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매화구름 밖엔 동백꽃비!
▲ 14만 평 ‘꽃대궐’ 보해매실농원. 아침과 저녁 무렵 매화향이 가장 그윽하다. | ||
가만히 눈감고 있으면 코끝을 간질이며 몸 안으로 살며시 들어오는 봄꽃의 내음들. ‘바다남쪽’ 전남 해남에는 요즘 ‘꽃구름’이 넓게 드리워져 있다. 매화와 동백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섬진강 물길 따라 핀 줄만 알았던 매화꽃. 해남에는 더한 ‘매화꽃 이불’이 깔렸다. 전국에 매화를 심은 농원들은 많다. 그중에서도 해남의 매화꽃밭은 규모 면에서 가장 크다. 보해양조가 1979년부터 조성한 이 매실농원은 전체 면적이 14만 평. 그곳에 심은 매화나무만 1만 4000그루에 달한다. 그 수많은 매화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으니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영산강 하구둑을 건너 806번 지방도를 타고 해남읍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보해매실농원 입간판이 보인다. 한자로 써 있는데 입간판이 큰 편이 아니어서 놓치기 쉽다. 이정표가 알려준 대로 딱 자동차 한 대가 지날 만한 소로를 따라 2㎞가량 들어가니 매화꽃밭이 드러난다.
그다지 입소문을 타지 않은 탓에 이곳은 광양의 매화마을에 비해 한결 여유롭다. 보해매실농원에는 다양한 품종의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다. 백가하, 앵숙, 고성, 소매 등이 심어져 있고 꽃도 백매화와 홍매화가 어우러져 있다. 매화밭은 얕은 구릉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모두 일곱 개 단지로 이루어져 있고 각 단지는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매화나무들은 모두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줄지어 서 꽃을 피우며 머리를 맞대고 터널을 만든다. 터널 아래로는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들이 한가히 지나다닌다.
매화밭은 누가 주인인지도 모를 만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 없고 안내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여유롭게 매화향에 취하며 봄꽃놀이를 하다 가면 그만이다. 관리사무소가 하나 있기는 한데 이곳마저도 개방돼 있다.
▲ 고산유적지 내 녹우당 뒤편엔 동백이 붉다. | ||
매화는 꽃향기가 매우 진한 편이다. 그러나 한낮에는 그 향기를 잘 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아침과 저녁 무렵이라면 그 향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으니 참고하자.
봄은 마을 앞 들녘에서도 한창이다. 청보리밭이 마치 바다처럼 들판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산면 산막리 주변은 보리밭이 유명하다. 논마다 밭마다 보리가 싹을 밀어올려 푸른 물결이 넘실댄다. 청보리의 연초록 이파리들은 싱그러움 그 자체다. 보리밭 주변에선 언제 피었는지 모를 들꽃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산막리 말고도 마산면 일대에는 보리밭이 많다. 산막리에서 나와 대흥사 쪽으로 길을 틀어 달리다보면 북평교 인근에 마을이 보이는데 이곳에는 계단식 논에 청보리들이 자라고 있다.
보해매실농원에서도 동백꽃을 실컷 보기는 했지만 그 빛깔은 녹우당 뒤편의 동백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고산유적지 내에 자리한 녹우당은 해남 윤씨의 종가다. ‘고산’ 윤선도의 4대 조부가 이곳 연동리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 건물이 바로 녹우당이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이 가운데 사랑채는 효종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했던 경기도 수원 집을 현종 때 해상으로 운송해서 이곳에 이전한 것이다. 녹우당은 일반에게 개방되지만 현재도 안채에서는 윤씨 종손이 살고 있어 정숙을 요한다.
녹우당 뒤편에 동백나무가 크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동백나무들을 심었던 듯한데 나무가 하나같이 크고 꽃이 만발했다. 특히 이곳의 동백꽃들은 왜 그리도 붉은지 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 고산유적지 앞 차밭. 연둣빛 새순이 싱그럽다. 아래는 산막리 청보리밭. | ||
고산유적지 인근 구릉에는 차밭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에도 봄이 들었다. 짙은 녹색이었던 차나무에 새잎이 하나둘씩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 넓진 않지만 차밭 이랑을 따라 산책하며 봄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사실 동백꽃으로 유명한 곳은 대흥사다. 하지만 이곳의 동백은 생각보다 일찍 수그러들었다. 동백꽃이 떠난 자리에는 벚나무가 몽우리를 밀어올리며 꽃을 피울 태세다. 조만간 벚꽃은 그 화사한 빛깔을 뽐내며 대흥사 계곡을 화려하게 수놓을 것이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목포IC→1번 국도→영암·해남 방면 2번 국도→영산강 하구둑→49번 지방도→해남 방향 806번 지방도→매화농원
★먹거리: 해산물 요리의 진수를 ‘용궁해물탕’(061-535-5161)이 보여준다. 해남읍 평동리에 자리한 이 음식점은 대한민국 최고의 해물탕을 자랑한다. 산낙지, 한치알, 대하, 오도리, 나배기 등 32가지 해물에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 매일 아침 바다에서 공수하는 신선한 재료에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아 뒷맛이 개운하다. 2인분에 3만 원.
★잠자리: 보해매화농원 근처에는 숙박업소가 없다. 해남읍으로 나와야 한다. 해남읍에는 해남관광호텔(061-533-9002), 조선비치모텔(061-532-7800) 등 잘 곳이 많다.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으로 걸음을 옮겨 두륜산온천랜드(061-534-0900)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문의: 해남군청 문화광광포털(http://tour.haenam.go.kr) 061-530-51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