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집단이주’ 헛구호…주민들 “삶과 안전 위협받아” 진정서 제출
생곡쓰레기매립장 대책위 주민 50여명은 15일 오전 부산시를 항의 방문했다.
생곡쓰레기매립장은 부산시의 생활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1994년 만들어진 시설이다. 시는 시설 운영에 즈음해 매립장 반경 500m 이내를 직접영향권으로, 반경 2km 이내를 간접영향권으로 구분해 관리키로 했다. 이는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한다. 직접영향권 안에는 현재 179가구 423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생존 위한 이주요구에도 대책 마련 ‘지지부진’
생곡쓰레기매립장 주변 직접영향권이 처음부터 생활이 어려울 만큼 환경이 열악하지는 않았다. 매립장 주변에 음식물처리시설, 연료화발전단지, 하수슬러지육상처리시설 등이 하나씩 들어서자 주민 불편은 점점 커졌다. 참기 어려운 악취와 각종 해충 등으로 인해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으로 변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부산시에 집단이주를 요청했다. 이에 부산시는 주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63.6%란 압도적인 찬성이 나왔다. 그러자 시는 관련 법률에 근거해 생곡마을 집단이주를 최종 결정했다. 이때가 바로 지난해 3월경이다.
당시 부산시는 강서구 생곡동 생곡마을 5만 2370㎡를 보상비 500억 원으로 매입하고, 이곳을 폐기물처리시설 용지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생곡쓰레기매립장 주변을 폐기물처리시설 집적단지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함께 발표했다. 특히 시는 생곡마을 집단이주를 위해 생곡마을 주변을 일시적으로 개발행위허가제한구역으로 지정하고, 주민대표 등과 함께 이주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주대상 부지를 찾기로 했다.
부산시의 이 같은 방침은 현재 시점에 이르러서는 ‘헛구호’ 내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시의 이전 계획발표가 나오고 일 년이나 지났지만, 바뀐 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는 기초적인 대책마저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생곡폐기물처리시설대책위원회(대책위) 김종원 사무국장은 “부산시의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 처음엔 에코델타시티에 이주를 추진하려다가, 개발이 진행되고 땅값이 오르자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다시 명지신도시 2단계지구에 옮긴다고 했지만, 기약도 없고 이젠 약속도 믿을 수가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부산시 이계희 자원순환과장은 이에 대해 “현재 이주문제와 관련해 대체부지로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이주대책 업무를 사실상 방기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부산시의 행태를 참다못한 대책위 주민 50여 명은 15일 오전 부산시를 항의방문하고, 이주대책을 조속히 추진할 것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민원실에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결재권자를 포함한 부산시 관련공무원들을 직무유기죄로 고소함은 물론, 시민과의 합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부산시정에 대한 법적책임의 추궁에 목숨을 걸고 나설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의료폐기물 무단 반입에도 형식적인 단속에 그쳐
생곡매립장에 무단 반입된 의료 폐기물의 모습.
의료폐기물은 일반폐기물과 달리 지정된 봉투에 담아 처리해야 한다. 생곡매립장에는 일반 가정에서 사용한 소량의 의료폐기물은 반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병원에서 사용한 의료폐기물은 반입이 전면 금지된다. 약품 안에 든 화학물질 등이 매립장 땅속으로 스며들면 주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까닭에서다.
생곡매립장에 병원에서 사용한 의료폐기물이 반입된다는 주장은 그동안 끈임 없이 제기됐다. 실제 여러 차례 적발된 기록도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2월 부산시와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실시한 합동단속에서 관내 3개 병원이 적발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시는 연 2회 실시하는 합동단속 외에는 정기적인 점검체계를 마련해놓지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운반업체에 대한 근원적인 단속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러기에는 인력도 부족하고 물리적으로도 힘든 부분이 많다”고 입장을 나타냈다.
#못하는 건가, 양쪽 눈치 보느라 안하는 건가?
부산시가 이처럼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데는 생곡매립장 재활용센터 운영권을 둔 주민들 간의 해묵은 갈등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도 있다. 시는 1996년 생곡마을에 쓰레기매립장을 지으면서 보상 차원에서 재활용센터를 마련하고 운영을 주민들에게 맡겼다. 일정액의 지원금도 마련해 제공키로 했다.
재활용센터는 연간 수익금이 16억 원에 가까운 생곡매립장의 핵심 시설이다. 재활용센터는 부산지역 16개 구·군에서 수거하는 재활용품을 하루 평균 180톤을 처리한다. 이는 부산지역 재활용품 배출량의 40%에 이르는 규모다. 시 지원금과 재활용센터 운영은 모두 대책위에서 관리한다.
대책위는 경찰관 출신인 김 아무개 씨가 지난 15년간 위원장을 맡았다. 김 위원장은 재활용센터 대표도 함께 담당해왔다. 그러다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센터 운영의 투명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갈등이 일었다. 주민들 간에 편이 갈리며 서로 마찰이 심해졌다.
이에 시가 지난 6월 중재에 나서, 위원장직은 비상대책위에 넘겨주고 김 씨는 재활용센터 대표만 맡기로 합의했다. 합의 후에 배병우 위원장이 선임되면서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을 지지하는 주민들과 별도의 위원회를 꾸리면서 갈등이 다시 점화됐다. 양측은 현재 법적인 다툼까지 벌이고 있는 중이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