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번에는 달라지나’ 기대했다 크게 반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는 신연희 구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월 정기 인사 후 첫 영장 발부 사례였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는 지난달 28일, 경찰이 신연희 서울 강남구청장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채용 청탁으로 받은 9300만 원을 유용한 혐의였다. 신연희 구청장이 70세의 고령이었고, 신분이 확실해 도주의 우려가 없었지만 법원의 판단은 확고했다. 첫 영장 발부 덕분에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과 강남구청은 더욱 바빠졌다. 강남구청 직원들에 대한 수사 확대가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화색을 띠고 있다. 새로 구성된 영장전담부의 첫 결정이 ‘긍정적’이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신연희 구청장에 대한 영장 발부 결정을 내린 것은 박범석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6기). 지난 2월 말 법원 인사로, 영장실질심사 재판부에 온 뒤 첫 구속영장 결정이었다.
이보다 앞서 법원에서 영장전담을 맡았던 판사는 권순호·오민석 부장판사(둘 다 사법연수원 26기)와 강부영 판사(사법연수원 32기) 등 3명. 이들은 지난해 판사들 가운데 가장 화제의 인물이었다. 특히 강부영 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해 이름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법원은 이번 2월 정기 인사를 통해 영장전담 재판부에 ‘무게’를 더했다. 원래 영장전담 재판부는 부장판사급 2명, 평판사 1명 등 3명으로 구성됐던 것을 바꿔, 새롭게 박범석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6기)와 이언학 부장판사, 허경호 부장판사(둘 다 사법연수원 27기)까지, 부장판사만 세 명을 배치한 것.
인사 결정이 이뤄지는 방식도 달라졌다. 전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중심으로 고위 간부들이 판사들의 능력과 성향, 출신 지역 등을 감안해 인사를 결정했다면 이번에는 평판사들이 중심으로 이뤄진 법관 사무분담위원회를 통해 결정됐다.
지난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석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강부영 판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영장을 발부해 화제가 됐다.
영장전담 재판부의 역사를 보면 이런 맥락을 더 쉽게 알 수 있다. 원래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판사는 1명이었다. 부장급 판사 1명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이 갈수록 커지면서 영장 청구 사건도 증가하자, 영장전담 재판부를 구성해 규모를 늘렸다. 부장판사 1명에서 부장판사 2명으로 확대했다가, 얼마 안 돼 평판사까지 1명 더 추가했다. 부장판사 2명, 평판사 1명으로 재판부를 꾸린 것이다.
3명이라는 숫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게 법원 내 중론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원래 영장 발부 여부에 대해 의견이 나뉘면, 다수결처럼 결정하곤 한다”며 “평판사라곤 하지만 결정을 할 때는 동등하게 의견을 제시하곤 한다”고 털어놨다.
검찰이 법원에 사건으로 처음 판단을 받는 곳이기도 한 영장전담 재판부. 그래서 검찰 관계자들이 법원 인사에 가장 관심이 많다. 검찰 수사의 성패를 1차적으로 판단하는 게 구속영장 발부 여부다. 올해 역시 검찰에서는 ‘누가 영장전담이냐‘며 큰 관심을 보였고 박범석 부장판사 등 재판부의 성향을 분석했다. 그리고 곧바로 신연희 청장에 대한 영장이 발부되자 ’올해는 해볼 만하다‘는 평이 조심스레 나왔다.
하지만 영장전담 재판부는 검찰의 기대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검찰이 청구한 첫 주요 사건 피의자 구속 청구는 정작 기각한 것.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해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사실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기각을 결정했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재차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원하는 범죄 입증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진술을 선호하는지 그 외 객관적인 범죄 혐의 입증 자료를 선호하는지 등은 영장전담 판사마다 다르다”며 “이번 역시 검찰이 앞에서는 반발하며 법원에 ’영장 기각을 신중히 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뒤에서는 각 재판부가 어떤 스타일인지 영장 발부율을 높이기 위한 분석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법원 내에서는 부장판사가 3명이 된 것이 검찰에 더 불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재판부에 ‘무게감’이 더해진 만큼, 더 사건을 신중하게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평판사보다 기수가 5~6년 정도 더 높은 부장판사로 1명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실제 재판까지 갔을 때 유죄 입증이 가능할지 검찰의 증거 입증 정도를 까다롭게 볼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는 영장 기각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부장판사 역시 “언론에서는 이번에 새로 온 재판부가 중형을 선고한 형사 사건들을 언급하지만, 실제 박범석 부장판사도 그렇고 허경호 부장판사도 그렇고 매우 신중한 사람들”이라며 “영장전담 재판부는 제한된 검찰 자료를 가지고, 하루 안에 구속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이지만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결정할 사람들은 아니다.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과감히 기각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가 이들이 3월 말에서 4월 초, 언론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3월 중 소환이 예상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도 결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 이에 대해 앞선 부장판사는 “인사를 할 때 여러 가지를 감안했겠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중요 피의자들의 구속영장 실질심사 여부도 고려했을 것”이라며 “결과에 따른 비판이나 칭찬 모두, 좋든 싫든 영장전담 재판부가 지고 가야 하는 운명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