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속의 신기루’ 잡힐 듯 말 듯
▲ 해질녘 시작되는 가창오리의 화려한 군무. 신기루처럼 돌연 군무가 끝나면 금강하구에 어둠이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 ||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계속되는 시베리아의 혹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그 추위를 피해 새들이 날개를 폈다. 가창오리들도 그 ‘이탈’의 대오에 합류했다. 시베리아를 가로지른 가창오리들은 바이칼호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남으로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겼다. 그들의 최종 기착지는 대한민국 충남 서산 천수만과 전북 군산 금강호 일대. 벼 낟알이 널린 드넓은 평야와 삭풍을 피해 쉴 수 있는 갈대숲, 먹잇감 풍부한 강물 등 ‘철새들의 천국’이다.
전 세계에 서식하는 가창오리는 70여만 마리. 이 가운데 90% 이상이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난다. 일단 천수만에 도착한 가창오리들은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들 대부분은 군산 금강하구로 내려오지만 일부는 창원 주남저수지와 해남의 고천암호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
가창오리 외에도 금강하구에는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에 있는 조류인 검은머리물떼새와 검은머리갈매기, 개리를 비롯해 큰고니, 청둥오리, 기러기 등이 찾아온다. 지금 금강하구로 가면 이들의 우아한 날갯짓을 감상할 수 있다.
군산 금강하구에는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조망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나포십자들녘과 조류관찰소에는 탐조회랑이 설치돼 있고 금강조류공원에는 11층 높이의 조망대가 있다. 특히 금강조류공원은 철새들에 대한 다양한 전시관과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조류공원 안에는 회전식 조망대와 커다란 새 모양의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 조망대에는 조류의 진화과정과 철새들의 장거리 비행원리 등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는 상설전시장과 희귀 철새와 동물들의 박제표본 전시관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 11층이 조망대다. 이곳에 오르면 금강 일대가 한눈에 잡힌다. 이곳에서 바라본 금강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가끔 수면을 훨훨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자유로운 비상만 있을 뿐 다른 어떤 움직임도 없다.
조망대에는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햇빛을 받아 번뜩이던 것들이 물결인지 하얀 배를 드러낸 새들인지 알 길이 없었던 사람들은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탄성을 지른다. 강물 건너 충남 서천 쪽에는 청둥오리가 떼 지어 놀고 있고 갈대숲 아래에서는 팔자 좋은 큰고니들이 오수를 즐기고 있다. 가끔 ‘V’자를 만들며 하늘을 날던 기러기들이 금강대교를 건너 나포십자들녘에 ‘랜딩기어’를 내리고 사뿐히 착륙한다.
▲ (위부터) 군산철새조망대가 있는 금강조류공원과 나포십자들녘 탐조회랑에서 철새를 관찰하고 있는 여행객들, 금강조류공원 11층 철새조망대에서 철새를 관찰하고 있는 여행객들. | ||
외부로 나가보자. 야외에도 볼거리는 많다. 거대한 흰머리독수리와 수리부엉이 등 살아 있는 조류들이 전시된 산새장과 직접 부화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부화체험장 등 다양한 시설들이 흥미를 끈다.
철새탐조는 빼놓을 수 없는 여행목록이다. 금강조류공원에서는 하루 네 차례 투어버스를 운행한다. 공원에서부터 조류관찰소를 거쳐 나포십자들녘 탐조회랑까지 왕복하는 코스다. 시간은 1시간 30분이 걸린다.
금강대교 바로 옆에 자리한 조류관찰소에서는 조망대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철새들을 지켜볼 수 있다. 한국조류보호협회 군산지부에서 상주하며 관람객들을 위해 알기 쉬운 철새 강의를 펼친다.
이곳보다 더 현장감 있게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은 나포십자들녘이다. 이 들녘은 철새들의 쉼터이자 생명의 터전이다. 철새들이 금강하구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책적으로 일부의 논은 일부러 추수를 하지 않고 새들의 먹이로 제공하고 있다.
요즘 이 들녘에 가면 커다란 기러기떼를 만날 수 있다. 탐조버스나 승용차가 지나가도 여간해서는 겁을 먹지 않는 기러기들은 낮 동안 내내 이곳에서 배불리 먹고 털을 윤기 나게 만든다. 해가 질 무렵 들녘의 건너편 방죽 너머에서 ‘깨깨’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창오리다. 갈대숲 속에서 여간해서는 나오지 않던 녀석들이 어두워지자 드디어 강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새들이 사는 환경을 그대로 재현한 유리온실. 작고 귀여운 새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 ||
장석남 시인은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라는 시에서 수많은 찌르라기떼의 울음을 ‘쌀 씻어 안치는 소리’ 같다고 했다. 새떼가 몰고온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고 했다. ‘하늘을 다 가릴 듯했다’는 시인의 말은 찌르라기떼처럼 귀엽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리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폭풍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 곧 밀려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것만 같은 공포.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들이 일제히 날개를 퍼덕이는 것을 한번 상상해보라. 그것이 새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아마 두려움에 떨며 그 자리를 먼저 피하고 봤을 것이다.
그들은 벌떼처럼 움직인다. 일정한 패턴이 없이 자유자재로 비행을 하며 기학학적 문양을 만들어 낸다. 회오리처럼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한 무더기로 뭉쳐 전속력으로 순간이동을 하기도 한다. 태양이 마지막 남은 정열을 하늘에서 거둬들일 때쯤 가창오리들은 그 속에서 돌연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금강하구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도로(군산IC)→우회전(706번 지방도)→서와삼거리→좌회전(709번 지방도)→철새조망대
★잠자리: 하구둑주변에는 잠자리를 해결할 곳이 마땅치 않다. 아무래도 군산 시내로 나가는 것이 좋다. 나운동 일대에 모텔 등 숙박업소가 많고 깨끗하다.
★먹거리: 서해안 청정지역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꽃게로 만든 간장꽃게장이 유명한 ‘계곡가든’(063-453-0608)을 추천한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각종 한약재를 넣어 만들기 때문에 비린 맛이 전혀 없다. 꽃게장 제조 방법을 특허 등록할 정도로 유명하다. 1인분에 간장게장 한 마리가 오른다. 상에 오르는 10여 가지의 밑반찬에 좀처럼 젓가락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하구둑사거리에서 군산-전주 간 자동차전용도로 쪽으로 달리다보면 왼쪽에 있다.
★문의: 군산시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gunsan.go.kr) 063-450-400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