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기후에 맞지 않은 외래 품종 선택 최대 실수...향후 정상화까지 시일 걸릴 듯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평양의 대동강과수종합농장과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의 ‘대동강 공장 사업’ 구상은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됐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직후다. 김정은은 후계자 내정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이 건설을 책임지고 맡아 완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대동강 강변에 과수종합농장을 일구고, 이곳에서 생산한 과일을 가공하는 공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무엇보다 홍수처럼 밀려들어오는 중국제 식료가공품을 대신할 수 있는 국산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고도화된 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고작 식료품 가공공장 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을 수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북한 입장은 다르다. 무엇보다 북한의 현 체제에서 안정적으로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든 식료 가공품들을 인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성과다. 식료 가공품과 같은 기본적 소비재들은 인민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후계자 입장에서 김정은은 자신의 대외적인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치적 사업의 의미가 무척 크다 할 수 있다. 이곳의 건설 사업은 인민보안성 산하 조선인민내무군이 맡기로 했다. 사업 계획이 선 2008년부터 김정은은 농장 및 공장 건설구역인 대동강 강변, 정확히 말하면 평양시 도덕리를 10여 차례 이상 다녀갔다. 이곳은 구불구불한 하천 지역으로 뙈기 논밭과 크고 작은 몇 개의 농장들이 자리한 평범한 농촌마을이었다.
사업 착공 이후 기존 마을 주민들은 근처 산기슭으로 이주 조치됐다. 그리고 이곳은 몇 년 만에 유럽의 여느 대규모 과일산지 못지않게 큰 규모의 과수농장으로 탈바꿈됐다. 이와 함께 근처엔 역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대대적인 생산라인을 갖춘 큰 규모의 가공공장이 들어섰다. 김정일도 후계자의 사업에 퍽 만족감을 느꼈으며 긍정적 지지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조선신보’는 지난 2010년 1월 “2010년 4월부터 이 농장에서 사과를 기본으로 배, 추리(자두), 복숭아, 양벗(버찌) 등 과일 20여 종을 생산하며 과일말림, 잼, 단물(주스) 등을 생산할 것”이라 보도했다. 또한 “가공제품은 평양시 보통강 상점에서 판매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 공장에선 앞서의 제품을 기본으로 말린 사과편, 단묵(제리), 사과주 등 다양한 품목이 생산됐다. 이 공장의 완공 및 제품생산이 2010년에 맞춰진 것도 상당히 계산적이었다. 같은 해 10월 10일은 조선노동당 창건 65돌이 되는 해였다. 김정일은 실제 당 창건을 즈음하여 삼남 정은의 이 같은 치적 사업에 대해 “강성국가의 대문을 향해 질풍 쳐 나아가는 선군 조선의 무궁번영이 펼쳐지는 하나의 축”이라고 찬양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아버지와 동행한 2011년 7월을 시작으로, 2014년 6월 리설주와의 부부 동반 시찰, 2016년 8월 시찰 등 확인된 것만 세 차례에 걸쳐 이 공장을 다녀갔다.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에도 이 공장에 대한 선전 기사들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왔다. 앞서의 시찰 보도는 물론 2016년 2월 북한의 선전지 ‘조선의 오늘’은 이 공장에서 ‘고급 화장품’도 생산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본인의 치적사업으로서 김정은이 얼마나 이 시설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방증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렇게 대대적인 홍보 성과와 달리 정작 이 공장의 내부 사정은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 계획했던 제품들의 연간 생산 목표와 공급 수치 도달에 턱 없이 못 미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화장품을 북한 주민들이 해외 화장품보다 더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동안 계속됐던 시찰과 선전보도가 지난해 이후 소식이 끊긴 이유기도 하다.
문제는 이미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 해는 북한의 정부 수립 65돌 되는 해였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이를 기념해 이곳에서 생산된 과일 및 제품들을 인민들에게 선물로 공급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생산량이 턱 없이 부족했고, 일선에선 이를 보충하기 위해 평안남도 숙천, 평원, 증산 일대의 농장에서 생산된 과일을 부랴부랴 모아 공급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북한 평양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의 직원들이 질이 좋은 과일 가공품의 생산을 늘리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이후에도 이 공장의 제품 생산은 줄곧 차질을 빚었고, 2014년 6월에는 결국 당 조직지도부 요해검열이 이뤄졌다. 조직지도부 검열 결과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견됐다. 애초 김정은의 농장 경영방식에서 문제가 비롯됐다는 내부조사 결과가 도출됐다는 것이다. 당시 농장 경영자들과 기술자들은 김정은을 두고 ‘소경 문고리 잡기 식으로 일을 해낸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앞서의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가장 큰 문제는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 과일 품종이었다. 김정은은 사업 계획 단계에서 네덜란드의 농장 운영 및 가공품 생산 기술을 들여왔다. 북한의 기존 품종인 북청사과, 남포사과, 홍옥 등은 10년 이상 지나야 열리기 시작한다는 약점이 있었다. 가공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국 품종들은 생육기간이 지나치게 길 뿐만 아니라 생산량과 병해충 문제 때문에도 예정된 시일 내 제품 생산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사과와 배를 비롯해 다수의 외래 품종을 들여와 농장에 식목하기로 했다. 이러한 외래 선진 품종들은 생육기간이 짧고 제품 가공 생산도 용이했다.
하지만 기술적 계산이 잘못 섰다. 근본적으로 이 같은 외래 품종이 북한 생육 환경에 적합한지 조사가 덜 됐던 것이다. 막상 수천만 달러의 당 자금을 퍼부어 김정은의 경영방침으로 외래 품종을 식목했지만, 계획과 달리 북한의 기후 탓에 제대로 생육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자재 공급이 어려워졌고, 목표했던 제품 생산량도 미달됐다. 거의 수천 톤의 계획 차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이 공장은 생산원가가 줄어들고 제품의 질이 향상되면 해외 수출까지 계획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특히 문제는 북한의 일조량과 풍토에 적응되지 않는 사과 품종과 양벗 품종이라고 한다. 매해 수천 톤의 과일생산 차질을 단 몇 년 내에 해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적지 않은 면적에 만들어진 과일 나무들을 모두 바꿔 재래식 혹은 잡종으로 바꾸는 사업 또한 하나의 대규모 기술개선 사업이다.
이처럼 초점이 맞춰진 김정은의 경영 및 지도방식에서 문제를 발견했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보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당시 검열에서 농장의 몇몇 고위 간부들과 건설에 참여한 인민보안성 조선인민내무군 간부들이 숙청됐다. 명목은 건설 과정에서 횡령이 발생했고, 일부 공정이 잘못됐으며 일선 경영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김정은의 책임 여부는 당연히 배제됐다.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급원인 과수농장 정상화는 단시간 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품종 식목 후 제품 생산이 가능할 때까지 생육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