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바다를 한번에 품는다
▲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꼽히는 미조항. | ||
남해는 풍경의 미적 균형이 탁월한 곳이다. 산은 바다를 위압하리만치 높지 않고 바다는 열려 있으되 허하지 않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나타나는 다랑이논 마을, 방조림 뒤편에 숨은 작은 마을들은 자연스럽게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이곳에서라면 ‘산이냐 바다냐’가 아니라 ‘며칠을 더 묵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듯하다.
경상남도 남해군. 본래 이곳은 섬이었다. 그러나 남해대교와 창선-삼천포대교가 생기면서 섬이 아닌 육지가 되었다. 남해는 산과 바다를 두루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지로서 큰 장점이 있다. 특히 망운산, 설흘산, 호구산 등 남해에도 여러 개의 산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로 치는 금산은 등산하면서 바다의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여행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금산(錦山)이라는 이름답게 이 산은 비단처럼 고운 절경들을 품고 있다. 남해의 소금강으로도 불리는 금산은 해발 681m로 그다지 높지는 않다. 하지만 다 둘러보기도 힘든 ‘38경’이 그 안에 숨어 있다.
금산을 등산하는 데는 왕복 3시간쯤 걸린다. 넉넉히 둘러본다고 해도 4시간이면 족하다. 등산 도중 쌍홍문과 상사암 등 갖은 이름의 절경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다. 그 사연의 보따리를 풀어가며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보리암이다.
68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보리암은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한 후 조선의 왕에 오른 절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이 절은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지금도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보리암을 찾고 소원을 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상적으로 보리암에 오르려면 적어도 1시간 이상은 걸리게 마련인데 그 시간이 아까운지 제2매표소로부터 금산 8부 능선까지 길을 터 차량의 통행을 허용하고 말았다. 산은 길이 닦이고 넓어질수록 그 가치를 잃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함을 얻었지만 길이 허리를 자름으로써 산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늘어난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게 됐다.
▲ 금산 정상에 있는 봉수대에서 사위를 굽어보는 등산객들. 금산 보리암과 3층석탑. | ||
산에 올랐으면 이제는 바다를 느낄 차례. 남해는 본래 섬이었던 만큼 곳곳에 아름다운 해변을 가지고 있다. 송정해수욕장이나 상주해수욕장 등은 물빛으로 나그네를 유혹하는 곳이다. 햇볕이 부서지는 이들 해수욕장 앞바다는 비취색이 찬연히 감도는데 이 겨울에도 추위를 잠시 잊고 한번 뛰어들고픈 욕망을 일으킬 정도다.
송정해수욕장에서 5km 남짓 떨어진 미조항도 물빛이 다를 바 없다. 남해의 동남쪽 끝에 자리한 미조항은 ‘미륵이 도운 마을’이라는 뜻을 지녔는데 남해 최고의 미항으로도 손꼽힌다. 유인도인 조도와 호도 등 16개 섬이 앞바다에 떠 있는데 가히 ‘남해안의 베니스’라 불릴 만하다.
2천4백여 명의 주민이 사는 미조항은 남해안에서는 제법 큰 갯마을이다. 주민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하는데 상권이 잘 조성돼 있다. 항구의 아름다움에 반해 찾아오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횟집들이 즐비하다.
미조항에서부터 10km가량 해안을 따라 길을 달리면 닿는 곳은 ‘물건리’. 이곳으로 가는 길이 드라이브 코스로는 남해에서 제일이다. 초전-항도-가인포-노구-대지포-은점-물건으로 이어지는 이 도로는 흔히 ‘물미해안도로’라고 불린다. 물건리와 미조항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물건리로 가는 중간에 항도마을에 들른다면 항도전망대에 올라가보길 권한다. 이곳에서는 사량도, 두미도, 욕지도와 마안도, 콩섬, 팥섬 등 남해바다의 갖은 섬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물건리 인근에는 아주 특별한 마을이 있다. ‘독일마을’이 바로 그곳인데 이 마을에 가면 한국이 아니라 독일 어느 지방에 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30여 채의 집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모든 집 모양이 독일식이다. 마을 입구에는 독일기와 태극기, 남해군기 세 종류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지족마을에 가면 지금도 죽방렴을 이용해 물고기를 가두어 잡는다. 사진 윗부분 바다 위에 어른어른 떠 있는 것이 죽방렴이다(사진 위). 남해에는 산을 깎아 논을 만든 다랑이논이 곳곳에 있다(가운데). 날씨가 맑은 날이면 금산 정상에서 푸른 바다에 올망졸망하게 떠 있 | ||
물건리에서 다시 길을 달려 창선면 방면으로 달리다보면 지족리 앞바다에 이상한 구조물이 박혀 있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이른바 ‘죽방렴’이다.
참나무 말뚝을 V자로 박고 대나무로 발을 엮어 물고기가 들어오면 V자 끝에 설치된 불룩한 임통에 갇혀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는 물고기 함정. 임통은 밀물 때는 열리고 썰물 때는 닫히게 되어 있다. 죽방렴을 이용해 잡은 물고기는 상처가 없고 신선해 비싼 값으로 팔린다. 남해 지족마을은 죽방렴의 전통을 이어가는 몇 안 되는 갯마을이다.
이외에도 남해에는 둘러볼 것들이 천지다. 다랑이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은 자투리땅도 소중히 여기는 남해주민들의 근면성이 돋보이는 곳이다. 남해바다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망운산(786m)과 그 아래에 있는 화방사도 놓치기엔 아까운 곳이다. 해질녘이면 아름답게 노을에 물드는 남해대교와 그 주변 바다의 풍경 또한 마찬가지. 뿐만 아니라 해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후 비로소 자신의 화려함을 뽐내는 창선-삼천포대교의 야경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다.
이쯤 되면 남해에 가면 ‘산이냐 바다냐’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여행 안내]
★가는 길: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진주 I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사천IC에서 나와 3번 국도를 탄다. 창선-삼천포대교 건너면 남해. 또는 사천IC 지나 하동IC에서 나와 19번 국도 타면 남해대교.
★숙박: 미조항 가까이 있는 ‘가족사랑 남해펜션리조트’(미조면 송정리·011-848-6161)는 몽돌해수욕장 일출을 볼 수 있는 곳. 4인 기준 평일 5만원, 주말 7만원.
대표적인 갯마을인 지족마을에 있는 ‘갯마루’(지족리·055-867-3887)도 묵을 만하다. 주변에 죽방렴이 있고 마을에서는 굴따기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4인 기준 평일 5만원, 주말 8만원.
★먹거리: 남해에는 지금 물메기가 한창이다. 12월부터 2월 사이에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물메기는 피부와 살이 물컹물컹하여 그 모양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맞추기 힘들다. 그러나 생긴 것에 비해 맛은 참 일품이다. 미조 삼동지역은 멸치잡이로 유명한 곳. 팔딱거리는 멸치의 뼈를 발라내고 초고추장에 야채를 넣고 버무려 먹는 멸치회맛을 또 잊을 수 없다. 바다향기회센터(미조리·055-867-4447)에서 이 두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음식점도 깔끔하다. 물메기탕 8천원. 멸치회 2만원.
★문의: ▲문의:남해군 문화관광과(www.namhae. go.kr) 055-860-3801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