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야 달려가자 봄섬과 키스하러
▲ 물이 빠지면 선재도에서 목섬으로 가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 아래 사진은 선재대교에서 바라본 선재도 선착장. | ||
자동차로 떠나는 서해 섬 여행은 시화방조제(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와 안산시 방아머리를 잇는 방조제)에 접어들면서부터 시작된다. ‘막힘없이 뻥 뚫린 시원함.’ 시화방조제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간척과 자연파괴’라는 논란 속에서 1994년 2월 완공된 시화방조제. 이 방조제의 길이는 무려 12.7km에 달한다.
도로에 표시된 자동차의 규정 속도는 시속 80km. 단 한 번의 구부러짐도 없는 고속도로 같은 도로에서 이 같은 속도 제한이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길에 접어들면 시속 80km도 ‘충분히’ 빠르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방조제 좌측의 시화호와 우측의 서해바다 풍광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좀처럼 가속페달을 밟을 수가 없다.
요즘처럼 햇살이 좋은 봄날엔 푸르다기보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결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산책을 하는 연인들이 부쩍 많아졌다.
방조제 중간쯤에는 오이선착장이 있다. 주변으로는 포장마차들이 대여섯 개 들어서 있다. 싱싱한 횟감을 떠서 파는 어민들도 보인다. 이 선착장은 여객선이 정박하는 곳이 아니라 주변 어선들이 배를 대는 곳. 낚시꾼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인지 작은 어선 20여 척이 상시 대기 중이다.
방조제가 끝나는 곳에서 좌측으로 길머리를 틀면 대부도다. 이 섬을 관통해야 선재도에 갈 수 있다. 대부도는 돌이 검다는 ‘탄도’, 부처의 섬이라는 ‘불도’, 신선이 노니는 섬 ‘선감도’ 등 크고 작은 섬과 어깨를 맞댄 섬이다.
선재도는 이 섬의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방조제 드라이브코스와 비교할 때 대부도에서 선재도까지 이르는 구간은 평범한 편이다. 대부도가 휴양지로 각광받으면서 길 주변으로 조개구이와 해물칼국수, 꽃게찜 전문점 등 음식점들이 크게 늘었다. 그 길을 따라 20분쯤 달리면 드디어 선재도다.
▲ 이제는 폐쇄된 용담이해수욕장. 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경만은 여전하다. 아래는 달리던 자동차를 멈추고 오이선착장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연인들. | ||
선재도는 아주 작은 섬이다. 마을 주민은 700명 남짓. 조선 후기까지 ‘소우도’라고 불리다가 1871년 선재도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1914년 영흥도와 함께 부천군에 편입됐다가 1973년 옹진군에 속하게 됐다.
선재대교를 지나면 왼쪽으로 작은 섬 두 개가 보인다. 먼저 만나는 섬이 목섬, 두 번째가 측도다.
목섬은 흔히 말하는 ‘애기섬’. 한 바퀴를 도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 목섬은 물이 들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선재도와 연결된다. 선재도에서 목섬까지의 거리는 500여m. 선재도 주변 해안은 서해 특성상 모두 개펄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목섬으로 이어진 길에는 모래가 쌓여 있다. 하루에 두 차례 물에 잠겼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 길은 깨끗하기 이를 데 없다. 쓰레기가 없는 거의 유일한 무공해 섬이다. 물이 빠진 목섬 주위 개펄은 어민들의 생활터전이다. 굴과 낙지 등이 많이 나는 고마운 개펄이다.
측도는 선재도에서 서쪽으로 1km 지점에 있다. 이 섬 역시 물이 빠질 때는 선재도와 연결되어 도보나 차량 등으로 왕래할 수 있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바다 깊이를 육안으로도 측량할 수 있을 정도로 맑다고 해서 ‘측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실제로 물고기가 노는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선재대교에서 겨우 5분.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영흥대교가 있다. 선재대교보다는 훨씬 웅장하다. 서해대교의 축소모형이라고 할까. 기다란 이 다리를 지나 다다른 영흥도의 정취는 선재도와는 사뭇 다르다.
영흥도는 인구수 2000명이 넘는 서해안에서도 손꼽을 만한 커다란 섬이다. 선재도가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면 영흥도는 투박하다. ‘육지화’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아직 도로 정비도 채 끝나지 않았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과 자갈길이 곳곳에 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더딘 발전’이 이 섬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이 알려지자마자 섬은 몸살을 앓게 마련인데 영흥도는 아직 그 단계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 장경리 해변은 곧게 뻗은 일자형 해수욕장이 아니라 움푹 들어간 만형 해변이다. 그래서 한결 포근한 느낌이다. | ||
장경리해변은 1km가량 펼쳐져 있는데 두 팔로 거대한 나무를 감싸는 듯한 ‘만’의 모양이 인상적이다. 이곳에는 100년이 넘는 노송지대가 1만여 평 자리 잡고 있다. 주변 바다는 너무도 고요해 보이지만 겨울철만 되면 그 표정을 달리한다. 순한 양에서 성난 사자로 돌변한 바다는 바람이 드셀 때면 집채만 한 파도를 일으키며 해변으로 돌진한다. 방풍림은 그 엄청난 파도를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다.
장경리에서 5km쯤 떨어진 십리포해변은 ‘일자’형이다. 길이는 장경리해변과 비슷하다. 이곳에는 소나무가 아니라 우리나라 유일의 자생 서어나무군락이 있다. 150년 이상 된 서어나무들이 350주가량 모여 있다. 같은 섬의 해변이지만 장경리에 비해 십리포의 물이 더 맑고 모래와 자갈도 더 깨끗하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보다 많은 편이다.
물이 맑기로는 십리포해변에서 임도(林道)를 거쳐 닿는 내동 주변이 으뜸이다. 이곳은 또 선재도와 영흥도를 잇는 영흥대교를 시야의 방해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뷰포인트이기도 하다.
영흥도에는 사연을 간직한 작은 절이 하나 있다. ‘통일사’라는 이름의 이 절을 꾸려가는 이는 여성이다. 그가 정식으로 불도에 입문한 비구니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6·25 때 피난 온 월남민. 남녘땅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다 남편을 먼저 보낸 후 고향이 그리워 북녘땅이 잘 보이는 영흥도 언덕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통일을 기원하며 절 이름도 통일사라고 지었다는 것.
영흥도 여행에서 아쉬운 점 하나는 서해안 섬인데도 불구하고 일몰을 볼 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몰을 보려면 발품을 좀 팔아야 하는데 장경리해변에서 좌측에 보이는 산에 올라야 한다. 이 산은 ‘영흥화력발전소 전원개발사업 예정구역’. 산 정상 부근까지 임도가 나 있는데 차량의 출입은 금지돼 있다. 도로에서부터 거리는 500m 정도. 걸어서 20분쯤 걸린다. 땀 흘리며 정상에 오르면 산과 바다 사이로 해가 떨어지는 멋진 광경을 눈과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여행 안내]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월곶, 안산IC→시화방조제→대부동→선재도→영흥도
★숙박: 선재도-목섬과 측도가 내려다보이는 ‘윈드빌팬션’(032-889-0725), 측도 신비의 바닷길 바로 앞 ‘테마팬션’[(032-889-0406).
영흥도-소나무 방풍림이 우거진 장경리해수욕장 앞 ‘해오름빌리지’(032-886-3381), 십리포해수욕장 인근 ‘왕건마을팬션’(032-886-7301).
★먹거리: 선재대교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목섬이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 ‘우리밀칼국수’(032-889-7044)가 있다. 육수국물에 속을 긁어낸 박속과 버섯, 미나리, 청양고추, 바지락을 넣고 한소끔 끓인 후 싱싱한 산 낙지를 넣어 끓여먹는 박속낙지탕은 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해서 숙취 해소에 그만이다.
영흥도에 가면 굴고추장찌개를 한번 맛보자. 영흥도 내리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하늘가든’(032-886-3916)이 고추장을 이용한 해물요리로 유명하다. 굴 특유의 시원함과 고추장의 매콤함이 어우러진 찌개 맛에 숟가락이 바빠진다. 바지락고추장찌개, 꽃게찜도 맛있다.
★문의: 선재도(http://www.seonjaedo. com) 영흥도(http://www.youngheungdo. com) 옹진군청(http://gun.ongjin. incheon.kr) 032-899-21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