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개발 브로커 정부 투자금 먹튀 빈번…영포라인 비자금 조성 의혹도
3월 23일 구속 수감을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논현동 자택을 나서며 측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정확한 집계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해외 자원개발에 들어간 돈은 3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투자한 지역만 보더라도 아프리카, 동남아, 아랍, 북미 등 광범위하다. 200개 안팎인 개발 지역 중 성과를 낸 곳은 극히 드물다. 거액의 혈세가 공중으로 날아간 셈이다.
더군다나 앞으로 부실자산을 매각하거나 정상화를 위해선 추가 비용이 불가피해 손실액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부분 성공불융자제도(사업 실패로 인해 융자금 상환이 불가능할 경우 원리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해주는 제도)에 따른 투자인지라 돈을 회수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더 큰 문제는 자원개발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석유공사가 인수한 캐나다 정유회사 하베스트다. 4조 5500억 원짜리 초대형 계약이 이뤄지는데 걸린 기간은 불과 44일이었다. 현장에 대한 실사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석유공사는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보고 이를 되팔았다. 여기에 정권 실세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하베스트 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의 판단이다. 이들은 유관부처와 사정기관 등을 통해 해외 자원개발 전반을 되짚어 봐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모은 상태다. 한 친문 의원은 “4대강 사업은 백번 양보해서 뭔가 남아 있는 거라도 있지 않느냐. 그런데 자원개발의 경우 수십조 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면서 “적지 않은 돈이 친이계 실세들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아 정권 출범 때부터 다각도로 확인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자원개발이 졸속으로, 비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추진됐을 것이란 의혹이 무성한 가운데 ‘일요신문’은 한 사업가로부터 구체적인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사업체는 MB 정권 시절 동남아 지역 자원개발 명목으로 투자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사업가는 “나는 회사 명의만 빌려줬을 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라며 취재에 응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한 금융권 지인으로부터 처음 제안을 받았다. 해외 자원개발에 참여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였다. 우리 회사는 자원개발 경험이 없다고 하니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회사 이름만 빌려주면 된다고 했다. 그 후의 일은 잘 모른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동남아 쪽에서 땅을 파고 있다고 들었다. 통장에 두 차례 돈이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땅 파기는커녕 그 나라에 가지도 않았더라. 정권이 바뀐 다음에 혹시 조사를 받을까 전전긍긍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업가에게 자원개발 참여를 제안한 금융권 인사의 정체다. 한 다국적 금융회사 소속인 것으로 알려진 이 인사는 자원개발 투자만을 전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원개발 지역을 물색한 뒤 적당한 투자자를 찾아 중개를 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이다. 일종의 자원개발 ‘브로커’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자원개발 브로커는 베일에 가려져 있어 정확한 실체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리스크가 높고 장벽 진입이 좁은 자원개발의 특성상 상당히 많은 수수료를 받는다고 한다.
MB 정권이 자원개발에 의욕을 보이며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자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던 브로커들의 시선도 국내로 쏠렸다. 한 브로커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돈이 많이 풀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전 대통령부터 자원외교에 직접 뛰어들지 않았느냐. 우리가 접촉한 적도 있었지만 국내에서 먼저 연락이 왔던 게 대부분이었다. 돈은 무한정 댈 테니 자원이 나는 곳을 알려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돈의 출처는 정부였다. 투자금을 받기가 쉬웠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브로커들이 돈만 챙기고 ‘먹튀’를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부 브로커들은 당시 정권 실세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친이계 진영에선 정권 성골로 통했던 이른바 ‘영포라인’이 자원개발에 유독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원개발을 통해 이들이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이란 의혹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앞서 언급한 사업가도 “내 회사 명의로 투자금을 빌린 배후가 친이계 쪽 정치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물론 그 정치인도 브로커에게 모든 것을 맡겼을 것”이라면서 “나랏돈이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쓰인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친이계 인사들은 브로커들과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했던 자원개발의 성공을 위해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한 친이계 전직 의원은 “브로커로 비쳐질 수 있겠지만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자원개발 전문가들이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실제로 사업권을 따낸 적도 있다”면서 “그들이 동남아의 군부세력, 아랍의 로열패밀리들과 다리를 놔줘 정부가 혜택을 본 적도 있다. 무조건 부정적으로 봐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 친이계 인사는 브로커 도움을 받아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동남아의 한 나라에서 자원개발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다. 그가 이 나라를 처음 방문할 때 수백 명의 군인들이 공항에서부터 경호를 했다는 에피소드도 들렸다. 일면식도 없던 그 나라의 최고 지도자와 만찬까지 하고 돌아왔다. 또 이 전 대통령이 한 아랍국가의 로열패밀리를 만날 때도 거물급 자원개발 브로커가 관여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해외 자원개발은 국민 세금이 투입된 사업이다. 특정 정치인과 브로커들에 의해 불투명하게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자금 중 일부가 불법적으로 쓰여 그들의 배만 불렸다면 더 큰 문제다. 어떤 브로커는 자원개발에 투입된 돈 중 일부를 빼돌린 다음 세탁까지 끝낸 다음에 고객(?)에게 돌려주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아예 처음부터 자원개발이 아닌 비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한 것도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원개발을 둘러싼 비리들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본다는 방침 아래 조사 중이지만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한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자원개발 과정에서 정권 실세들과 브로커들 간 커넥션을 의심케 하는 정황들은 있지만 확인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주로 해외에서 벌어진 일이라 돈 흐름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브로커들 존재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