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길 찾는 재미 ‘첩보’ 뺨치네
▲ 지도로 길을 찾고 숲을 헤치며 걸어가는 사람들. | ||
오래전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모 자동차 광고카피다. 이 문장이 잘 어울리는 또 하나의 대상이 있다. 달랑 나침반과 지도 한 장을 들고 처녀림 같은 산과 숲을 누비는 일. 바로 ‘독도산행’이다. 정해진 길로만 가는 일반 산행과 달리 독도산행은 가고 싶은 곳, 발길 닿는 곳 그 어디나 목표가 될 수 있다. 한국산악회 등산학교에서 실시하는 주말 독도산행. 아직 등산로를 벗어난 산행에는 겁부터 먼저 나는 기자가 동행해 길을 개척하는 즐거움을 함께 맛보았다.
5월 13~14일 이틀간 경기도 양평 산음자연휴양림에서 실시된 주말 독도산행. 이번 산행은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CEO 과정에 다니는 38명이 단체로 참여했다. 간혹 청년층도 있었지만 회사를 경영하거나 대기업의 임원으로 있는 중장년층이 대부분. 뭔가 생산적으로 MT를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독도산행에 참가하게 됐다고 한다.
독도산행의 첫날은 등산의 기초와 독도법 이론 등에 대한 강의가 실시됐다. 수업에 집중하는 체험자들에게서 배움에 대한 열의가 느껴진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친 뒤 1시간 동안 어제 배운 이론에 대한 복습이 이어졌다. 강사가 다시 한번 인지해야 할 중요한 몇 가지를 확인시킨다.
독도산행을 시작하려면 먼저 지도상에서 현재 위치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음 행선지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 그 다음은 목적지에 대한 확인이다. 중간 이동경로를 찍어가며 목적지까지 동선이 제대로 이어졌는지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각 포인트마다 방위각이 얼마나 되는지 지도상에 작도하고 거리 측정도 해야 한다. 1:10,000 축적의 지도라면 지도상에서 1cm는 실제 거리로 100m다. 1:25,000 축적 지도에서는 1cm가 실제 거리 250m다. 지도를 볼 때는 몸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돌려가면서 항상 목적지가 앞에 가게 해야 한다.
▲ 주말 독도법 강의에 참여했던 카이스트 최고경영자 과정 수강생들(위)과 이론교육을 받으면서 나침반과 지도로 방향과 거리를 측정하는 체험객들. | ||
5~6명씩 5개조로 편성, 5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기자는 3조에 포함됐다. 한국산악회 전인찬 사무국장과 기자 외 3명의 체험자들이 함께 조를 이뤘다.
출발지에서 제2포스트를 찾아가는 첫 관문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큰 길에만 눈이 가는 법. 그런데 지도는 길이 아닌 곳을 헤쳐 가라고 한다. 능선을 타고 오르면 2포스트라는데 전혀 발길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숲은 우거지고 풀은 무성하다. 나침반을 허리춤에서 꺼내 지도에 대어보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산행에서 지도는 바이블과 같다. 그 지도에 의지하기로 하고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산행을 하다보니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좌우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때마다 전 사무국장이 조언을 한다.
“산세를 잘 보고 주능선이 어딘지 확인한 다음 길을 정하면 별 어려움이 없어요.”
노련한 산사람에게야 쉬운 일이겠지만 체험자들은 모두 초보. 군대에 다 다녀온 남자들이지만 군대에서 배운 독도법과 어제오늘 배운 독도법을 비롯한 실제 산행은 너무 판이하다.
인터넷복권사업을 하는 조원증 씨는 “지도 읽는 법을 배우고 나침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게 되니 눈앞에는 없지만 숨어 있는 길이 보인다”면서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고 처녀 독도산행을 평가했다.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마치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듯한 모험과 스릴이 있는 독도산행. 단지 잘 닦인 길을 따라 무조건 오르는 산행은 잠시 접고 스스로 길을 개척하며 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보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
★문의:한국산악회(http://www.cac.or.kr) 031-855-8848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