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해 사이로 황홀한 아침 ‘둥실’
▲ 옥정호의 신비로운 물안개가 옅어질 즈음엔 벅찬 감동을 선사하며 장엄한 해오름이 시작된다(위). 아래는 섬진강변 드라이브 단풍길. 사진제공=사진작가 김승태 | ||
산을 의지한 채 물길을 에돌아 흐르는 호반 드라이브는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한적하고 고요한 맛이야 어느 호수든 마찬가지겠지만 최근 특히 각광을 받는 곳은 전북 임실군 옥정호다. 섬진강 최상류에 자리한 옥정호는 만수면적만 약 26.5㎢에 이르는 전북 최대의 호수다.
옥정호의 물안개는 요즘이 가장 특별하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변화가 급격한 늦가을은 물안개가 생기는 최적의 조건인 것. 옥정호와 호수 속의 섬이 물안개와 어우러져 이뤄내는 비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옥정호가 물안개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이맘때면 전국의 사진가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오늘 보고 내일 또 볼 수 있는 변함없는 풍경이 아니라 어쩌면 생애 단 한 번 스치듯 지나가버릴 수도 있는 절경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옥정호는 이전에 섬진호나 운암호 또는 갈담저수지로 불리던 호수로 전북 정읍시와 임실군에 걸쳐 넓게 펼쳐져 있다. 임실군 운암면 일대를 흘러가는 섬진강을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에서 댐으로 막으면서 1965년부터 옥정호로 불리기 시작했다. 호수를 끼고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호반도로는 섬진강 개발에 따라 최근 드라이브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호반도로는 여느 호수에서처럼 고즈넉하고 조용하다. 30여분을 느긋하게 달려도 눈 흘기며 뒤쫓는 차 한 대 보이지 않는다. 호수 주변의 작은 마을에서는 아침저녁으로 닭이 울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자연을 의지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소박한 삶이 고향처럼 푸근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 국사봉 정상(위)과 이곳에서 내려다본 호반 드라이브 길(아래). | ||
입석리와 용운리 사이의 옥정호에는 눈에 띄는 섬이 하나 있다. 그곳에 설마 사람이 살겠냐 싶었는데 ‘외안날’이라는 마을이 있단다. 팔순의 노인과 젊은 부부 등 3가구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인적도 드문 호수 속에서의 삶이라니, 산이 좋아 산자락에 둥지를 트는 산새들처럼 그들 역시 호수를 떠나지 못한다.
국사봉은 동 트기 전에 올라가야 제 맛이다. 입석리를 기점으로 봉우리에 올라서면 산 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물론 물안개에 뒤덮인 옥정호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새벽 4시께 국사봉 등산로 입구에는 ‘전국구 번호판’을 단 차들이 하나 둘 들어선다. 가까운 곳에 숙박을 하는 이도 있지만, 더러는 밤새 달려와 국사봉 아래에서 쪽잠을 자기도 한다. 그런 경우의 대부분은 사진동호회나 소규모 등산모임의 멤버들로 야간산행쯤은 그다지 겁내지 않는 이들이다.
어둠 속 등산길은 제법 길고 험하다. 옥정호를 보면서 갈 수 있도록 산 외벽을 따라 등산로가 나 있다. 때로는 비탈길이고 때로는 밧줄을 잡고 가는 암벽길이라 높이에 비해 스릴이 넘친다.
천천히 가더라도 30~40분 정도면 국사봉 정상에 도착한다. 중턱에서 느끼는 포근함과는 달리 정상에서는 사방으로 자유롭다. 정면에는 물안개에 잠긴 옥정호가 주변 산들의 호위 속에 선경을 자랑하고 옆으로는 호반 드라이브 길이 곡예처럼 아찔하다. 뒤편으로는 오봉산의 다섯 봉오리들이 촘촘하게 이어진다. 사진가들은 말없이 좋은 자리를 꿰차고 등산객들은 짧은 산행의 아쉬움도 잊은 채 풍경을 칭찬하기 바쁘다. 한 폭의 동양화라느니, 수묵담채화라느니 저마다의 기준으로 만끽하는 새벽, 선경은 삽시간의 황홀경으로 지나가버린다.
▲ 덕치면에서 만난 섬진강 물줄기(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은 평화로운 덕치마을(아래) 분위기와도 닮았다. 이곳은 김용택 시인이 시심을 일구는 마음의 터이기도 하다. | ||
국사봉 전망대는 전주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27번 국도를 달리다가 운암대교 앞에서 좌회전을 하면 된다. 전망대로 가기 전 약 50m 전방에 국사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나 있다.
호반도로를 거쳐 운암대교를 지나면 덕치면으로 이어지는 섬진강변 길(27번 국도)과 그 우측의 섬진댐 길(30번 국도)로 나뉜다. 여유가 있다면 회문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덕치면에 들러 강변 트레킹을 해보는 것도 좋다. 이곳 회문산의 당당한 기세를 마주하는 곳에는 조그만 강변마을 ‘장산마을’이 있다.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이 자라고 뿌리를 내린 마을로 예나 지금이나 오지의 풍경을 잃지 않은 곳이다.
마을 입구에서 길 따라 들어가다 보면 호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섬진강과 마주하게 된다. 수심은 얕고 강폭은 넓어 시원하고 평화롭다. 소박한 가운데 행복이 넘쳐나는 이 곳은 시인의 맑은 시와 닮아 있다. 생활 속에서 묻어난 김용택 시인의 시원(始原)이 여기에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다. 김용택은 인근 덕치초등학교에서 여전히 선생으로 재직중이다.
강을 건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마을 징검다리 옆에는 새로운 길이 생겼다. 버젓한 길을 두고 징검다리를 건너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반질반질한 돌 위로 조심스레 한 발씩 건너다가 보면 아찔한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다. 식은땀을 훔치면서도 건너가는 모양새가 동심으로 돌아간 듯 맑다.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아늑한 이곳에서 강줄기를 따라 돌면 이제는 노인 몇 분만 남아 있는 ‘천담마을’, ‘구담마을’로 이어지게 된다. 단풍과 낙엽으로 어우러진 숲을 따라서 한 걸음 한걸음씩 내디뎌도 좋은 길이다.
그런가 하면 섬진댐 쪽으로 방향을 잡아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 여우치와 마암분교를 지나 다시 운암대교를 만나게 되는데 운암대교 근처에는 오래된 매운탕집들과 숙박 장소가 많다.
그밖에 임실군 관촌면 사선대유원지도 이제 막 낙엽거리를 이루며 만추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시작했다. 진안으로 간다면 한번 들러볼 만하다.
여행안내
섬진강서 낚은 청정 매운탕 '강추'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전주IC(서해안 군산IC)에서 임실 순창 방면(27번 국도)으로 간다. 운암대교 건너기 직전 운암 삼거리에서 749번 지방도를 따라 좌회전하면 입석리 국사봉 전망대다. 그대로 직진하여 운암대교를 건너면 옥정호 관광지가 나타나며 길은 다시 섬진댐과 덕치면으로 갈라진다.
★먹거리: 섬진강 맑은 물에 서식하는 쏘가리, 빠가사리 매운탕 등이 대표적이다. 운암대교 주위에는 30년 된 운암산장(063-221-6335), 강촌(063-222-6322) 등 민물매운탕집들이 많다. 특히 운암산장의 빠가매운탕은 섬진강 맑은 물에 서식하는 빠가사리와 민물 새우, 참게 등을 넣고 끓여 더욱 개운하고 얼큰하다. 가마솥에서 금방 해주는 밥맛도 일품이다.
★숙박: 운암대교 주변에 숙박시설이 몰려 있다. 리버사이드 063-221-7968, 리베라 063-222-6866, 국사봉모텔 063-644-0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