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따라 걸어볼까나
▲ 산성을 따라 걷다보면 신라 사람을 만날 것만 같다. 사진은 삼년산성에서 트레킹 하는 모습. | ||
삼년산성은 충북 보은에 자리하고 있다. 보은이라 하면 먼저 속리산과 법주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 탓에 삼년산성은 언제나 관심 밖이었다. 보은에 산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삼년산성은 찾는 이 없어도 꿋꿋이 기나긴 세월을 견뎌왔다.
삼년산성은 우리나라 산성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보은읍에서 속리산 방향으로 약 2㎞ 떨어진 곳에 해발 350m 높이의 오정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다. 삼년산성은 이 산의 정상부를 두르고 있다.
산성이 축성된 시기는 서기 486년. 신라의 자비왕이 3000명의 인부를 동원해 쌓은 것이다.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해서 삼년산성. 이 산성은 신라가 서북지방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인 동시에 최전방 방어선이었다.
산성은 총 길이 1680m, 성곽 높이 최고 13m, 폭 5~8m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성곽은 크고 작은 돌조각으로 쌓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이 산성은 사적 제235호로 지정돼 있다.
삼년산성에는 안과 밖을 연결하는 동문지, 서문지, 북문지, 남문지 등 네 개의 통로와 성곽의 망루와도 같은 서남곡성, 서북곡성, 동북곡성, 북문곡성 등 네 개의 곡성이 있다. 서북곡성에서 남문지에 이르는 구간은 꾸준히 복원되어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삼년산성 트레킹은 서문지에서 서남곡성 방향으로 출발하는 게 보통이다. 성곽 옆으로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이 나 있다. 서문지 앞에는 아미지라는 연못 터가 있다. 연못 앞 암벽에는 옥필, 유사암, 아미지와 같은 글씨가 음각돼 있다. 전문가들은 명필 김생의 것으로 보는데 명확치는 않다.
서문지에서 100m쯤 올라가면 서남곡성이다. 곡성은 문을 향하여 접근하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성문보다 훨씬 높게 축성돼 있다. 또한 곡성은 마치 수원 화성의 옹성처럼 둥그런 형태로 바깥을 향해 돌출돼 있다. 성벽 수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지혜다.
서남곡성은 보은 시내가 다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서남곡성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남문지에 닿는데 이곳을 지나면 시간은 급격히 ‘과거’로 흘러든다. 말끔히 복원된 성곽에서 시간의 흔적을 읽을 수 없었던 반면 남문지에서부터 드러나는 성곽들은 1500년 넘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비교적 잘 보존된 편이지만 곳곳이 허물어져 있고 풀숲에 묻혀 있는 부분들도 볼 수 있다.
▲ 선병국 가옥(위), 법주사 금동미륵대불과 팔상전. | ||
삼년산성 트레킹 최고의 구간은 동북곡성에서 북문곡성까지 약 500m 거리. 동북곡성에서 북문지까지 약 30도 정도의 경사면을 내려간 후 다시 60도 정도의 오르막을 올라가는 코스다. 이 구간은 걷는 재미와 풍경이 최고다.
특히 북문곡성에서 북문지와 동북곡성 쪽을 바라보면 삼년산성의 위용과 멋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삼년산성 동·서·남·북 사대문 가운데 남문과 동문의 경우 거의 폐기되다시피 했지만 정문이랄 수 있는 서문 외에 북문 쪽은 아직도 삼년산성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서문이 차량의 이동로라면 북문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의 이동로로 이용되고 있다.
삼년산성처럼 보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가 여럿 있다. 선병국 가옥도 그중 하나다. 아흔아홉 칸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전통가옥으로 주요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돼 있다. 삼년산성에서 법주사 방향으로 길을 달리다가 외속리 쪽으로 5㎞ 정도 더 가면 하개리에 이 가옥이 있다.
이 한옥은 1921년 완성된 것으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지은 관선정까지 포함하면 모두 134칸에 이른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될 당시 20대 손인 선병국 씨가 살고 있어서 선병국 가옥이라고 불리게 됐다. 현재는 21대 손인 선민현 씨 일가가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등이 모두 독립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보통 한 울타리 안에 모두 들어 있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각각의 건물들이 저마다 담장을 두르고 있다.
현재 이곳에선 가족이 생활하는 안채를 제외한 나머지 가옥들은 모두 공개되고 있다. 특히 사랑채는 ‘도솔천’이라는 찻집을 겸하고 있다. 간판이 없어서 차를 파는 곳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무량수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 현판은 해남 대둔사 요사채에 걸려 있는 추사 김정희의 원본을 본뜬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오미자차와 매실차를 만들어 파는데 무척 깔끔하고 향이 좋다. 사랑채가 방문객들을 위한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안채의 행랑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내주고 있다.
고개를 넘으면 600년이 넘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정이품송이 기다린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지마다 받침목을 대어 놓았다.
정이품송을 지나쳐 5분쯤 길을 달리면 법주사다. 신라 553년 진흥왕 때 창건된 절로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3대 불상전 가운데 하나인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원통보전, 명부전 등 8개의 전각을 비롯한 3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특히 법주사에는 그 유명한 팔상전이 경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이다. 팔상전 앞에는 커다란 금동미륵대불이 서 있다.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통일신라 776년 혜공왕 때 주조된 것을 1990년 복원했다.
법주사에 가면 법고소리와 타종소리, 그리고 대웅전에서 울려나오는 독경소리를 꼭 들어보자. 저녁 6시 30분이면 법고를 시작으로 약 20분간 타종하고 목어, 운판을 치며 대웅전에서 독경을 한다. 자연과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소리다.
여행 안내
★길잡이: 경부고속국도 청주IC(중부고속국도 서청주IC)→청주→25번 국도→보은→삼년산성
★먹거리: 보은에서 삼년산성 가기 전 오른쪽에 해물칼국수를 잘 하는 ‘복돼지한판’(043-543-9779) 식당이 있다. 삼겹살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인데 오히려 해물칼국수를 찾는 손님이 대다수다. 해물을 우려낸 육수와 홍합, 바지락, 갖은 버섯, 주꾸미를 넣어 끓여낸 칼국수가 일품이다. 1인분 40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한 편.
★잠자리: 법주사 들머리에 ‘레이크힐스호텔’(043-542-5281)을 비롯해 여러 숙박시설이 몰려 있다. 속리산행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비로산장’(043-543-4782 )도 좋다. 법주사에서 천황봉 방향으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있다.
★문의: 보은군 문화관광포털(http:// www.tourboeun.go.kr) 043-540-3391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