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민은행 인사권자 구속 등 수사 탄력…은행권 “갑의 횡포 저항 못하는 을에 불과”
가장 왼쪽이 박재경 부산은행 사장. 부산은행 부행장 시절, 부산은행의 ‘공감기부 프로젝트’ 사연자에게 기부금을 전달하던 박재경 부산은행 사장. 최근 채용 비리에 관여한 의혹으로 구속됐다.
법원이 최근 구속영장을 발부한 박재경 부산은행 사장. 박 사장은 18대 국회의원 출신 A 씨와 알게 된 뒤 친분을 유지했다. 그러던 2015년, 부산은행 신입행원 채용이 진행되자 A 씨는 박 사장에게 자신의 딸을 부산은행에 채용해 줄 것을 부탁했다. 박 사장은 당시 인사담당 임원(부행장)이던 강동주 BNK저축은행 대표에게 A 씨의 딸을 채용할 것을 지시했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A 씨 딸 성적이 서류 과정을 통과하기에 현격히 낮았던 것.
채용이 ‘어렵다’고 판단한 박 사장. 박 사장은 A 씨를 찾아가 “따님의 성적이 낮다, 채용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A 씨는 확고부동했다. 오히려 박 사장에게 “딸을 채용하라”고 강요했다. 이에 박 사장은 한 발 물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텔러) 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A 씨에 다시 제안했지만, 오히려 A 씨는 박 사장을 크게 나무랐다. 거절은커녕, 혼나기만 했다는 게 검찰 수사팀의 후문. A 씨 딸의 합격이 불분명하자 최종 면접을 앞두고 당시 은행장이던 성세환 BNK금융지주 전 회장에게 이를 보고하고, 채용을 승인 받았다. 그리고 본인이 최종 면접관으로 참여한 가운데 높은 면접 점수를 줘 A 씨 딸을 최종 합격시켰다. 이 과정에서 부산은행은 A 씨 딸을 따로 만나, 채용 관련 정보를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박재경 사장과 강동주 대표는 구속된 상태인데, 검찰은 조만간 A 씨를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부산은행은 외부의 VIP에 놀아났다면, 국민은행은 내부 VIP 입김에 영향을 받았다. 국민은행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종손녀(친누나의 손녀) 등 20여 명의 VIP 리스트를 별도로 관리해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으로 서울남부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 금감원 조사 결과, 윤 회장의 종손녀는 2015년 채용 당시 서류 전형 840명 중 813등, 1차 면접 300명 중 273등으로 하위권이었다. 하지만 2차 면접을 거치고 4등이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채용됐다. 당시 경영지원그룹 부행장과 인력지원부 직원이 윤 회장의 종손녀에게 최고 등급을 줬다는 게 공공연한 후문.
이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은 국민은행 인사팀장 오 아무개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서울남부지법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곧바로 영장을 발부했다. 국민은행에 대한 채용비리 수사가 시작된 이후 실무자를 비롯해 관련자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오 씨에 대한 영장 발부로 윤종규 회장을 향하는 검찰 수사도 탄력을 받고 있다.
국민과 부산 외에 하나·대구 등, 금감원이 의뢰한 5곳 은행(모두 22건 부정 채용 의혹)에 대해 검찰이 일제히 수사에 착수한 만큼, 은행들의 ‘부정한 채용 과정’이 구체적으로 더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최흥식 금감원장은 하나은행 부정 채용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스스로 옷을 벗었다.
특히 금융권은 하나은행을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지난 9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013년 하나금융 사장 재직 당시 지인의 아들이 하나은행 신입행원 채용에 응시하자 이를 인사부서에 전달해 채용 청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한 주간지에서 제기했기 때문. 논란이 확산되자 최 원장은 스스로 자리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기사의 출처는 확실하지 않지만,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문제삼던 최흥식 원장이 갑작스레 자리에서 물러난 탓에 금감원이 하나은행을 벼르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금융권에 돌고 있다. 실제 금감원은 대규모 특별검사단을 투입, 최 전 원장과 관련한 하나은행 채용 비리 의혹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번 특별검사단은 특별 사안에 대한 검사로는 대규모 편성이다. 금감원의 추가 조사로 하나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 범위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금융권은 ‘올 것이 왔다’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갑(甲)의 횡포에 어쩔 수 없는 을(乙)의 입장에서 받아왔던 게 채용 청탁이라는 것. 특히 부정채용을 ‘관치금융의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채용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은 한 은행 관계자는 “채용 과정에 일부 지원자들에게 특혜가 있었던 것은 우리 측의 명백한 잘못”이라면서도 “힘이 센, 국회의원이나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사람들이 ‘자녀 아무개가 지원했으니 잘 챙겨달라’고 얘기하면 신경을 안 쓸 수 있겠냐, 특히 그런 부탁을 면접에 직접 참여하는 고위 간부급들에게 했을 경우, 인사 문제까지 걸려 있어 더욱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 역시 “우리는 정치권에서 불러도, 금감원 등 금융기관에서 불러도 언제든 달려가서 1시간도 기다려야 하는 을 중의 을”이라며 “우리은행 채용 비리 때 드러난 청탁자들을 보면 금감원 등 힘 있는 기관 사람들이 우리한테 ‘부탁’을 하지 않았냐, 관치금융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채용 청탁에서 은행 스스로가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