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지을 사람은 MB밖에 없다?
▲ 미소재단이 10월 13일 6대 그룹과 미소금융정책 공동 지원 협정식을 체결했다. | ||
“이제야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뭔지 알 것 같다.”
지난 11월 2일 기자와 만난 한 국내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그는 “기업을 내 편으로 만들어 정권에 필요할 때 언제든 이용하겠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소재단에 관한 질문의 답변이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미소재단에 대해 “정부가 가장 중요한 정책이라며 공개적으로 협조를 요청했는데 안 따를 기업이 어디 있느냐. 정부에서는 자발적 참여라고 하는데 맞다. 나중에 화를 당하기 전에 알아서 돈을 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미소재단에 돈을 기부한 것을 놓고 그룹 내부의 불만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미소재단을 향한 이러한 말들이 밖으로 새어나갈까 전전긍긍하는 듯한 모습도 역력하다. 미소재단의 주 업무인 소액대출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 6월부터 핵심 서민정책으로 선정하고 준비해온 것이기 때문. 자칫 차질이라도 빚을 경우 책임론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미소재단은 서민정책으로 톡톡히 효과를 본 이명박 대통령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이겠지만 기업들로서는 기부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미소재단 설립은 이 대통령 지시하에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도했다고 한다. 윤 실장은 2008년 3월 출범한 소액서민금융재단을 확대 개편한 미소(美少:아름다운 소액 대출)재단 설립방안을 마련했고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17일 조석래 전경련 회장,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이 참여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를 공식 발표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대기업이 가장 어려운 계층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생산적인 도움”이라면서 “우리 정부가 서민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지만 아직도 실상은 어렵다. 대기업은 미약하나마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같은데 서민들은 아직 찬 겨울바람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미소재단은 10년에 걸쳐 총 2조 원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두고 과도한 금액이라는 우려도 나왔지만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설립 구상을 발표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2조 원 모금에 성공한 것이다. 우선 9월 23일 전국은행연합회(회장 신동규)는 은행들의 휴면예금 7000억 원을 미소재단에 전액 출연한다고 밝혔다. 또한 자체 기부금 3000억 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목표액의 절반을 마련한 것이다. 10월 13일에는 미소재단이 국내 6대 대기업과 미소금융정책을 공동으로 지원하는 협정식을 체결했다. 재계서열 1위 삼성(3000억)을 비롯해 현대차(2000억) SK(2000억) LG(2000억) 포스코(500억) 롯데(500억)가 나머지 1조 원을 채웠다. 이를 두고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기업들이 스스로 참여했다고는 하는데 마치 누가 조종한 것처럼 금액과 시기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뜬금없이 기업들과 은행들이 나서서 돈을 기부한 데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말들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역시 자신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미소재단의 출범과 구성, 사업이 정치적 고려와 연관돼 있어 보인다. 이 대통령의 서민정책 때문에 급하게 태동된 것이란 얘기다”라고 지적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미소금융 발표 시기 즈음에 사정당국의 기업 사정이 강도 높게 진행됐다는 것에 주목하기도 한다. 정부가 기업에 대한 ‘압박용’으로 권력의 칼을 휘두른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회장 조석래)의 한 관계자는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기부에 참여한 대기업들로서는 다른 곳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몇몇 그룹의 고위 임원들이 이러한 고민을 말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들을 모르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미소재단 감독기관인 금융위원회 측은 “(일각에서 외압설을 제기하는데) 억울하다. 전경련이 먼저 취지에 공감하고 기부할 뜻을 밝혀왔다”고 해명했다. 한 여권 관계자도 “대기업과 금융권에서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측면에서 취지에 동감해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세상에 외압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오히려 논란은 증폭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금융권과 재계를 중심으로 미소재단과 관련해 일부 현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업과 은행권을 찾아가 돈을 기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금액을 조정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은 “실적도 별로 좋지 않은데 수백억 원을 내는 것에 대한 직원들의 비난이 크다. 당초 경영진도 기부를 하지 않으려 했다가 청와대에서 누가 다녀간 후 입장을 바꿨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전했다. 현재 정권창출 일등공신으로 여겨지는 A 씨, 대표적인 경제계 MB 측 인사인 B 씨와 C 씨 등이 그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를 폭로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조만간 물증을 확보해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미소재단은 일각의 의혹처럼 기업들의 ‘한숨’을 먹고 탄생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권과 기업 모두가 함께 ‘미소’ 지을 만큼 공감대가 형성된 것일까.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