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도 쉬어도 굽이마다 절경
▲ 영춘마을은 뒤로는 태화산이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남한강 줄기가 마을을 휘감아 돈다. 상리에는 남한강 3대 절경 중 하나인 ‘북벽’이 있다. | ||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각동리에서 충청북도 단양군 상진리 도담삼봉까지 ‘남한강 3대 절경’을 두루 돌아보는 1백리길. 감히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브코스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길이다.
남한강은 영월읍에서 서강과 동강을 보듬고 단양 방면으로 흐른다. 영월읍에서 벗어나 88번 도로를 타고 달리다보면 어느새 강줄기와 벗하며 길이 뻗어 있다. 언뜻언뜻 보이던 강이 비로소 몸체를 드러내는 지점은 영월읍 정양리를 지나면서부터. 맑은 햇살에 부서지는 강물이 시리도록 푸르다.
길을 계속 달리면 진별리. 고씨굴이 있는 곳이다. 고씨굴은 임진왜란 당시 이 마을에 살던 고씨 일가의 피난처. 4억년 전 생성됐다는 이 굴은 호수와 3개의 폭포, 4개의 광장 사이로 수십 종의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아름다운 석순과 종류석에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총길이는 6.3km에 이르지만 9백m만 개방됐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들러보는 것도 좋다.
고씨굴을 지나 1km쯤 내려와 우측 다리를 건너면 남한강 제일의 강마을 각동리와 만난다. 남한강 3대 절경 중 하나인 곳이다. 각동리에선 강을 따라 마을의 집들이 지네발처럼 늘어서 있다. 건너편 강가는 암벽이 수천 폭 병풍을 펼쳐놓은 듯하다. 중간 중간 내리다만 폭포가 얼어붙은 것이 할아버지의 흰 수염 같다.
겨울의 각동리는 아주 고즈넉하다. 원체 작은 마을이지만 오가는 마을 사람들의 자취를 찾기 힘들다. 다만 아름다운 강마을로 이름을 얻기 시작하면서 찾아오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간혹 눈에 띈다.
각동리 초입에는 소박한 찻집이 하나 있다. 강바람에 오그라든 몸을 따뜻하게 녹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에 참 좋은 곳.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남한강의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강폭처럼 넓어지고 강물처럼 유연해짐을 느낀다.
마을 앞 강물은 무척 맑다. 깨끗한 물이 아니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수달이 살 정도. 쏘가리와 눈치 등 민물고기도 지천이다. 요즘 같은 추운 날에도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어가 종종 잡힌다고 한다.
▲ 남한강 제일의 강마을 ‘각동리’ 풍경.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집들이 많다 (위),각동리에는 강 주변으로 전통찻집들이 여럿 들어서 있어서 어딜 들어가도 강가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곳에서 언 몸을 녹이는 차 한 잔의 여유를 | ||
영춘면은 제법 큰 마을이다. 지금이야 단양에 가려 그저 그런 마을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한때는 단양에 버금갈 정도였다고 한다.
영춘에서 특히 이름 난 강마을은 상리와 하리. 이곳은 안동 하회나 예천 회룡포처럼 강물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고 있다. 상리에는 남한강 3대 절경에서 첫째를 다투는 ‘북벽’이 있다. 남한강 줄기를 굽어보듯 깎아지른 북벽은 각동리의 암벽보다 더 웅장한 느낌이다. 북벽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청명봉’. 마치 매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매 응(鷹)자를 써 ‘응암’이라고도 부른다. 북벽 근처에는 그 이름을 딴 북벽교가 있다. 영춘의 관문이다. 북벽교에서 바라보는 황금빛에 물든 해질녘 남한강은 황홀경에 절로 빠져들게 한다.
북벽교를 지나 영춘으로 들어서면 다리 하나가 더 나오는데, 바로 영춘교다. 이 다리를 건너면 하리. 온달산성과 구인사 등 둘러볼 만한 곳들이 많다.
온달산성은 남한강변 해발 427m의 성산에 축성된 길이 972m, 높이 3m의 반월형 석성. 바보 온달이 전사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온달산성은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어 ‘성곽트레킹’을 하기에 좋다. 비탈길이어서 조금 걷기는 불편해도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30분 정도만 오르면 성곽의 정상이다. 온달산성 정상에서는 남한강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온달관광지에서 2km 정도 더 올라가면 구인사가 나온다.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전국 1백40여 사찰을 관장하고 있다. 구인사는 1945년 창건한 절로 고풍스런 맛은 없지만 그 규모 면에서 방문객이 압도당한다. 5층 대법당과 삼보당, 설선당 등 50여 동의 건물들이 경내를 메우고, 1만여 명이 취사할 수 있는 현대식 건물도 있다.
이젠 남한강 3대 절경 중 마지막인 ‘도담삼봉’을 만나러 가는 길. 잠시 정들었던 595번 지방도를 버리고 군간교를 넘어 59번 국도로 갈아탄다. 길은 계속 강줄기와 함께 달린다. 때로는 거세게 굽이치면서 돌고 돌아 가는 길. 내내 차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어디서든 길을 멈추고 서면 다시금 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풍광들. 그러나 강물 위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봉우리 도담삼봉을 만나러 아쉬움을 접으며 내쳐 달린다.
▲ 단양으로 달리면 도담리가 나오는데, 이곳에는 강 한가운데 3개의 바위가 산처럼 솟아 있는 도담삼봉이 있다. | ||
퇴계 이황이 도담삼봉을 보고 남긴 시다. 도담삼봉이 있는 곳은 단양읍 별곡리. 읍내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번잡스러운 느낌은 없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고수대교가 남한강을 가로지르며 우람하게 서 있다.
도담삼봉은 남한강 강 한가운데에 있는 봉우리 셋. 높이 6m의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북쪽에 ‘처봉’, 남쪽에 ‘첩봉’ 등 세 개의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 있다. 남편봉과 첩봉은 우람하지만 그 옆 처봉은 다소 수그러든 애처로운 모습이다.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며 돌아앉은 모습이라니 이해가 간다.
얼어붙기를 거부하고 흘러온 남한강은 이곳에서 피곤한 다리를 쭉 뻗고 ‘동면’한다. 꽁꽁 언 강물 위에 뜬 세 봉우리도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며 함께 동면에 들어갔다. 늦가을까지만 해도 봉우리 주변을 유람하던 배들도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그래도 계절과 강과 봉우리가 조화를 이룬 도담삼봉의 정취만은 여전하기만 하다.
[여행 안내]
★문의: 단양군청 문화관광과(http://www. danyang.chungbuk.kr) 043-422-3240
★먹거리: 남한강 줄기를 따라 달리다보면 곳곳에서 매운탕 전문 식당을 만날 수 있다. 특별한 맛을 원한다면 남천리의 ‘복천가든’(043-423-7206)을 권한다. 도토리묵밥정식(2인 기준 2만원), 도토리전(6천원) 등이 맛있다. 신단양 상진리 파출소 근처 ‘오학식당’의 도토리묵밥(1인분 5천원)도 유명하다. 단양하면 육쪽마늘을 빼놓을 수 없다. 단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장다리식당’(043-423-3960)의 마늘솥밥정식(특 1만5천원, 보통 1만원)이 별미다.
★숙박: 각동리에도 최근 펜션 등 잘 곳이 늘었다. 추천할 만한 곳은 ‘비탈길 구비돌아’(033-372-6315)라는 펜션과 찻집을 겸하는 곳. 모두 11개의 방을 갖추고 있는데 강가에 있어서 정취가 참 좋다. 영춘면에는 온달관광지구와 상리 주변에 펜션들이 꽤 있다. 4개의 방이 있는 ‘마론 통나무펜션’(상리·043-423-9555)과 7개의 방이 있는 ‘온달과 평강’(남천리·011-485-0686) 등이 깨끗하고 좋다. 도담삼봉이 있는 단양읍에는 숙박업소가 많다. 그 중 ‘까르페디엠’(천동리·043-421-2155)은 지은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신축 건물로 11개의 방이 있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남원주 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제천톨게이트로 빠져나와 38번 국도를 탄다. 영월읍에서 다시 59번 국도로 갈아탄 후 태백 쪽으로 달리다가 88번 국도로 다시 한번 갈아타고 춘양방향으로 달리다보면 고씨굴이 나온다. 고씨굴에서부터 1km 정도 아래로 내려오다보면 우측으로 595번 지방도가 있다. 이곳이 각동리. 595번 지방도를 타고 내쳐 달리면 영춘면. 도담삼봉으로 가려면 다시 59번 국도를 타고 단양방면으로 달린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