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상 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왼쪽 사진, 오른쪽이 문 실장) 의 정무라인과 문재인 민정수석(오른쪽 사진)의 부산인맥은 새 국 정원장으로 신상우 전 부의장을 강력하게 천거했다고 한다. | ||
청와대 참모그룹의 ‘세 축’을 이루고 있는 문희상 비서실장-유인태 정무수석의 정무라인과 문재인 민정수석-이호철 민정비서관 중심의 부산인맥,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을 핵으로 하는 386참모그룹들이 새 정부의 마지막 남은 요직인 국정원장 인선을 놓고 치열한 파워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여권 내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
이미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 인선 과정에서 물밑 영향력 경쟁을 벌여온 이들 그룹 간의 갈등은 단순히 인사 문제에 대한 이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장차 국정운용 방향 및 민주당 개혁,대야관계 정립 등 노무현 정권의 핵심 과제에 대한 노선의 차이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낳고 있다.
국정원장 인사를 둘러싼 ‘힘겨루기’는 각 세력의 주장에 따라 수시로 인선 기준이 바뀌는 등 파열음이 커져가면서 이에 대한 여권 내 우려가 상한선까지 도달한 상황. 여권 핵심부는 당초 정부 출범 전 북핵 사태 등을 감안해 신건 현 국정원장을 당분간 유임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조각 발표(2월27일)때 노 대통령이 “국정원장은 전문성을 감안해 실무형을 쓰겠다”고 밝히면서 비정치인 전문가그룹에서 적임자를 물색해 왔다.
그러나 이달 초 청와대 정무라인이 “국정원 개혁에는 정치력을 갖춘 인사가 적임”이라고 건의하자 “개혁성이나 업무장악력, 정치력과 추진력을 갖춘 거물급 인사를 기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송경희 청와대대변인)고 수정했다.
기준이 이처럼 바뀌면서 이달 중순 초까지만 해도 국정원장에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 사실상 내정단계에 이르렀음이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입에서 확인됐다. 유인태 정무수석은 “정치인에서 국정원장이 발탁되면 신 전 부의장일 것”이라고 했고 문재인 민정수석도 신 전 부의장이 노 대통령과 동문(부산상고)이란 점이 걸리긴 하지만 그가 “가장 유력한 후보이며 대통령의 결심만 남겨둔 상태”라고 말했다.
청와대 정무라인과 부산인맥을 주축으로 한 민정라인이 ‘신상우 카드’를 내놓은 이유는 국정원의 현 상황과 17대 총선 영남권 선거전략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것이 정설. 먼저 국정원 개혁과 관련해 민정라인은 차장 등 간부들의 대다수가 호남 출신인 국정원의 현재 인적구조를 물갈이하기 위해서는 조직장악력이 있는 신 전 부의장과 같은 정치거물이 수장을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 ||
이와 관련, 민정라인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국정원의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권력기관의 대대적 개혁’이라는 명분도 명분이지만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 줄을 선 현 국정원 지도부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직·간접적인 루트를 형성한 인사들도 적지 않아 대통령 보고사항이 미리 다 유출되어 버릴 것이라는 우려도 가미됐다”고 밝혔다.
정무라인에서도 김대중 정부 초반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문희상 비서실장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정라인의 주장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무라인은 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산·경남(PK)지역의 인재 풀(Pool)의 확대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이 지역의 기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의 PK 약진에 이어 신 전 부의장을 국정원장에 기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에도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 캠프’에 합류했던 이기택 한이헌 전 의원 등도 내년 총선과의 함수관계를 거론하며 신 전 부의장의 중용에 직·간접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신상우 국정원장’으로 굳어졌던 상황은 청와대 386참모그룹들이 ‘개혁성’의 문제를 들어 ‘신상우 불가론’을 끝까지 고집하면서 방향이 틀어져 버렸다. 이들은 ▲노 대통령의 개혁성이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나야 할 국정원장 인사에 구 정치인인 신 전 부의장을 앉힐 경우 권력기관 개혁의지에 시비가 일 수 있으며 ▲정치인 출신 국정원장이 성공한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 ▲노 대통령과 신 전 부의장이 부산상고 동문이라는 점에서 ‘학연 인사’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등을 내세워 ‘비(非) 정치인 국정원장’을 주장했다.
▲ 국가정보원 전경. 국정원장 인선을 놓고 여권 내에서 파 워게임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 ||
이 과정에서 신 전 부의장측은 386 참모그룹들의 비토 움직임에 대해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의장의 한 측근은 “신 전 부의장이 국정원장에 대해 단 한 번도 희망을 피력한 적이 없는데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후보로 올렸다가 이제 와서 이미 유권자들의 심판을 통해 소명이 된 과거 군 경력까지 거론하며 음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 측근은 또 ‘신상우 불가론’을 집중적으로 설파한 386참모그룹 핵심인사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자신들만 개혁적이고 나머지는 모두 개혁의 대상이라는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정운영의 중심축을 이뤄서는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일갈하기도 했다.
사실상 내정단계에까지 갔던 신 전 부의장이 국정원장에서 멀어지자 그를 강력추천했던 청와대 정무-민정라인도 불쾌해하기는 마찬가지. 이들은 특히 386 참모그룹들의 반발로 국정원장 인선구도가 바뀐 줄도 모르고 막판까지 ‘신상우 국정원장’을 언급했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한 셈이 됐다. 유인태 정무수석은 기자들이 국정원장 인선구도가 바뀐 배경을 묻자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며 손을 내저었고 인사 검증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문재인 민정수석도 “(국정원장 문제엔) 손을 놓고 있다”며 불만을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국정원장 인선을 둘러싸고 내부 알력이 심화되자 이를 수습하려는 청와대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정찬용 인사보좌관은 14일 국정원장 문제와 관련, “당초 노 대통령이 거물 정치인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우리가 반대해 지금은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며 “(국정원장) 인선기준은 역시 개혁성이며 국내 사찰활동에 연루되지 않고 국내 정치보다는 해외 분야에 박식해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적임자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정 보좌관의 이 같은 언급은 국정원장 인선을 둘러싼 논란을 순수한 ‘인사원칙’의 문제로 축소해 청와대 내 부 세력 간 갈등을 ‘물타기’하려는 시도로 이해되지만 전후 사정을 고려할 때 설득력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란 해석이다. 박영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