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하는 ‘박제교실’은 가라
![]() |
||
▲ 박물관이야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 이 모임은‘지루한’박물관을‘재미있는’박물관으로 바꿔 놓았다. | ||
“박물관은 유물 수장고가 아니에요.”
회장 오현애 씨(44)는 박물관에 대한 편견이 너무 팽배해 있다고 지적한다. “박물관을 즐길 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오 회장의 분석이다.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남경애(42), 이찬화(49), 김미연 씨(37)가 맞장구를 친다. 이들이 현재 ‘박물관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축 4인방이다.
청소년들이 언제든 찾아가는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뭉쳤다. 사실 박물관은 숙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가득하다. 오 씨 등은 그런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박물관에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찬화 씨는 박물관의 높은 문턱을 낮추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아이들에게 박물관의 높이에 맞추도록 강요할 게 아니라 박물관을 아이들의 시선만큼 끌어내리면 된다는 결론이 선 것.
이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씩 프로그램을 완성해 나갔다. 특히 ‘박물관투어’와 ‘엄마랑 함께하는 박물관나들이’는 이제 완전히 자리 잡았다.
![]() |
||
▲ 모임을 이끌어가는 김미연 남경애 이찬화 오현애‘주부 4인방’(왼쪽부터). 이들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모여 프로그램에 대해 상의하고 공부도 함께한다. | ||
이외에 매달 첫째·셋째 주 토요일에는 북촌문화센터 등에서 ‘지도로 떠나는 역사여행’과 ‘옛사람들의 생활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의 호응은 놀랄 정도다. 박물관이라면 쳐다도 안 보던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찾아가 공부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박물관이야기’는 단순히 부모와 아이가 함께 전시물을 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위주로 한다. 옛사람들의 생활이 주제라면 그 당시의 사람이 되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서로 이야기하며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과거의 세계로 들어간다. 옛 지도를 그려보기도 하고 전통 떡을 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놀이인 셈. 아이들이 싫증을 느낄 틈이 없다.
엄마의 시각도 달라졌다. 아이를 모임에 보내고 안전점검차 나왔다가 열렬한 지지자가 되기도 한다. 4인방 중 한 명인 김미연 씨가 그런 경우다. 김 씨는 박물관에 가기 전 미리 공부를 하고 아이에게 생생하게 설명해 준다. 그 결과 아이가 언제 또 가냐고 조를 정도로 박물관을 좋아하게 됐다.
오 씨 등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모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함께 공부한다. 처음에는 한 번만 모이기로 했지만 벌여놓은 일들이 너무 많아 세 번으로 늘렸다. 소식지도 만들고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도 써내려가고 있다.
이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박물관 방문의 원칙은 이렇다.
첫째, 주제를 가지고 갈 것. 보고 싶은 것, 봐야 할 것만 보고 나머지는 남겨두라는 뜻이다. 과한 욕심은 흥미를 앗아간다. 둘째, 한 시간을 넘기지 말 것. 박물관이 지겨워지는 마지노선이 한 시간이다. 셋째, 안내 도록을 잘 활용할 것. 그것만 봐도 박물관을 반 이상 본 것이다. 넷째, 주제를 정했으면 공부할 것. 아는 만큼 보이고 즐겁다. 다섯째, 쉬고 싶을 때 쉴 것. 박물관은 힘든 곳이 아니라 즐거운 곳이다.
아이를 키우는 꼼꼼한 주부들이 만든 프로그램이니 어련하랴. 나들이를 보채는 자녀들이 있다면 이번 주말에는 아이 손을 잡고 ‘박물관이야기’ 모임에 한번 참석해보는 것은 어떨까.
★문의: 박물관이야기(http:// www.museumstory.org)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