에 편중됐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여기서 말하는 파벌은 이번 올림픽에서 논란이 된 이승훈, 김보름 선수 등을 포함한 소위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 라인이다.
연맹에서는 “쇼트트랙의 경우 선발전을 거친 남녀 랭킹 1, 2위 선수들”이라고 설명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에 대해서는 “대표팀이 구성돼 있지 않았던 시점”이라며 “평창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이 예상되는 기대주 위주로 대상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정작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이상화 선수는 테스트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별도 테스트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한 차례 취소가 됐고 연맹은 다시 일정을 잡겠다고 밝혔다. 이후 연맹은 이상화 선수 일정을 이유로 들며 별도 테스트 진행을 하지 않았다.
테스트 결과 헌터의 경기복이 선정됐다. 네덜란드 대표팀은 기존의 우리 대표팀 경기복과 같은 컨펙스 제품을 입는다. 앞서 말한 지난해 2월 강릉 빙속 세계선수권 기준 19개 출전국 기준으로 헌터 경기복은 러시아 대표팀만 사용했다. 헌터는 주로 네덜란드 실업팀 선수들이 사용한다.
최종적으로 경기복 교체가 결정되자 휠라 측은 약 2주 뒤인 지난해 5월 윈드터널 테스트 결과표를 공개했다. 테스트는 휠라가 제공해온 스포츠컨펙스의 2014 소치올림픽 버전과 새로운 경기복으로 결정된 헌터의 2016~2017 플랜티나팀의 최신 버전 스피드스케이팅 러버수트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결과적으로 컨펙스 경기복 무게는 300g으로 헌터의 335g보다 35g 가벼웠고 스피드에 직결되는 공기저항도 10% 이상 현저히 낮았다. 안주은 서울대 체육학과 교수는 “(실험 결과상) 스케이팅 속력의 한계를 공기 저항만으로 가정한다면 새 수트로 바꿀 경우 이상화 선수가 2014 소치올림픽에서 세웠던 37초28의 기록보다 최소 1초 이상 기록 저하가 나올 수 있는 실험 수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빙상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단순 그 옷 하나만으로 평창에서 1초까지 줄어든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1000분의 1초로 승부가 갈리는 스피드스케이팅 부문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결과다. 결과적으로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이상화 선수와 고다이라 선수의 기록은 0.33초 차이였다.
빙상연맹 유니폼 교체 과정에서 의혹이 다시 터져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실험 결과 발표에도 협회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곧바로 헌터 경기복을 제작하고 공급할 후원사 공모 절차가 이어졌다. 자연스레 공모 제안서류 필수 항목으로는 ‘헌터 경기복 공급이 가능함을 증명하는 서류’가 추가됐다.
휠라는 컨펙스 경기복 개발 과정에서 거액의 자금을 직접 투자했다. 이미 컨펙스에 투자했지만 휠라로서는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이 유력한 빙상 대표팀 후원을 포기할 수 없었다. 후원 자격을 따내기 위해 기존 컨펙스 경기복을 버리고 헌터 경기복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휠라가 헌터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였다. 헌터 측은 다른 용품은 가능하지만 빙상 경기복은 대한민국에서 한 업체와 유통권리 독점 계약을 했다고 설명했다. 공개적으로 후원사 공모 과정이 진행됐지만 자격을 얻을 수 있는 회사는 한 곳이었다. 헌터 경기복으로 결정된 순간 사실상 이미 독점 자격을 갖고 있는 단 한 곳 이외에는 계약을 따낼 수 없었다.
국내에서 헌터 경기복 공급이 가능한 곳은 ‘브라보앤뉴’였다. 이들은 스포츠마케팅 업체로 영화 배급사 ‘뉴(NEW)’가 설립한 별도 법인이다. 브라보앤뉴는 아웃도어 전문 업체 영원무역과 컨소시엄 형태로 빙상연맹 공모에 참가했고 후원사 자격을 따냈다. 빙상 대표팀의 유니폼에도 ‘노스페이스’가 새겨지게 됐다.
브라보앤뉴로 선정되면서 연맹의 행보에 수많은 의문부호가 달리게 됐다. 이상화 선수 경기복 테스트가 전면 취소된 이유는 단순 참관하고 있던 휠라 관계자 때문이었다. 연맹은 참관만으로도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며 테스트를 취소했다. 모순되게도 연맹은 경기복 테스트에 공모 참가업체 소속 이승훈, 김보름 선수를 참가시켰다. 이승훈, 김보름 선수는 매니지먼트사를 겸하는 브라보앤뉴 소속이다.
경기복 교체 2개월 전 신설된 브라보앤뉴는 설립 초기부터 공격적으로 겨울 스포츠 종목 선수들과 계약했다. 김보름 선수는 경기복 교체 시기와 비슷하게 브라보앤뉴와 계약했다. 이승훈, 김보름 선수 외에도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1000m에서 은메달을 딴 차민규, 남자 쇼트트랙 500m 은메달 황대헌,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금메달 멤버 김예진 등이 브라보앤뉴 소속이다.
또한 ‘일요신문’이 입수한 제안서를 보면 브라보앤뉴 측 제안서에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 한 장이 포함돼 있다. 앞서 연맹이 경기복 교체의 이유로 든 경기복 손상 사건에서 나온 사진이다. 연맹이 컨펙스에 경기복 손상을 항의하자 컨펙스 대표가 입국해 직접 선수 사이즈를 측정했고 이 과정을 연맹 측이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세상에 공개된 적 없는 이 사진을 황당하게도 헌터와 독점 계약한 브라보앤뉴가 제안서에 첨부해 제출했다. 이 사진은 휠라도 컨펙스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연맹 측에서 전달하지 않는 이상 브라보앤뉴가 보유할 수 없는 사진이다. 일요신문은 브라보앤뉴에 이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휠라 관계자는 “공모절차 진행정지 가처분 신청 당시 제안서를 봤다. 그 사진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의심스러운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빙상연맹은 브라보앤뉴·영원무역의 후원 규모를 비공개로 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입수한 휠라와 브라보앤뉴 제안서 내용을 비교해보면 의문점이 생긴다. 두 회사 모두 계약 조건이 계약기간 5년간 현금 총액 20억 원(연간 4억 원)과 50억 원(연간 10억 원) 상당의 현물을 후원한다고 밝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두 회사가 사실상 똑같은 계약을 제시했지만, 사실 전달한 시기는 차이가 있다. 휠라의 제안은 계약 종료 이전인 우선 협상기간에 전달됐다. 이후 헌터가 공모 절차 과정에서 계약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스포츠 브랜드 업계 관계자는 어디선가 한쪽이 유리하도록 정보가 흘러갔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했다. 그는 “담합이나 협상도 아닌 제안서를 내 경쟁하는 상황에서 같은 후원 규모를 제안한 상황이 다소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제안서에는 허위 사실도 기재돼 있었다. 브라보앤뉴가 제출한 회사소개서 등에는 그간의 후원 실적 등이 기재돼 있었는데 이 중 다수가 브라보앤뉴의 실적이 아니었다. 현재 브라보앤뉴의 담당자가 전 직장에서 쌓은 실적으로 보였다. 연맹 측 제안서 검토가 허술하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경기복 선정에서 탈락한 휠라는 지난해 5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후원사 공모절차에 이의를 제기해 법원에 ‘공모절차 진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법원은 가처분이 이뤄지면 장기간 후원사를 결정할 수 없어 선수들이 경기복 등을 후원받지 못해 큰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판단해 기각을 결정했다고 적시했다. 법원은 ‘휠라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공모절차에서의 하자가 공모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현저히 침해할 정도로 중대하다는 점이 소명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제 올림픽은 끝났다.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청와대 청원에 무려 60만 명 이상이 몰렸다. 국민들의 빙상연맹 적폐 청산 열망이 엄청나다는 점을 보여줬다. 야당 관계자는 “이번이야말로 빙상연맹 적폐 청산 최적의 타이밍이다. 역대 최다인 60만 명의 청원이 몰린 만큼 문재인 정부도 손놓고 있을 순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